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 김준현

by 착한별

<나의 어느 면이든>은 김준현 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에 수록된 시다. 사람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면이 6일지라도 나는 4가 나와도, 2가 나와도 때론 혼자여도 좋다는 내용이다. 남들보다 앞서가지도 못하고 겨우 한 걸음이 전부일지라도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화자는 괜찮았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1이 나와서 친구도 없이 혼자 멍하니 하늘만 바라본 날도 있었을 테고 2나 3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어떤 면이 나와도 모두 나라는 것을. 그 면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몫이고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란 것을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함부로 나를 굴려도' 괜찮아진 것이다. 생각과 마음에 중심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준과 평가에 기대어 산다.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화자는 단단한 마음 심지를 갖게 된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되면 강력한 에너지가 생겨서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그것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 돔 같은 역할을 한다. 비상상황에서 투명 돔을 먼저 작동시켜서 도시를 보호하던 만화속 장면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어서 인지 나를 지키는 투명 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누군가의 못된 말과 나쁜 행동이나 내게 온 힘든 일을 튕겨낼 수 있는 투명 돔 말이다. 그런데 그 투명 돔은 내 외부에 설치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내면 에너지가 그 투명 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 알게 되었다.



ON 문장: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함부로 나를 굴려도 괜찮았다.


최근에 읽은 김준현 시집에서 읽은 문장을, 내게 온 첫 문장으로 골랐다.






PC가 아닌 노트북을 처음 쓴 건 선물 받은 L사의 '그램'이었다. 결혼 후에 노트북을 별로 쓸 일이 없었던 나는 고사양의 노트북이 굳이 필요 없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기에 줌 모임에 참여하면서 노트북이 오래돼서 가상배경 기능도 안 되고 화면 속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는 나도, 남이 보는 나도 해상도가 낮았다.


나의 10-20-30은 해상도가 낮은 노트북 같았다. 내가 보는 세상은 늘 흐릿했다. 단단한 마음 심지가 없어서 흐물거렸다. 누군가 강에 던져버린 페트병처럼 의지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살았다.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때는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라고,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왜 내게만 힘들고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세상을 원망했다. 흐릿한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라서 흐릿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라섹 수술을 하고 며칠이 지난 뒤에 맞이했던 첫 아침을 잊을 수 없다. 렌즈를 꼈을 때처럼 선명한 아침이 신기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본래 나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빠진 눈의 시력은 라섹 수술로 되찾을 수 있었다면, 마음의 눈은 어떻게 해야 선명해지는 걸까? 사십 대 중반이 지나서야 그 방법을 알았다.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면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내가 보는 것도, 남이 나를 보는 것도 선명해진다. 내가 보는 세상도 달리 보이고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내가 '선명한 사람'이 되어서이다. 선명한 사람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요.'라고 생각하는 것이 티가 나는 사람이다.


선명한 일상을 만나고부터 삶이 달라졌다.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방치했던 내가 눈에 들어왔다. 피하던 거울을 보게 되었고 '살 정리'도 하게 되었다. 내 아이 대하듯이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게 아무나 만나게 할 수 없었다. 점점 '내게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나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척이 아니라 찐으로 무의식까지 퍼지자,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을 불러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좋은 사람이어야 내게 그런 사람이 온다는 것을 이제 안다.


나를 어느 정도 돌보고 나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평온한 마음이 유지할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되니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돌봄으로 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선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김준현의 시처럼 이제 나도 사람들이 함부로 나를 굴려도 괜찮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알기에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오늘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더 소중하다. 오늘의 내가 평온하고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


선명해진 세상 속의 내가 좋다. 선명한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열심히 글로 써야겠다.


ON 문장: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함부로 나를 굴려도 괜찮았다.

OWN 문장: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부터 선명한 일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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