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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크렐 Jul 11. 2022

(나름) 마라 매니아가 말하는 마라탕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먹다 보면 자기만의 레시피가 생기는 그것

코로나 직전인 2018~2019년은 그야말로 '마라 광풍'이었다. 점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마라탕집이 늘어나다가 그 맛이 한국에서도 퍼지면서 한국인들(특히 젊은 여성)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마라의 맛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운맛과는 다른 또 다른 센 매운맛이다 보니 뭔가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 쓰는 '마라맛' 같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여하튼 이제 적어도 서울과 그 인근에서는 마라탕집을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기간이 흐르면서 체감상 좀 줄어든 것 같기는 한데...


나도 마라탕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스트레스를 풀 때 마라탕만한 게 없다. 예전에는 틈새라면류의 매운 라면을 주로 먹었는데 매운 라면은 일단 찾기도 은근히 쉽지 않고 먹으면 다음날 엄청나게 매운 맛에 반드시 속이 탈이 나서 약간 작심하고 먹어야 한다. 마라탕도 물론 다음날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운 라면보단 여파가 덜한 것 같다. 훠궈도 가끔 먹는 편인데 물론 훠궈보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혼자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어디까지나) 저렴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뚜렷하다.


마라탕의 묘미는 토핑이 자유롭고 그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마라탕집에 가면 적어도 20가지 이상의 토핑이 쫙 나열돼 있다. 나중에 추가하는 고기류를 제외하더라도 청경채,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알배추, 고수, 유부, 시금치, 새송이버섯, 숙주나물, 쑥갓, 메추리알, 얼갈이배추, 떡국떡, 가래떡, 새우, 단호박, 감자, 연근, 깍둑 썬 두부, 건두부, 푸주, 문어완자, 목이버섯, 햄, 비엔나소시지 등등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많다. 


면만 따로 놓고 봐도 일반 당면, 가는 당면, 분모자(중국식 당면), 납작분모자, 중국식 쌀국수, 옥수수면, 녹두당면, 분사(실당면), 라면사리 등 너무나도 많다. 업체에 따라 도삭면, 칼국수, 쫄면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은 심지어 소스도 DIY 식으로 다양한 것을 취향껏 혼합해 먹도록 마련돼 있다. 땅콩소스, 해선장, 굴소스, 소고기장, 고추기름, 칠리소스, 다진마늘, 다진파, 땅콩가루, 산초가루 등 다채로운 소스가 놓인 걸 보면 때로는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달 방문한 서여의도 쪽에 있는 금화쿵푸 마라탕. 다양한 토핑들이 쫙 나열돼 있다. 서여의도에도 체감상 마라탕집이 요 근래 많이 늘었다.

사진에서 보듯 이렇게 뭐가 많이 늘어서 있으니 처음 오는 사람들은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 맛있어 보여서 다 때려넣으면 뭔가 이상하게 섞여서 맛이 오히려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이에 더해 뭔가 이것저것 많이 넣으면 가격이 많이 비싸질 것 같기도 하고, 면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도대체 어떤 면이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마라탕 추천 레시피' 류의 게시글이 많을까.


나도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마라탕을 먹는 편인데 계속 마라탕을 먹다 보니 내 식대로 확고하게 토핑과 면 등을 넣어 먹게 된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점점 내 취향을 찾게 되고 어느덧 정해진 토핑대로만 먹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끔 기분 내키면 한두가지 정도 더 추가해 보는 정도? 그렇게 내가 정한 재료를 다 때려넣고 마라 국물(한국에서는 주로 사골국물 베이스로 우려내는 것 같다)에 이 모든 재료를 푹 담가 버리면 신기하게도 맛있다...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재료인데도 마라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지는 마법. 


이곳은 특이하게도 기본 반찬으로 새우칩이 나온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마라탕 국물에 찍어먹으니 참으로 잘 어울린다.


나는 마라탕을 먹을 때 면을 꽤 많이 넣어 먹는 편이다. 또 고기도 많이 추가한다. 보통 소고기와 양고기 중 하나를 추가하는 편인데 이날은 소고기만 추가했다. 진짜 힘들고 플렉스하고 싶은 날 두 가지 고기를 다 넣는 편인데(보통 이런 날은 맥주도 시킨다) 그러면 양은 물론 맛의 수준이 올라간다. 


사진은 약 한달 전에 먹은 마라탕인데(그러고 보니 조만간 마라탕을 먹을 타이밍이 온 셈이다) 이날 넣은 토핑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자면 소고기, 청경채, 숙주나물, 고수, 쑥갓, 알배추, 감자, 메추리알, 분모자, 녹두당면, 일반 당면, 새송이버섯, 시금치, 건두부, 새우 등이 있다. 처음에 먼저 분모자를 몇 개 건져 먹고, 그 다음 야채와 고기를 한입에 넣는다. 맵고 빨간 국물을 머금은 야채와 고기는 풍성한 맛을 자랑한다. 한국식 빨간 국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맛.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청경채, 분모자, 버섯, 소고기, 고수, 당면 등 다양한 토핑이 들어갔다. 위에 땅콩가루 같은 건 식당에서 임의로 뿌린듯.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면은 중국식 쌀국수면이다. 베트남 쌀국수가 좀 얇은 느낌이라면 중국식 쌀국수는 다소 두껍다. 약간 쫄면이랑 비슷해 보이지만 식감은 상당히 다르다. 마라탕에 넣으면 쫄깃하면서도 탱탱한 식감이 아주 잘 어울린다. 약간 중국식 우육면인 '란저우라몐'에 넣어 먹는 면이랑도 비슷한 느낌인데 같은 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면을 취급하는 마라탕집이 은근히 별로 없다는 것. 아무래도 선호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 면이 보이면 가장 먼저 골라 담곤 한다. 내 원픽이다.


마라탕을 먹을 때 나는 늘 가장매운맛 한단계 아래로 시킨다. 매운맛이 좋아서 마라탕을 먹는 건데, 어쨌든 다음날도 생각을 해야 하니 살짝 타협을 본다. 한국식 매운맛이랑은 좀 달라서 평소에 매운 것을 잘 먹는다고 하더라도 마라탕의 매운맛을 잘 먹느냐는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물론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매운맛이든 마라탕의 (소위 '마'하다고 하는) 매운맛이든 둘 다 좋아하는 매운맛 매니아다...그런데 매운 것을 못 먹지만 마라탕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물을 하얗게 한 마라탕도 있더라. 약간 백짬뽕 같은 느낌.


고수는 꼭 넣어준다. 고수야말로 엄청나게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인데 고수의 걸레 빤 냄새가 은근히 마라탕 국물과 잘 어울린다. 고수를 넣어주면 마라탕 국물맛이 좀 더 깊어지면서 느끼함도 잡아주는듯. 사실 고수를 이렇게 계속 먹다 보면 어느새 그런 냄새도 향긋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베트남 이런 데서 파는 고수보다는 향이 약하기 때문에(그 동네 고수는 향이 정말 세긴 하다)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가게에 따라 고수를 함께 넣어서 끓이는 집도 있지만 나중에 고수를 따로 썰어서 완성된 마라탕 위에 올려주는 집도 있더라.


마라탕을 많이 먹는 분들을 보면 보통 목이버섯, 푸주(마른 두부껍질), 문어완자, 옥수수면 등을 추가한다고 하는데 난 안 넣는다. 목이버섯랑 문어완자는 원래 별로 안 좋아하고, 푸주는 개인적으로 얇은 건두부가 더 맛있게 느껴져서 빼는 편이고, 옥수수면은 얇은 면보단 두꺼운 면이 취향인데다가 다른 좋은 면들이 너무 많아서 굳이 안 넣는다. 사실 마라탕 재료에 정답은 없다. 채식주의자(비덩 기준)들은 야채류만 넣어 먹으면 되는 거고, 면을 좋아하면 면을 집중적으로 넣으면 되는 거고, 아무도 뭐라 안 한다. 뭐가 맛있는지도 그저 취향 차이일 뿐이다.


고기와 야채, 국물을 한데 떠서 후후 불며 한입에 넣으면 진짜 맛있다. 이게 마라탕의 묘미...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불만 하나. 요즘 마라탕집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마라탕에서 마라 특유의 '마'한 맛이 잘 나지 않는 집이 은근히 많아졌다. 중국 본토에서도 어쨌든 훠궈 국물 베이스가 사골이니 사골 느낌이 많이 나는 건 그렇다 치는데 어떤 마라탕집을 가면 이게 마라탕을 먹는 것인지 그냥 야채와 고기 잡다하게 넣은 얼큰한 국물요리를 먹는 느낌인지(심지어 뭔가 전체적으로 애매해서 이도저도 아닌 집들도 종종 나온다) 알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생각한 맛이 아닐 때 '아, 잘못 왔구나' 싶다. 한국식으로 로컬라이징하는 건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그런 시도를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양념을 이상하게 만든 건지...이러니 다음부터는 아무데나 들어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별점 같은 걸 보게 된다.


한 4년 전인가, 혼자 중국 베이징에 가서 그곳에 있는 1인 훠궈집에 있는 훠궈를 먹고(그냥 가볍게 먹고 나오는 곳이었음에도) 국물이 밴 재료에서 배어나오는 특유의 '화'한 맛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때부터 한국에서도 마라탕집을 자주 드나들게 된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중국에 갈 기회가 생기면 기왕이면 훠궈의 원조라는 사천지방을 한번 가보고 싶다. 거기 가서 이거저거 넣어서 실컷 먹어보고 싶다. 이 글을 쓰니 또 마라탕이 먹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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