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살아, 나는 더 잘살게.

P에게.

by 런던에이미


몇년 전 짧은 내가 먼저 놓아버린 인연이 있었다.

사랑의 시작이 달랐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가속도를 달리는 그의 사랑이 부담스러워 먼저 끝을 냈다.

그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밥 먹자는 그의 연락에도 쿨하게 귀찮아했다.


그러다 영국에서 어느 날, P가 너무 그리워졌다.

이상했다. 절대 그리워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뒤늦은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한번도, 누군가를 아쉬워하지도 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나는 한국에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그가 보고 싶었고, 그와 다시 밥을 먹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그의 사생활을 더 염탐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내가 먼저 밥먹자고

연락해야지. 라는 용기와 희망을 되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업데이트 된 사생활은 결혼 준비였다.

그렇게 나는 그날 부로 모든 염탐을 끝냈다.


몇년이 흘러도, 아주 가끔 그가 떠오른다.

그리고 가정을 종종 한다. 우리가 그때 만났더라면, 내가 그때 그사람을 놓치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땠을까. 나는 그 시절의 그사람의 마음을 그리워하는 거겠지.

가보지 않은 가정의 스토리를 궁금해하는 거겠지. 그리고 P는 내가 만나면서 보낸 전 남자친구 중에

유일하게 잘살며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라는 존재를 꺼낼 이벤트가 생겼었다.

살면서 우연히라도 한번은 보고 싶었던 사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사람.

하지만 정작 그 이벤트날에는 그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벤트가 지나자 일주일 동안 미친듯이 그가 생각났고 궁금했다.


그즈음, 어떤 책을 읽었다.

과거의 전연인의 에피소드와 그 마지막 멘트. 잘살아. 나는 더 잘살게.

뭔가 띵했다.

나는 어쩌면 그리움 코스프레를 한건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었던 건지도.

단지 P가 그 상황과 그리움 코스프레하기에 맞아 떨어진 우연한 상대일뿐.

종종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랬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책을 읽고, 그런데 말이야. 나는 더 잘살거야. 라는 문장이 덧붙였다.


나는 P가 그립지 않다.

그리운 사람이 이제 더는 아니다.

우연히 보고 싶은 대상도 이제 아니다.

몇년간 내 그리움 코스프레의 대상이 되어준 사람, 이제 안녕.

각자의 길에서 알아서 행복하길 P. 잘살아.

나는 더 잘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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