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이 다채로운 음식
‘퍼 짜 쭈웬’이라는 쌀국수집을 가려고 마음먹었다. 진짜 맛있고 고기도 많이 올려주는 집이라고 한다. 고기가 많다는 말이 꼭 맛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닌데도 그 문구를 본 마음은 이미 한참을 기울어 있다. 백종원이 다녀갔다는 집이다. 베트남에 와서도 백종원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글에서 리뷰를 찾아보니 누구는 일정 동안 4번을 먹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큼직한 바퀴벌레를 쉽게 볼 수 있는 등 위생이 안 좋다고 하더라. 길거리에 의자 두고 먹는 게 불편하면 가지 말라고도 한다. 약간 걱정했지만, 그래도 베트남에 왔는데 첫 끼는 쌀국수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목적지로 찍었다.
구글맵을 켜고 갔는데 혼잡한 교통 상황 속에 오토바이에 치일까 걱정을 너무 많이 한 탓에 방향을 잘못 잡아서 다른 집에 도착했다. 분명 이 근처가 도착지라는데 찾을 수가 없다. 내비를 켜고 걸었어야 했는데 지도만 보고 방향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실수다. 거의 8시가 다 넘어 가는데 새로 찾을 자신도 없고 해서 그냥 앉았다. 내가 베트남 말을 못 읽지만, 대충 봐도 ‘퍼 짜 쭈웬’이라고 쓰여있진 않았다. ‘MY XAO PHO’라고 구글맵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가게였다. 거리 테이블 가득한 손님들, 손님을 구성하는 현지인과 관광객의 적절한 비율이 불안함을 조금 완화시킨다.
하노이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가게는 그 앞 인도까지 영역을 뻗고 있다. 내가 찾아갔던 쌀국수 집은 교차로 길 모퉁이에 위치했는데, 그 모퉁이에 둥그렇게 테이블을 배치해두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식당이 대체로 이렇게 장사한다. 좀 더 돌아다녀 보니 알겠더라. 건물 공간은 최소로 요리할 공간만 갖추고 있고, 손님이 앉는 자리는 근처 인도를 활용한다. 겹쳐서 놓을 수 있어 공간 활용이 좋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쓴다. 가게 앞 인도는 가게 땅에 테이프로 단단히 엮여 있는 플러스 상품이다. 소규모로 장사하시는 분들은 아예 공간도 없이 길거리 한쪽에서 요리할 수 있게 세팅을 해 두고 요리를 굽고 튀기며 손님을 받기도 한다.
새빨간 목욕탕 의자 앉아서 기다리니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베트남어 메뉴 아래에 영어로 설명이 쓰여 있어서 주문은 쉽다. 손가락으로 쿡 찍은 다음에 다시 손가락 하나를 반짝 들어 보여주며 '이거 하나 달라'는 뜻을 전달하면 된다.
테이블에는 쫑쫑 썰어둔 국물에 넣어먹는 고추와 라임, 냅킨과 젓가락이 있었다. 쉽게 짜서 먹으라고 꼭지 부분이 잘린 낑깡크기의 라임과 라임이 담긴 그릇이 귀여웠다. 모든 테이블이 다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서 서로 공유해가며 썼다. 5만동(=2500원)짜리 소고기 쌀국수(포 보, Pho Bo)를 시켰다. 양치니 차돌박이니 그런 구분 없는 그냥 '소고기'다.
딱히 기대하진 않았는데 엄청 맛있었다. 국물의 향이 좋다. 쌀국수를 먹을 때 고수를 넣어먹어 본 적이 없다. 음식에 그 비누향이 나는 게… 못 먹을 것 까진 아닌데 영 이상하다. 하지만 여기서 먹는 이 쌀국수는 고수의 향이 빠지면 다른 음식이 될 것 같다. 포베이에서 팔던 건 본토의 쌀국수와 한참은 거리가 있는 요리이며, 에머이는 적당히 로컬라이징 해서 따라한 수준이라는 표현밖에 못하겠다. 향채, 면, 고기가 모두 한국의 것과 조금씩 다르다. 떼어 놓고 봤을 때는 별 차이 없게 느껴지던 것도 뭉쳐놓으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쌀국수가 그랬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취향에 맞게 라임을 짜 넣거나 말린 고추를 조금 넣으면 또 다채로운 맛을 더해 먹을 수 있다. ‘맛이 다채롭다’는 말은 쌀국수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고기의 깊은 맛, 고수의 향긋함, 라임의 상큼함, 고추의 얼큰함이 조화롭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했다. 이 집에서는 닭고기 쌀국수와 볶음면 요리를 먹었다. 닭고기 쌀국수도 맛있었는데, 볶음면은 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