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여행자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심심찮게 들려오는 골목길 관련 이야기들이 있다. 몇 가지는 어느 어느 골목이 이쁘다더라 하는 여행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골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나는 골목을 여행하는 여행자로서 첫 번의 글 내용에도 관심을 갖지만, 그 여행을 위해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귀를 기울여 본다.
예쁘장한 골목길의 가장 대표적인 풍경은 비어 있는 몸통에 멋진 날개가 펼쳐져 있어서 방문자들로 하여금 멋진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도록 만드는 그런 골목 벽화가 그려져 있는 풍경이다. 이런 그림은 다소 낙후한 골목을 조금이라도 미화시켜보려는 시도였고, 때로는 이런 시도로 인하여 골목길이 환하게 변하거나 심지어 범죄까지 예방한다는 등의 긍정적 메시지도 덧붙였다.
전국 곳곳의 골목 가운데 가장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은 골목을 테마로 골목축제까지 펼치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행복해하는 축제는 아닐 것이다. 상업주의로 물든 골목의 변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심지어 발 빠른 자치구는 '골목축제'라는 명칭을 독점하기 위해 상표권으로 등록해 얼마나 사업성이 있는지 셈한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여하간 이제 골목은 한적하게 쏘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보여주거나, 혹은 거리낌 없이 훔쳐봐도 되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간간히 골목에 거주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심지어 어느 골목에서는 벽화를 지워버리려고 하고, 어떤 골목에서는 예의 없는 사람들의 발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그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개 벽화 아래서는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고, 골목길에 널린 사사로운 일상을 훔쳐보는 일이 멈춰지지 않는다. 그저 이 시대는 누군가의 일상생활의 공간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골목과 작은 방을 창문 하나로 구획하는 소박한 골목을 왁자하게 떠들며 지나가는 무례함도 용인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골목의 두런 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골목의 풍경이 주는 진한 땀냄새를 맡아본 적은 있는가? 고단한 삶을 누이려고 퇴근할 때에야 비로소 총총거리며 그 좁고 기나긴 골목의 계단들을 올라본 적이 있는가? 골목의 그 화려한 그림들이 무엇을 감추려고 그려졌는지를 아는가? 한두 번 기억나는 데이트를 위한 연인들의 공간이 아니라 골목은 누군가의 삶이 있는 곳이고, 그 공간은 때로는 철저히 가려져야 하는 사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발걸음을 주저한 적은 없는가?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이 벽 하나 사이로 전달될 때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거주자들의 불편함에 대한 배려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년 전 여름, 나는 서울의 골목을 걸어본 적이 있었다. 스무 개쯤의 골목을 걸으며 제일 먼저 놀랐던 것은 그 한적함이었고, 그 한적함은 때로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마저 거주자에게는 놀랄만한 소리로 전달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빨래를 널 공간이 부족한 좁은 골목 안의 협소한 주택들은 골목길을 건조실로 사용하곤 한다. 그곳에 널어져 있는 삶의 날것들이 눈에 들어오면 얼마나 미안하던지 눈길을 돌리고 뒷걸음질을 쳐보기도 했다. 막다른 골목을 들어서면 혹시 거주하는 누군가와 마주치지나 않을까 마음 조리며 그들의 골목을 훔쳐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걸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골목을 취재한 것은 출판했던 첫 번째 책이 팔리고 있을 무렵 연관된 다른 책을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골목과 카페를 연결하는 테마를 정한 뒤였다. 판권을 계약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물론 최대한 골목의 사사로운 정서를 해치지 않고, 거주자들의 사적인 삶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셔터를 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셔터음조차 작은 골목에서는 공명이 되는 것을 들으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뒤꿈치를 들고 걸어도 그 조심성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누군가와 좁은 골목 안에서 교행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목례를 하며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한 여름 내내 돌았던 골목의 사진이 수천을 넘어설 때쯤 골목은 그저 예쁘장하여 누군가의 여행지로서 갈만한 곳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너무 쉽게 남의 삶에 침범하게 되는 그런 곳이 골목이었다. 그렇기에 자주 망각하고, 그러다가 실수하게 되고 남의 삶의 중심부에서 바보처럼 떠벌리며 왁자하게 걸어가는 것은 아닌지 새김질하게 되는 곳이 골목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너무 반가운 마음에서 자칫 스스로 차려야 할 예의 따위는 망각하게 되는 그런 누를 범하지 않도록 머리로 몇 번이나 되뇌지만 그래도 골목 안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방종에 가까울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골목을 걷고 싶고, 그러면서도 남의 삶의 한가운데를 철없는 여행자처럼 희희낙락하며 걷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골목을 걸으며 몇 가지 내용들만이라도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혹시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유익한 골목길의 사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소음
발자국 소리조차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다. 더구나 동행자와 떠들며 거닐만한 공간은 아니니 절대 침묵할 것. 기본적으로 홀로 걷기에 가장 적합하고, 침묵의 수도자처럼 행동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와 도란거리며 나누는 말소리, 발자국 소리, 심지어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의 울림과 통화하는 소리를 그렇게 떳떳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촬영
가능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남의 사생활을 엿보듯 찍는 사진은 모든 이를 불편하게 한다. 내게는 이쁜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고도 세 번쯤 더 생각한 뒤에 소리 나지 않도록. 그리고 사진기를 목에 보란 듯이 걸고 다니지 말기를. 또한 누군가의 초상권을 침해하거나 남의 집 문을 슬쩍 열고 집 안을 촬영하는 등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간절히 찍어야겠다면 그곳의 거주자, 혹은 소유자에게 양해라도 한 번 구해봐야 하지 않겠나?
가벼운 목례, 혹은 인사말 건네기
골목은 사람이 있고, 삶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어쩌면 골목은 그 골목에 살고 있는 분들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며, 더구나 초대받지도 못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골목의 삶을 존중하고 예의를 가져보라. 어르신이라도 만나면 가벼운 목례라도 건네보고, 어린아이들의 하굣길을 대하거든 밝게 웃어주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정도 철지난 골목의 사진과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골목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고 그 골목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담으려 합니다. 몇몇 골목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되어버렸고, 어떤 동네는 빈집만 늘어나는 흉물스런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골목을 난 사랑하고, 그 길을 걸어서 사색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