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느끼는 하노이
베이컨에 볶음밥, 스크램블에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가 길을 나섰다. 호텔 조식으로는 왠지 베이컨과 스크램블을 먹어야 할 것만 같아 기어이 아침을 먹었다. 어제 못 간 ‘퍼 짜 쭈웬’에서 쌀국수를 먹는 걸로 시작해 하루 종일 식당만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웠다. 신서유기에 나온 음식도 모두 먹어볼 요량이다. 먼저 퍼 짜 쭈웬에서 쌀국수를 먹는다. 이어 시내 구경을 하다가 꽌안응온에서 반쎄오를 먹는다. 호안끼엠 호수 구경을 한다. 마찬가지로 신서유기에 나온 연유 커피를 마셔보고 ‘오바마세트’를 판다는 분짜 흥리엔에 간다. 물가가 저렴한 곳에 오니 먹는 데 돈 쓰는 걱정을 안 해서 좋다.
호찌민 생가라든가, 문묘라든가 그런데는 관심이 없다. 관광지가 다 비슷하지 뭐. 우리나라 관광지도 막상 가 보면 별 것 없는데, 해외라고 얼마나 다를까. 안 갔을 때 너무 아쉬운 곳이 아니라면 그 지역의 시내나 거리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 온 느낌이 난다.
어제보다 날이 흐렸다. 공기가 뿌연 회색이다. 안개비가 내려 안경에 물방울이 점점이 찍힌다. 매연도 그득했다. 오늘은 손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도착했을 때는 열한시가 넘어 쌀국수를 팔지 않았다. 퍼 짜 쭈웬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만 장사를 한다. 생각보다 좀 더 더럽기도 했고, 고기 누린내도 심하다며 신포도를 보는 여우마냥 나왔다. 비를 맞으며 반쎄오를 먹겠다고 꽌안응온을 목적지로 설정해두고 이삼십분을 걸었다.
구시가지에서 호안끼엠 근처로 갈수록 도로가 넓어졌다. 신호도 간혹 보였다. 이 곳에도 신호등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사진으로 찍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는 봄 날씨라 익숙하지만, 코로 느껴지고 눈으로 느껴지는 모습이 서울과 한참 다르다. ‘넝 라’라는 베트남 전통의 원뿔 모양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베트남 전통 지게인 ‘가잉’으로 과일을 팔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옷차림도 각양각색이다. 긴 팔에 가벼운 겉옷 걸치면 괜찮은 날씨 같은데, 패딩에 코트에 털옷으로 둘둘 싸매며 다니는 사람이 많다. 신기하다.
건물도 독특하다. 폭이 좁고 위로 쭉 뻗어 있는 모양새다. 건물의 모양은 다채롭고, 도로변으로 큰 창문과 발코니가 있다. 측면에는 별 특징 없이 밋밋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다. 옆에 건물이 들어올 걸 생각해서 그런 모양이다. 조금 웃기기도 하다. 전면은 한껏 꾸며놓은 모양인데, 측면은 밋밋한 회색이라니. 신문지에 둘둘 쌓여 팔리는 열대과일 같다. 이런 집들은 거의 다닥다닥 붙어있다. 1층은 대체로 상가, 위층은 주거로 보인다. 찾아보니 ‘튜브 하우스’, ‘냐옹’, ‘도롱 집’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소리지만 토지정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한데, 전면이나 지붕, 발코니에서 개성이 살아난다. 비슷하면서 또 달라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밥을 먹고 쇼핑이나 할까 싶어서 쇼핑몰을 찾아갔더니 너무 빤한 백화점 느낌이라 1층만 둘러보고 나왔다. 아무리 먹으러 온 여행이라지만 쉴 틈 없이 먹을 수는 없으니 쉬어 갈 만한 카페를 찾아봤다. 마침 맞은 편에 스타벅스가 보여서 신나게 들어갔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라 좋고, 보도블록 하나도 생소한 해외에서는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공간이라 또 좋다. 신나서 들어갔지만 만석이라 옆에 있는 ‘콩 카페’로 들어갔다. 이곳도 베트남 프랜차이즈다. 커피에 코코넛을 섞어 만드는 음료가 주메뉴다. 라임주스 한 잔 시켜놓고 창가 쪽 어두운 갈색으로 반들반들한 나무 책상에 짐을 얹었다.
좀 쉬다가 숙소에서 먹을 과일이나 과자를 사가야겠다 싶어서 분짜 흥리엔 가는 중간에 들러보려고 구글맵에서 슈퍼마켓을 찾아 찍었다. 도착해보니 그냥 마켓이 아니고 시장이다. 입구에서는 철물점에서 팔 것 같은 물건들이 널어져 있다. 중고 핸드드릴 같은 것도 보인다. 잘못 왔다 생각하고, 빨리 가로질러서 식당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출구를 찾아서 움직였는데 한참을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이라 온갖 것을 다 파는데, 여러 가지 감각에서 날 것으로 훅 다가오는 장소였다. 공산품보다 각종 재료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형형색색의 과일도 있었지만, 뭉텅뭉텅 썰린 시뻘건 날고기들도 핏물을 흘리며 진열돼 있다. 팔리기 위한 비둘기와, 오리와, 닭이 바닥에 분변을 흘리며 조그만 케이지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탁한 녹색빛 나는 팔뚝만한 민물고기는 절반으로 잘려 내장과 피를 흘리며 꿈틀대다가 도마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비밀봉지에 둘둘 싸여 손님에게 건네 진다. 바닥을 축축했고, 구정물이 찰방거린다. 오토바이는 앞뒤로 빵빵거리며 매연을 쏟았다. 다시 큰길로 나왔을 때 안도의 숨을 토했다. 던전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