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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디 Sep 07. 2020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

밀리의 서재, 이북의 세계로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필기는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써야, 책은 책 냄새나는 종이를 하나하나 넘기며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뉴미디어 시대니 4차 산업 혁명이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 내 몸은 마음과 달랐나 보다. 이미 내 몸은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에 적응하고 있었다. 모르는 길을 무작정 걸어보기보단 미리 구글맵으로 경로를 확인하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기보단 버스앱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 딱 맞춰 나가는 게 익숙한. 지금껏 나는 ‘선택적’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이런 내가 최근 몇 년간 “일상 속 디지털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넘쳐나는 종이책과 공책들을 더이상 보관할 곳이 없을 때, 무거운 책들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기 너무 힘들 때가 특히 그랬다. 확실히 아카이빙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드라이브만 한 게 없었다. 물리적 공간을 고민할 필요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정점을 찍은 건 <밀리의 서재>였다. 월 9,900원이면 3만 권에 가까운 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다는 이북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4달간의 밀리의 서재 경험 후 나는 밀리에 푹 빠졌다. 그뿐만 아니라 밀리는 내 독서 패턴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가 생각한 밀리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보통 종이책을 읽을 때, 책의 선정 기준은 관심 분야의 도서 또는 베스트셀러에 그친다. 책의 선택지가 좁다는 의미다. 반면, 밀리에서는 어떤 분야, 어떤 종류의 책이든 쉽게 골라 읽을 수 있다.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보통 종이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는 심사숙고의 선택 과정을 거친 후 서점에 재고가 있는지 미리 알아보거나 가까운 도서관에서 예약하는 긴 과정이 요구된다. 만약 어렵사리 집에 들고 온 책이 예상과 다르게 재미없기라도 하면 또 어떤가. 상상만해도 힘이 빠진다. 밀리는 이렇게 책을 사거나 빌리는 데 드는 수고를 덜어준다. 클릭 한 번으로 이 책 저 책을 훑어보고, 눈길이 가지 않는 책은 쿨하게 버릴 수도, 우연히 눌렀는데 마음에 드는 책은 오래오래 붙들고 있도록 해준다.  


둘째, 기능이 다양하다. 밀리를 쓰면서 가장 유용했던 기능은 형광펜과 메모다. 밑줄을 치며 읽거나 마음에 드는 부분을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이 종이책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북마크 표시해 놓고, 나중에 해당 부분으로 돌아가거나 검색을 통해 원하는 페이지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종이책에서 일일이 찾는 거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내용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화면 크기를 내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스크롤 바와 페이지를 통해 전체 페이지 중 내가 어디쯤 읽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쉬웠다. 나는 많이 사용하진 않았지만 오디오북 기능도 신기하다.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조용히 듣고 싶거나 다른 일을 하며 백그라운드로 깔아놓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걸 넘어 책을 '어떻게’ 읽을지도 고를 수 있는 시대라니.  


마지막, 경험의 공유다. 밀리는 PC든 리더기든 앱만 다운받으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기기 또한 최대 5대까지 등록할 수 있다. 나는 세 명의 친구와 하나의 아이디를 공유했다. 서재에 추천하고픈 (언젠가 꼭 읽으리라 다짐한) 책을 넣어두면 친구가 볼 수도 있고, 목표로 둔 책을 동시에 읽은 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 책을 읽는 동안 친구가 해 놓은 메모를 볼 수도 있다. 책을 끝까지 읽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속도를 조절하도록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새로운 종류의 social network가 분명했다. 



물론, 밀리의 서재에는 종이책의 그 감성도 없고, 아직 등록돼 있지 않은 책도 많다. 그런데도 나는 새로운 문물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니 이미 익숙해졌다. (주객전도 같지만) 밀리를 잘 이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새 아이패드도 하나 장만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열심히 책을 읽는 일뿐이다….화이팅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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