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두번째 제사가 돌아온다.

by 임석재
고향에 아내와 둘이 왔다. 가장 먼저 집에 두고 온 아이와 통화했다.

아이는 예상대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잘 지내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할 때도 몇 개월을 함께 했기에 아이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분들이기도 하고, 아이의 외할머니는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 아이를 더없이 잘 챙기고 계셨다.

짧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다시 아이의 큰고모와 몇 가지 상의를 했다.

아이의 할아버지에게는 딸 둘, 아들 둘이 있고 그중에 나는 막내아들이다.

이렇게 네 명이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기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 아이의 큰고모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부분은 그것에 동의했다.

이렇게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고 나니 부모님을 잘 보내드리는 것도 정말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몸은 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를 하나씩 하면서 '아버지가 고통스럽지 않으시다면 지금처럼이라도 계속 함께 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비석에는 '항상 존경합니다'라는 자식들의 생각과 '서로 사랑하며 살게요'라는 자식들의 다짐을 담기로 했다.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다.


재작년 오늘의 일기다.


고작 이번이 두번째 제사인데, 일기를 꺼내보니 아주 오래된 일 같다.


내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듯 하면서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듯 자주 아버지 꿈을 꾼다.


그런 나를 아내는 걱정스럽고, 안쓰러운 눈으로 자주 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제사를 앞두고도 우리 사남매의 꿈에 비슷하게 다녀가셨는데, 두번째 제사를 앞두고도 그런듯하다.


내가 얼마 전 꿈을 꿨었는데, 어제 작은누나가 꿈 얘길 했는데 놀랍게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다행인건, 언제나 그렇듯 모습도 표정도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는 것.


거기가 어디든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갈 수 없는 곳. 그곳에서 편안히 잘 계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못내 저리고 아프고 사무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자꾸만 꿈을 꾸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아픔이 무뎌지고 익숙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의 아버지를 뵐 수 없다고, 세월이 흐른다고 못이기는 채 잊을까봐. 나는 어쩌면 그걸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영화 <코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내 아버지가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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