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IBS Dec 25. 2017

욕망을 그리다 : 튤립피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튤립 구근의 가격이 멋모르고 치솟던 시기가 있었다. 고작 꽃뿌리일 뿐인데,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은 오르고 또 올랐다. 튤립은 숙련된 장인이 버는 연간 소득의 열 배보다 더 많은 값을 받고 팔려나갔다. 값어치가 매겨지는 과정은 참 이상했다. 예쁜 꽃은 그 줄기를 타면 나오는 뿌리가 비싸다는 뜻으로 통했다. 이 이상한 상품의 가격은 밑도끝도 없이 치솟았다가 거짓말처럼 꺼져버렸다.



수도원에서 가난하게 자란 소피아는 돈 많은 귀족에게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 팔려간다. 매일 저녁마다 통에 오줌을 눈 뒤 침대에 올라와 아들을 낳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섹스를 하는 늙은 귀족과 살게 된다.


늙은 귀족과의 잠자리와 일상은 지루했다. 지루한 일상 속에 화가 얀이 찾아온다. 가난하지만 젊고 열정적인 화가의 눈빛과 손짓에 소피아의 마음엔 겉잡을 수 없는 불이 붙는다. 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이내 서로를 향한 욕망을 확인한다. 욕망은 얀의 눈빛과 소피아의 숨결같은 아름다움으로 그려진다. 얽힌 아름다움은 자꾸만 미련을 남긴다.



영화는 끊임없이 튤립 거래소인 술집과 튤립이 자라는 수도원을 오간다. 욕망은 통제된 공간에서 자라고, 생겨난 욕망은 취하기 위한 공간에서 끝을 모르고 부푼다. 욕망에 취해 늙은 귀족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소피아는 임신을 연기하고 죽음을 연기한다. 얀은 소피아를 갖기 위해 그림은 접어두고 떠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튤립 구근에 손을 댄다. 욕망은 기화점을 한참 지나버린 찻주전자처럼 위태롭게 끓는다. 튤립 구근 가격처럼 불안하게 치솟는다. 그러다 순간에 펑,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한 명은 욕망에 취해 보지 못했던 것을 직시하게 되고, 다른 한 명은 헛된 꿈의 중심에 있었던 값비싼 튤립 구근을 거짓말처럼 잃는다. 손에 넣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튤립 구근은 결국 사라져 버린다.



욕망에서 쌓인 모든 것은 순간에 끝났다. 언젠가 파국에 이르리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금 취한 욕망의 달콤함에 책임을 미루고, 애써 지금은, 자기는 아니라고 외면했다. 결과는 준비하지 못한 순간에 닥쳐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처음부터 욕망에 취한 사람에게 결과에 대한 준비란 한없이 미뤄지기만 하는 종류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튤립피버'는 이 욕망의 본질을 가장 잘 그리고 있는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합정맛집]옥동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