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나의 세상 속 태양에게
'나는 천사일 수도, 악마일 수도 있어. 네가 누구냐의 따라서'
예전에 독서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지인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처음 본 순간에는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로 시작해 끝으로 가면서 '이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라는 생각으로 잠겼다. 생각해 보니 내가 모두에게 나이스한 사람은 아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두에게 천사처럼 보이고 싶겠지만 누군가에게만큼은 악마라는 것을 정당화 혹은 합리화하며 심술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 나빠. 그래서 어쩌라고!'
천사처럼 보이기를 거부할 만큼 천사처럼 보일 필요가 없어진.. 그런 사람.. 나에게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일관성을 갖고 있는가 싶다가도 때에 따라서 모습을 바꾸는데 탁월한 존재이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서 옷을 자연스레 갈아입듯이 말이다. 나는 유난히 겨울을 싫어하는데 피부를 당기는 건조함과 회색 빛깔 하늘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보고 있으면 내면 속에 꽉 눌러놓고 있던 우울함들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그저 지구에서 조금 멀어져 갔을 뿐인데..
태양이 적당한 거리에서 빛을 전해주면 온화함을 느끼지만 태양이 조금만 더 멀어지면 세상이 얼어붙고 반대로 태양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오면 그 태양 빛에 타기 마련이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의 온도만큼 인생을 살다 보면 훈풍이 부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내가 정말 싫어하는 혹한기 계절도 꼭 한 번은 원치 않아도 만나게 된다. 가을에서 바로 봄으로 갈 수 없듯이 말이다.
개그우먼으로 유명한 조혜련 씨의 기사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그녀에게는 딸과 아들 남매가 있는데 딸은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자신의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낼 줄 아는 전형적인 전교 1등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입장에서는 딸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를 한 번도 실망시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녀의 딸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반면에 아들은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정처 없이 헤매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무의미하게 학교 생활을 하던 그녀의 아들은 자퇴를 하고, 초등학교 졸업에서 학업을 멈추고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들의 걱정은 태산같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에게 반전이 일어난다. 쭉 엘리트 코스로 탈선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딸은 갑자기 다니던 명문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의 시기를 걷기 시작했다. 반면에 아들은 없던 목표의식이 생기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엄청난 몰입으로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누구보다 빠르게 패스하여 대학입학 자격 조건을 만들어 놓는다.
사람의 인생에서 목표가 없다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사람이 살면서 각자 나름대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 '나는 사랑이 제일 중요해', '나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하고는 잠시도 있고 싶지 않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야'.. 나름의 경험치가 만들어낸 가치관들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에 방향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간다. '사랑', '대화', '돈'.. 글자는 다르지만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이자 가치들이다. 사랑이 제일 중요한 사람은 그 사람이 차고 있는 시계나 그의 출신 대학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 대화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나와 어떤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에 관심이 쏠린다. 돈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상대방의 직업, 사는 곳 등등 그 사람의 배경에 주의 집중 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그 로직대로 움직인다. 사람은 그러한 존재이다. 내가 의도하든 무의식적이든 가치를 두는 곳에 목표 설정을 하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존재. 목적이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태양만큼 내 인생에 가장 간섭이 많은 별이 또 있을까. 나의 하루 일과를 지배하고, 처음과 끝을 마주한다. 태양이 목적을 잃으면 한 없이 멀어지거나 한 없이 가까워져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태양은 백성을 괴롭히고 고단하게 만드는 사나운 폭군과도 같다. 하지만 목적의식이 분명한 태양은 언제 어디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온화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정처 없이 방황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러한 태양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세종대왕 같은 성군과도 같다. 내가 한껏 예민해져 있고 무기력해져 있던 때가 언제였지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 그때가 떠오른다. 그 시절 나의 태양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나운 태양이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완성이 될 줄 알았던 고3 시기를 지나서 대학에 간 후 나는 바늘 없는 나침반과 같은 시기를 맞이했다. 입시의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춘기 때도 겪지 않았던 방황의 시기를 대학생이 되어서 겪을 줄이야.. 대학을 가야 한다는 목표의식, 목적을 이루고 나니 나의 꿈은 사라졌다. 이젠 무엇을 이뤄야 할까. 그다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방황의 시기는 생각보다 길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잘하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남들이 한다고 하기에 토익 점수도 만들어 놓고, 따두면 가산점이 붙는다는 자격증 공부에도 매달려봤다. 하지만 목적 없이 남들 따라 하는 공부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욱 지치게만 만들 뿐이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환하게 타올라야 할 나의 태양은 좁은 다락방에 갇힌 태양처럼 빛을 잃고 나 스스로를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였고, 그 누구에게도 나의 모습을 밖으로 비추지 않았다. 내가 어두운 다락방을 나오게 된 계기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의식이 생기고 난 이후였다. 그 목표가 생기고 나서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손에 펜을 잡고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재미없다면 아마도 나의 태양은 빛을 잃고 방황하는 중일 것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남들 시선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내가 새로운 것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 아닐까. 지금 30대 후반이 되어서 20대 초반 그 시절을 떠올리니 무엇을 도전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그런 나이였다. 그 어떤 것을 시도해도 실패를 한다고 해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나이였다. 지금도 나는 30살 후반에 내가 무엇을 시작할 수 있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50대 혹은 60대에 접어들어 아직 은퇴하기에는 젊은 나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지금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아, 그때 시작해도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었구나. 그때 뭔가 준비했으면 좋았을걸..'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목표가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할 만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