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만난 눈빛들

눈빛은 바로 그 사람이다.

by 착한별


살다 보면 이런저런 눈빛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친절, 배려, 격려의 눈빛을 만나면 나도 감동과 감사의 눈빛이 된다. 반면 무례와 무시를 담고 있는 눈빛을 만날 때도 있다. 성형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눈빛은 고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사람의 마음이 눈빛에 드러나도록 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지나 시인은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이라는 시에서 사람의 눈빛에 진실과 거짓, 삶과 깊이, 마음과 인격, 감각과 취향, 생활과 삶의 태도 그리고 성격과 성품이 보인다고 썼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게 눈빛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눈만 보이는 투명인간이 된다면, 그렇게 눈빛으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선한 눈빛이 더 많아질까?


모임에 가려고 나왔는데 서울 가는 버스를 놓쳐서 지하철로 방향을 바꾸었다. 운 좋게 때마침 온 지하철을 탔는데 몸을 1/3쯤 앞으로 내밀고 있는 중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 앞에 서야겠다는 촉이 왔다. 내가 앞에 서자 ‘넌 내가 곧 내린다는 걸 용케 알아봤구나’ 하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다음 정거장 하차 방송이 나오자 엉덩이를 들며 나를 흘깃 보았다. ‘그래, 이제 너 앉아라’하는 눈빛이었다. 가볍게 목인사 하며 앉으려는데 끝내 괘씸하다는 눈빛을 주고 갔다. 우리는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 그녀는 왜 나를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을까? 우리는 전생에 팥쥐 엄마와 콩쥐였을까 아니면 한 남자를 두고 질투하던 사이였을까? 그녀가 내린 후에도 그 눈빛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지하철 공용 자리에 내가 다음 차례로 서 있었을 뿐인데, 심지어 본인은 내릴 차례였는데 그게 왜 괘씸한 것일까? 심기 불편한 일이 가득한 그녀에게서 툭 삐져나온 짜증이 내게 튄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요일마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그림책 모임 사람들과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날이었다. ‘반가워’,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눈빛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다정한 눈빛들을 만나니 그제야 지하철부터 날 따라오던 눈빛이 자기 자리가 아닌 걸 알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함께 전시를 보고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동안 눈빛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마치 한의원에서 원적외선 온열 치료기의 빛을 쬐고 있을 때처럼 마음의 구석진 자리까지 다시 혈이 돌고 에너지가 흘렀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달려와 안기며 나와 눈을 맞춘다. “어디 보자, 우리 엄마. 보고 싶었어. 잘 다녀왔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사이다. 올해 열 살이 된 아이는 매일 봐도 여전히 신기하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에게 온 거지?”라고 하면 아이는 “어디서 이렇게 포근한 엄마가 온 거지?”라고 한다. ‘내가 널 얼마큼 사랑하는지 알지?’라는 눈빛을 보내면 ‘알아, 나도 사랑해’라는 눈빛이 돌아온다. 그 눈빛을 품고 세상에 나가면 든든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마치 휴대전화 충전하듯이 우리는 매일 눈빛으로 사랑을 충전한다. 어린이의 호기심이 차오르는 눈빛이 좋다. 감탄하는 눈빛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눈빛만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다면 무관심, 의심, 질투, 이기심, 욕심, 무시의 눈빛 말고 관심, 진심, 사랑, 신뢰, 믿음, 열정의 눈빛을 가진 우리였으면 좋겠다. 그 눈빛들이 모두 모이면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빛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 글은 지난 2월 16일에 좋은 생각 제20회 생활문예대상에 응모했던 글이다. 올해는 5800여 명이 응모했다는데 입선에도 들지 못했다. 작년 말에 브런치북 대상이랑 동서 문학상에 응모한 것에 이어 이번이 나의 세 번째 도전이었다.


잠시

'나라는 사람은 글재주가 없나 보다.', '나 정도 쓰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축될 뻔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왜냐하면,


1. 겨우 세 번째 도전이었으니까.

2. 제대로 각 잡고 글이라는 걸 쓴 지 얼마 안 됐으니까.

3. 내 실력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쓰면 되니까.

4. 이게 마지막 기회는 아니니까.

5. 난 글 쓰는 일이 가장 행복하니까.


중학교 때 이후로 글쓰기 공모전에 도전해 본 건 최근 몇 달 사이에 단 세 건뿐이다. 용기 내어 도전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그러니 괜찮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