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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주현 Jun 07. 2018

매일 그리기

소소하지만 커다란 원동력

매일 같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어떤 일이 되었건 그것을 매일 매일 꾸준히 한다면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훈련처럼 반복된 경험을 노력이라고 부르고 그 노력의 결과만이 능숙함을 만들어 줍니다. 한 두번 열심히 해본것을 '노력'이라고 명명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하지만 이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간이 없고, 바쁘고, 피곤하고, 주말은 자야하고,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등등 오만가지 일들이 우리의 꾸준한 노력을 방해하려고 등판합니다. 마치 '난 이것을 꾸준히 할꺼야!' 라고 마음먹는 순간 온 우주가 그 일을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운동기구보다 사람이 많은 1월의 헬스클럽이 불과 한달 뒤에는 텅텅 비어있는 것이 그렇고, 책장에 꽂힌 채 몇년 째 열어 보지도 못한 책들이 그렇습니다. 


이쯤 되면 이건 자연 법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2017.5.23 펜과먹


운이 좋게도 저는 매일 아침 그림을 그립니다. 반복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림의 대가가 되기 위해 매일 드로잉을 하겠어!' 라고 결단 하며 머리를 싸매고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하루 이틀 그리다가 나가 떨어졌을것 같아요. 그저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 전 30분의 시간을 할애 합니다. 출근 시간이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 더 늦은 것도 제겐 큰 행운이죠. 그렇게 그림을 즐깁니다. 30분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때로는 늦어진 줄 모르고 그리다가 헐레벌떡 출근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지각을 하는 한이 있어도 아침에 그리는 그림이 즐거워서 쉽사리 포기하기 어렵더라고요. 


그 즐거움이 바로 이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 일어나다 보니 일찍 잠이 오고 그 때문에 술자리에서도 일찍 일어나는 것은 보너스로 얻은 덤이고요. 30분 동안 그린 그림을 SNS에 올리고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피드백을 확인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 입니다. 제가 매일 같이 그림을 올리는 것처럼 매일 같이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구경하면서 출근길 3호선의 지옥 구간을 버팁니다.



2017.6.13 펜과 색연필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침을 보다 여유롭게 만끽하게 된 것 이외에도 다른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데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그림 그리는 직장인으로 브랜딩하게 된 것입니다. 얼떨결에 저를 부지런하고 워라벨을 잘 유지하고 있는 녀석으로 봐주시더라고요 그저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있을 뿐인데 그런 칭찬이 들려올때면 조금 부끄럽습니다. 처세술, 자기 계발 류의 책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요새 부쩍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만끽 하라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가심비, 소확행이라는 신조어들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마도 이제는 삶의 양적 측면이 아닌 질적 측면으로의 가치 판단을 해야하는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그 열쇠를 그림으로 찾아가고 있는 것 같구요. 



2018.1.3 펜


조금씩 바뀌어가는 그림의 변화를 느껴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그저 그리고 싶은 사진과 재료를 골라 그립니다. 그러니 그날의 컨디션이나 마음 가짐이 그림에 녹아듭니다. 동일한 재료를 쓰더라도 선의 느낌이 매일 매일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것도 흥미롭고요. 어떤 날은 마음의 속도가 너무 빨라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아 다 집어 던지고 뛰쳐 나가 한바퀴 뛰고 싶기도 합니다. 하루의 시작에 앞서 자신을 모니터링 하게 되는 셈이죠. 이런 관찰은 분명 일정하게 반복되는 활동이 있기 때문에 감지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8.1.14 크레파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곰곰히 돌아보는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나 임에도 자기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느낍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뭘 해야할지 모르는 후배들의 진로 상담도 그렇고, 긴 연휴 보다는 일이 없더라도 출근하는게 속 편한 회사 선배님들의 소주 한잔도 결국 자기 존재 인식의 부재로 귀결합니다. 


그림으로 시작해서 조금 무거운 주제로 옮겨 졌지만, 저는 어떤 분야든 ‘좋아하는’ 무언가를 ‘꾸준히’한다면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값진 경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업이 아니면서도 나를 설레이게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취미 하나. 가져보시는건 어떨까요?


2018.5.24 아이패드(6B연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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