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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Apr 29. 2021

안녕, 시고르자브종.

찰스의 가출(?) 上



나는 다섯살 무렵 도사견, 심지어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 물려 피를 본 이후로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다. 자라면서 개에 대한 경계가 많이 사라졌지만 50 바늘을 꿰맨 흉터는 내 오른쪽 허벅지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마취도 못하고 생살을 꿰맨 것이 상당한 정신적 외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개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찰스를 키우게 된 일은 내게는 성장이고, 찰스에게는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지나가는 말이었다.



“시골은 역시 혼자 있기 무서워서, 나중에 강아지 한 마리라도 데리고 살까 봐요.”



며칠 뒤 집을 소개해 준 이웃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는 대뜸 수요일까지 새끼 강아지를 데려가라 하셨다. 내가 적잖이 당황한 것은 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의 ‘나중에’가 나도 모르는 새에 며칠 뒤가 되어버렸기 때문만 아니라 그 말씀이 권유가 아닌 통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혼자 있는 내가 걱정돼서 그리 하셨을 거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 강아지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아서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강아지를 데려갈 순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ㄴ’을 더듬거리며 “네”라고 대답해버린 것이다. 전화를 끊고서 일주일 동안 섣부른 대답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할지 고민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당장의 처지에 일생을 책임지고 함께 할 생명체라니.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다면 이런 비슷한 기분인 걸까? 도무지 어디에 빗대어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는, 준비되지 않음에서 오는 당혹감.


수요일, 결국 강아지는 작은 상자에 담겨 내 품에 안기고야 말았다. 양쪽 귀에 누르스름한 무늬가 있는, 코에 점박이 얼룩이 매력적인 똥개 새끼(정말 ‘새끼’였다). 당연하게도 그 강아지는 너무나 작고 소중했으나 내 마음은 그 아이에게 부모 또는 누나, 친구 그중 어느 것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하필이면 못된 인간과 얽혀버린 불쌍한 강아지는 한동안 이름이 없었다.





집을 고치는 동안 언니네 집에서 신세를 지는 나를 따라 강아지도 아침, 저녁으로 함께 출근과 퇴근을 했다. 부옇게 날리는 먼지를 피해 커다란 택배 상자에 담겨서는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향해 낑낑대거나 불린 사료를 먹고 방석에 턱을 받치고 잠이 드는 일이 그 애의 일과였다. 나는 여기저기 어설픈 망치질을 하거나 벽지를 뜯는 데에 혼이 빠져있다가 한 번씩 맥주를 마시며 쉬는 동안 녀석을 쓰다듬기도 하고 안아 올려 마당에서 똥오줌을 누게 했다.


그러기를 며칠, 마침내 강아지에게는 ‘찰스’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붙었다. 내 별칭은 ‘찰나’ 였으므로 나는 어쩌다 나에게 온 그 운 나쁜 시고르자브종을 동생으로 맞아 돌림자를 내주게 됐다. 마침내 내 삶에 녀석을 포함시키기로 한 참이었다.


식구가 늘었으니 부랴부랴 굵직한 집수리만 끝내고 한 달 여 만에 입주를 했다. 사람이 살 만큼 갖춰진 상태는 아직 아니었지만 안방에 침대 하나 놓고 지내면서 조금씩 고쳐 나가기로 했다. 나와 집 안을 번갈아 바라보는 찰스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찰스를 자연스럽게 키우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으므로 처마 밑에 상자를 놓고 집을 마련해 주었다.





찰스는 나의 무심함을 먹고 날이 다르게 쑥쑥 자라 성숙한 똥개가 되어 갔다. 지나가는 사람과 고양이를 보고 제법 짖을 줄도 알고, 늠름하게 뒷다리를 벌리고 서서 내 주위를 경계했다. 나는 여기저기 어지르며 강아지답게 구는 찰스가 종종 성가셨고 또 자주 귀여웠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름 없는 또래 강아지와 엎치락뒤치락 풀밭을 노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해가 진 겨울에도 추위가 달아나는 웃음이 났다.


그렇게 찰스와 나의 평화롭고 소란스럽던 날들 사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찰스 이 녀석, 가출(?)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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