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 여행자의 생각수첩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흥건히 젖을 그런 여름이었다. 그래도 콧노래가 났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긴장의 일상을 벗어나 그냥 내 발끝만 바라보며 터벅거리며 오르는 계단의 끝에서 만나는 잠깐의 희열 때문이라도 나는 기꺼이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 축구 경기를 치를 정도로 넓었던 골목길은 이제 누군가의 양보가 없이는 넉넉히 걸을 수 없는 것은 비단 내 몸집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작아지고 시시해 보일 정도로 나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가졌고 그 지식만큼 일상에 대한 권태와 지나간 시간들이 결코 화려하지 않았던, 오히려 초라함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몸담았던 그 거대한 세상이 이제는 정말 궁박해 보인다.
초등학교의 철봉을 바라볼 때마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더 매달려 있으려고 발끝으로 허공을 차던 지난 날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소가 되어 되돌아올 때 쯤 나는 그 궁색하고 초라해진 골목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고 주섬거리며 카메라와 뜨거운 정오의 해를 가릴 작은 페도라fedora 하나를 챙기고 있었다.
어쩌면 골목은 나의 성장기의 가장 드넓은 운동장이었고, 동네 형들로부터 코피 터지며 얻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거리들의 만용을 안겨주었고, 지나가던 준섭이네 아버지의 입바른 훈계에도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실천 이성의 도량이었다. 나를 키운 건 바로 매끈하게 구획된 도시의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이 아니다. 비만 오면 패여 있는 흙바닥에 물이 고여 징검다리 건너듯 요리조리 몸을 움직여 가며 걸어야 하는 낡은 추억의 현장이랄 수 있다.
그런 골목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도심의 찌든 일상의 청량음료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걱정이 앞선다.
민폐
자박거리며 걷는 걸음마져 누군가의 창문으로 스며들어 어젯밤 늦게까지 야근하고 단잠을 자던 이를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사색을 하고 여러 풍경들을 마음과 사진에 담고, 그러다가 누군가의 삶을 구경거리 삼아서는 안되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창문이 골목과 연결되어 고스란이 안팍의 소리가 전달된다. 당연히 내 걸음걸이가 소음이 되고, 비밀스러운 여늬집의 담소가 밖으로 흘러나온다.
예의
훔쳐보기
드디어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