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이소영
올해는 작년보다 필사를 많이 했다. 아티스트웨이 모닝글쓰기도 한동안 했다. 서평도 부지런히 썼다. 최근에는 동시 필사도 시작했다. 키보드보다는 연필과 볼펜으로 '쓰는 기분'을 제대로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눈으로 본 것을 손으로 감각하면서 쓰고 그리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고 힐링이 되었다.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었다. 오감 중 시각과 청각만 주로 사용하고 살았을 때는 몰랐던 촉각의 힘을 알았다. 누군가는 요즘 필사가 유행인 것을 '시각 독재에 맞서는 손의 귀환'이라고도 했다. 감각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림책 세계에 빠져들면서 '그림을 읽는다 '는 말이 무엇인지 점점 알게 되었다. 그림책 서평을 쓴 시간들은 그림을 더욱 깊이 읽는 시간이었다.
최근에 나온 이소영 작가의 『그림 읽는 밤』을 보면서 작가와 닮은 마음이, 그림책의 그림을 읽고 다양한 책의 문장을 수집했던, 내게도 있었음을 알았다.
그림 이야기에 작가가 '문장 서랍'에 넣어두었던 문장을 매칭시킨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와닿는 문장을 발견했다.
ON 문장: 눈보다 손이 깊게 읽는다.
나는 이 사실을
오랜 시간 책과 그림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들이
손끝을 거쳐 종이 위에 내려앉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 이소영-
손 끝을 거쳐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고스란히 받아 적는 필사도 내 글로 다시 표현해 보는 일도 모두 이것에 해당된다고 본다. 무엇보다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는 말이 큰 울림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나도 '내 것이 되는 것'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림 읽는 밤』여러 장을 읽고 필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쓰고 있다. 손끝을 거쳐 종이 위에 내려앉는 글들이 비로소 내 것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머니, OO 이는 뭔가를 열심히
연습해서 해본 적 없죠?
초등학생인 아이가 지난 주말에 영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했었다. 언어 감각이 있어서 수업시간에 즉흥적으로 대답 잘하고 숙제를 덜 해가도 그 자리에서 순발력으로 해버리는 아이를 학원 원장님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원장님과 나의 생각이 맞아떨어져서 영어말하기 대회를 준비해서 나가게 되었다.
열정적인 원장님은 대회에 나가기로 한 아이들이 원고를 쓰고 고치고 제스처를 만들고 매일 20번씩 읽고 영상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게 했다. 매일 20번은 읽어서 입에 붙도록 하라는데 10번도 안 읽고 영상 찍는 아이를 보면서 화가 났다. 사실 그 모습은 예전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해력, 암기력과 순발력으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안 해도 시험 직전에 봐도 다 기억하고 푸는 나였다. 그러다가 그게 안 통하는 고등학교에 가서 망했다. 통역사 시절에도 매번 임기응변으로 넘기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기본기가 없다는 걸 잘도 숨겼다. 그런데 나의 아이가 나를 똑 닮았다. 초등학생인데 벌써 요령껏 임기응변으로 하는 능력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고 대충 하고 막판에 한다. 나처럼 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실력 쌓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이 녀석이 내 얘기는 다 잔소리로 흘려듣는다.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라는 말을 아이에게 잔소리처럼 하던 나였는데 이번 대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나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원장님은 하드웨어가 좋아서 남들이 원서 10권 읽을 때 한 두권만 읽어도 되는 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10권을 다 읽으면 더 성장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야말로 스스로 무언가를 꾸준히 열심히 끝까지 해본 적이 없다. 아이에게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잔소리보다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재능 1도 없는데 작가 되고 싶은 사람의 자세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눈보다 손이 깊게 읽는다.'라는 문장을 보며 내 손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매일 손이 더 깊게 읽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손이 더 깊게 읽도록 해야겠다.
ON 문장: 눈보다 손이 깊게 읽는다.
OWN 문장: 눈과 마음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손으로 깊게 읽어내는 쓰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