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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리피자 Jun 02. 2023

주눅 들 필요 없어요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당당하게 움직이세요.

왜 그렇게 주눅 들었을까?


나는 남들과 함께 걷는 그 길에서 이탈한 중도 탈락자일까?


임원을 향해 가는 그 기나긴 여정에서 나는 포기를 선언한 패배자일까?


칸막이 쳐진 책상 앞에 앉아 어둠 속에 조용히 지내다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이 참 많은 편이다. 그놈의 생각 때문에 어쩌면 주저하는 경향이 생겼을지 모르겠다.


회사를 떠나면 홀가분할줄 알았다. 미친 듯이 개운하고 반대로 나는 지옥문을 탈출한 생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사하고 한 두 달 지난 후 나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해지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코로나로 더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 나는 더욱더 주눅 들었다.


나는 왜 퇴사를 해야만 했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뛰어난 업무 성과를 못 보여줬을까? 나는 무능한 존재인가?


이런 패배주의가 내 안에 하나 둘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생각조차 내 안에서 일어났다면, 그것 또한 내 것이고 피할 수 없다.


홀가분한 척했지만, 속은 그렇게 아프려 했다. 


나 스스로 나는 끝내 해내지 못한 사람. 끝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해 도망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남들이 아닌 내가 나를 그렇게 보았다.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이런 신조어가 여기저기 들렸다. 마치 퇴사자는 축복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는 분위기였다. 한쪽에서는 취업난에 코로나로 자영업자가 힘들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조직을 떠나 혼자서 일어나라. 사업해서 성공해라. 자본의 주인이 돼라.


한동안 서점가를 휩쓴 자기 계발 책에는 온통 인생의 주인은 나고 당장이라도 사업을 해야만 하는 가슴 설렌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유튜브를 보면 회사에 오랜 다닌 사람은 마치 무능하고, 정치질에 능하고 꼰대로 표현하더라. 무조건 성공하려면 회사를 나와서 인터넷 쇼핑몰을 해라, 부동산 경매를 해라, 온갖 사람을 현혹하는 썸네일과 문구가 넘쳐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자책 판매, 강의 컨설팅 비용을 요구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세상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조차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어렵다. 내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아닌 어떤 거품을 걷어내려고 했다.


나 스스로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해지려 결심했다. 


나의 퇴사를 어떤 거창한 구호나 용기 있는 사람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일이 그냥 힘들었고 싫었다. 그래서 한계를 느꼈고, 승진에서 밀리니 쪽팔렸다. 더욱이 고과를 보니 승진에 또 밀리겠다. 


인정하면 마음이 편하다. 자본주의 주인이라는 비현실적인 허상에 나를 끼워 넣을 이유가 없다.


나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고 수용하기로 했다.


나는 경쟁에 취약한 존재였다. 그게 본질이고 핵심이었다.


나는 죄인이 아닌데, 스스로 죄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밥 한 끼 식당에서 해결하기 두려웠다. 나는 그 값을 내고 먹어서는 안 된 사람이다. 당장 수입이 없으니 외식할 자격이 없다. 나를 좀 더 편하게 해 줘도 됐을 텐데, 나 스스로 나를 괴롭혔다. 연민과 자기 괴롭힘 그 중간을 넘나들었나 보다.


경험해 보니, 내 의식마저 내 마음에 동조할 필요가 없다. 그냥 눈치껏 지켜만 봐줘도 됐다.


비록 예전처럼 브랜드커피를 기분 내키는 대로 사 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 잔 사주자.


그럴 자격이 있다.


나와 나를 인식하는 내가 화해하고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모질게 괴롭히지 말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응원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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