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나 Apr 30. 2021

너를 잃는다는 것

찰스의 가출(?) 下



가진 것이 많아 잃을 것 또한 많은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위태로울까? 지난 삶이 내게는 뭔가 잃게 될까 두려운 것보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이 앞섰던 몸과 마음이 가난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생을 바라보는 내 태도는 거침없었고 제 멋대로일 수 있었지만, 어쩐지 주눅이 들어 있기도 했다. 삶에 지쳐서 팽개쳐진 나를 스스로 구해주자는 생각으로 귀촌을 한 뒤, 오로지 나만이 나를 돌보는 시간 속에서 매일 차곡차곡 소중한 것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또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더욱 반짝이는 것들로 나를 채워가고 있다. 가진 것이, 그래서 잃을 것이, 조금씩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은 계절이 서서히 겨울을 벗으려 자주 비를 부리던 때였다. 언니네 놀러 가 하루 자고 집에 돌아오니 찰스가 사라져 있던 것이다. 풀린 목줄만 남겨 놓고 찰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마음에 허둥지둥 마당을 휘젓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내가 찰스를 데리고 간 줄 알았다며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귀띔해 주셨다.


이따금씩 산책하라고 풀어놓으면 신난 걸음으로 골목을 나갔다가 금세 돌아오곤 했기에 나는 우선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가끔은 불러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나가 보면 수풀 같은 데에 끼어 낑낑거리던 때가 있었다. 목줄이 풀린 틈에 다른 개를 따라나섰다가 또 그러고 있는 건가 싶어 마을을 돌며 찰스를 찾아 나섰다. 처음 가보는 댁을 기웃거리며 찰스를 부르고, 논밭을 헤매도 찰스는 보이지 않았다. 해는 저물고 불안한 마음이 골목 아래까지 그림자를 늘린다. 나는 걱정을 몰고 돌아와 그날 저녁을 마당을 지켜보는 데에 보냈다. 마루에 서서 한 시간 간격으로 찰스를 불러댔다. 어디선가 내 목소리를 듣고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쫄래쫄래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몰라. 나보다 훨씬 마음 좋은 주인을 찾아 찰스는 모험을 떠난 거야. 마침내 어딘가에 잘 도착해서 사랑을 듬뿍 받고 사료 대신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게 될 거야.'



아직 찰스에게 정을 준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밤사이 내린다는 비 소식에 어디서 비라도 맞는 건 아닐지 녀석 때문에 마음이 내내 뒤척거리는 긴 밤이었다. 그날 밤 찰스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



"차알스야아아!"



다음 날 눈뜨자마자 찰스를 찾는 나를 보고 옆집 할머니가 우리 집에 건너오셨다. 길 건너 고추밭에 다녀오시다가 찰스랑 비슷한 개를 봤다고 하신다. 나는 허둥지둥 슬리퍼에 뒤꿈치를 반쯤 밖으로 걸치고 집을 나왔다. 고추밭으로 가기 위해선 큰 대로를 건너야 했는데 아마 차가 많이 다니는 이 길을 겁도 없이 건너갔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새 어디로 가버린 건가 싶을 때 저 멀리 밭 사이를 헤매는 분주함이 보인다. 찰스다. 털이 온통 황토색으로 물들어 버린 찰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오고 있었다. 온몸에는 도깨비풀 같은 것을 잔뜩 달고서, 밤사이 어떤 재미난 모험을 했는지 내 속도 모르고 얼굴이 아주 말갛다. 나는 그 철 모르는 눈을 마주하자 그제야 다리가 풀리며 요상한 기분이 든다. 찰스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기쁜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좋으면서 슬픈, 동시에 뭔가 불안하고 두려워 살짝씩 어긋나는 그런 박자였다.


아마 오랜 시간 잊고 지낸, 하지만 찰스의 가출 뒤에 느껴버린,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듯했다. 오늘은 찰스와 이렇게 재회했지만 언젠가 영영 찰스를 잃고 감당해야 할 마음이 아주 옅은 우울로 스민다. 태어난 날도 정확히 모르는 너를 데려와 나는 어쩌자고 이름을 붙이고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을 줬는지 공연한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다해 이 아이를 지켜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많은 사랑을 주겠다는 약속 대신에 찰스가 가출할 때마다 매번 최선을 다해 찾아주겠다고 마음먹는다.


시골의 어둡고도 긴 이방인의 밤을, 내가 잠든 마루 앞을, 작은 몸으로 지켜준 찰스. 나의 충분한 위안. 네가 또 어떤 모험을 떠나더라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고 꼭 찾아줄게. 따뜻함이 눈에 보이는 거라면 분명 너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기에, 난 언제나 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작가의 이전글 안녕, 시고르자브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