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왼손잡이야

별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나의 세상 속 목성에게

by 차크라

"오직 너만이 윌크야~"

요즘에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브레드 이발소. 아이가 팔 골절 사고를 당하고 집콕하고 있는 요즘, 덕분에 명탐정 코난을 시작으로 브레드 이발소까지 안 보는 애니메이션이 없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이지만 어른이 봐도 재미있고 거기다 여운까지 남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 어떤 작품보다 손색없다고 느끼는데 요즘 보는 브레드 이발소는 집콕 육아로 힘든 일상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M.I.L.K가 아닌 W.I.L.K로 태어난 우유소년 윌크는 'M'이 아닌 'W'로 인쇄되어 태어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브레드이발소 사장님을 찾아가 우유소년 윌크의 콤플렉스인 'W'를 어떻게든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 부탁을 하는데 이것저것 해봐도 소용이 없어 좌절을 겪고 있는 윌크에게 브레드 사장님은 말한다. "넌 다른 우유들과는 달라. 그래서 넌 특별한 거야!"


말이야 쉽고 만화니까 웃고 넘기겠지만 현실세계를 사는 인간사에서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들 눈에는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극복해야 할 과제와도 같은 문제들이 저마다 한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오른손잡이인 나의 꼬맹이는 오른쪽 팔을 다치는 바람에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들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밥 먹는 것부터 시작으로 아주 사소한 줄 긋기까지 아이는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자 답답한 마음을 짜증으로 풀어냈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인 나의 마음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시간이 꽤나 힘들었다.

'왼손을 다쳤다면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을 텐데..'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해서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아이는 오른손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 입장에서는 쓸모가 별로 없었던 왼손은 이번 기회에 아이에게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첫 시작은 그림 그리기.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오른손으로 그릴 수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짜증만 내었지만 지금은 왼손으로 펜을 잡고 색칠하기부터 시작하여 눈, 코, 입 디테일까지 살려 어설프게나마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오른손만큼 만족도가 높을 리 없지만, 아이는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왼손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 그 마저도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바뀌었다. 아이의 입에 한 숟가락씩 넣어주던 식사시간은 아이 스스로 왼손을 이용해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젓가락질이 어려우니 포크와 숟가락을 왼손에 쥐고서 밥 한 숟가락에 소시지 하나를 포크로 집어 먹으며 나의 아이 밥 시중드는 시간은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타고난 왼손잡이다. 지금은 왼손잡이가 더 똑똑하다면서 왼손 쓰는 일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만 나의 부모님 세대들은 오른손이 바른손이라는 인식 하에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을 때였다. 어린 시절 밥 숟가락을 왼손으로 들고, 색종이를 자를 때 왼손으로 가위를 잡던 나의 모습에 주변 어른들의 시선이 남달랐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했던 말들도 아직도 기억한다.

'왼손으로 하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7살 때 연필을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잡아주었다. 그리고 글씨만이라도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는 특명을 내리고 나는 1년가량을 불편한 오른손으로 글씨를 연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삐뚤삐뚤하지만 오르손으로 글씨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글씨 쓰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어 필기를 많이 해야 하는 과목은 정말 나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초등 1학년 입학 후 내가 제일 싫어했던 시간은 쓰기 시간과 경필 쓰기 대회 연습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나는 억지로 엄마 손에 이끌려서 서예학원으로 간다. 그리고 그 섬세한 붓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나의 고난은 시작이 되었다. 줄 긋기를 보통 일주일에서 이 주일이면 끝낸다던데 나는 그 지겨운 줄 긋기를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 두 달을 넘게 이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언제 저 하얀 화선지를 써보나..'

무딘 감각의 오른손으로 섬세한 서예를 한다는 것은 만 9살 인생에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아이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은 벌써 나를 넘어서서 하얀 화선지에 글씨를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나는 몇 달째 신문지에 줄 긋기만 하고 있으니 그 당시 나는 내가 정말 싫었다. 나는 매일 서예학원을 갔다 오면 엄마에게 울면서 그만두고 싶다 말하기 바빴다. 그 시간을 억지로 견디면서 내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그만했던 것은 드디어 하얀 화선지로 바뀌고 나서였다. 그 몇 달 동안 나는 보기도 싫었던 붓과 미운 정이 들었는지 성큼 친해져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예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큰 취미로 자리 잡았고, 서예대회에서 '금상'이라는 값진 성과로 그 힘든 시간을 견딘 보람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나는 왼손잡이에서 양손잡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포기하지 않게 기다려줘서..


우리 꼬맹이는 지금 거실에서 레고를 조립하고 있다. 집콕하는 동안 심심한 하루를 레고로 보내고 있는데 설명서를 보면서 서툴지만 왼손을 써가며 하나하나 조립을 해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그동안 쓸 일이 별로 없었던 왼손을 활용하는 나름 좋은 시간도 보내게 되었다. 왼손을 쓰는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그림일기와 받아쓰기를 서툴지만 왼손으로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완성된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만족해하는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이 뿌듯해졌다. 사실 아이가 오른팔을 다치면서 '두 달 정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구나'하면서 낙심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통증으로 오는 아픔과 오른손을 쓸 수 없다는 불편함에 아이도 나도 너무나 힘든 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통깁스를 푸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방법을 찾아냈고 왼손을 쓰는 방법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목성은 나의 세상에 구원자와도 같은 행성이다. 어려운 순간에 힘든 순간에 목성의 빛이 있다면 나의 세상은 전화위복이 되어 나를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별이다. 목성은 길성이다. 나의 목성은 고단한 나를 그냥 지나쳐 힘들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이를 보면서 왼손잡이로 살면서 오른손을 쓰기 힘들어했던 나의 모습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왼손과 친해져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힘든 시간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누군가가 나의 콤플렉스로 위축되게 만든다 할지라도 지금 이 시간을 기억한다면 분명 나도 아이도 예전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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