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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May 15. 2021

여름 그 맛, 감자쌈.

알감자가 왕감자로 치환되는 기적



포슬포슬하게 분이 오른 감자를 집에서 만든 쌈장을 곁들여 상추에 싸 먹는다. 나의 유년, 여름날의 한 장면.


거실에서 상도 없이 엄마는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고소한 분내가 나는 감자를 젓가락을 엇갈리며 조각내서 쌉싸름한 상추 위에 올린다. 짭짤한 집된장이 섞인 쌈장을 떠서 넣고 상추를 오므려 입으로 와왕 가져간다. 강원도 사람들이 이렇게 먹는지 우리집만 먹는 엄마의 특별 레시피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직관적인 맛의 조합이 여름만 되면 자꾸 생각이 난다. 나 말고는 감자를 이렇게 먹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지 못했다.

엄마는 도대체 감자를 어떻게 쪘기에 그런 맛을 나게 한 걸까. 지나가버린 한여름 날을 다시 그대로 느끼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여름마다 감자를 사서 비슷한 맛을 찾아 흉내를 내본다.





내가 봄을 맞으며 가장 처음 심은 작물은 완두콩이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가업이 농사는 아니었으니 나는 농사에 대해 전혀 몰랐다. 주말농장을 위한 텃밭백과 같은 책을 샀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비료도 퇴비도 놓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고 키우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여, 그저 땅의 힘을 믿는다며 흙을 격려할 뿐이었다. 열심히 땅을 뒤집고 파내서 이랑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랑을 만드니 자연스레 고랑이 생기는 이치도 발견한다.


내가 언 땅을 파 뒤지고 있는 모습을 본 옆집 할머니는 당신 밭을 만들면서 같이 로터리를 쳐 줄 테니(기계로 흙을 뒤집어 고랑을 만드는 일) 공연히 힘 빼지 말라고 마음을 써 주셨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기계로 자꾸만 땅을 뒤집어 버릇하면 땅은 계속 딱딱해지고 그렇게 되면 또 많은 양의 비료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증된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나는 직접 해보면 알게 되겠지 싶어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농사는 언어와 같아서 직접 몸으로 거듭해야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고 한다. 물론 유기농이니, 자연농이니 이런 얘기는 할머니께 하지 않았다. 논과 밭에 나가 주름을 그을리며 자식들 해 입히고 가르치셨으니 쳐다보지도 못할 농업계 대선배님 앞에서 신입이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나는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농약, 비료, 비닐 멀칭 같은 건 지양하기로 한 나의 신념을 지키기로 한다.





완두콩이 주렁주렁 달릴 즈음 고랑 두 개에 하지 감자를 심기로 했다. 다시 그 텃밭백과를 편다. 목차를 더듬으며 감자 심는 법을 찾아간다. 책이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책을 보는지는 나 조차도 모르겠지만 일단, 기본 지식을 습득한다.



감자는 씨감자를 심은 위로 감자들이 달리면서 성장하니까 두둑을 높게 만들고 감자를 심을 때 깊이 아래에서 심어야 하는구나. 올여름은 특별히 직접 키운 감자로 꼭 그 감자쌈의 맛을 재현해 보겠어.(비장)



근데 시작부터가 좀 어설펐다. 분이 오르는 감자를 먹으려면 두백이라는 강원도 종자의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어디서 얻어 온 알감자를 심은 것이었다. 심고 난 뒤에야 아차! 싶었다. 추억의 맛을 느끼기엔 좀 어긋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알감자가 어디냐며 주렁주렁 열릴 감자를 생각하며 열심히 땅을 두드린다. 늦게 일어난 게으른 농부는 다들 쉬어가는 정오의 시간에 혼자서만 밭에 나가 한낮의 태양과 맞선다.


결과는 장렬히 전사.


감자를 먹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었구나, 싶다. 역시 몸으로 느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감자를 심어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감자를 먹을 때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이라고 얘기한다면 다들 나를 흰소리하는 사람 취급을 하겠지.



-



나는 무신론자지만 봄과 초여름 사이 비가 많이 내리는 걸 보면 꼭 신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호스가 없어서 물 양동이를 끙끙 밭으로 일일이 옮겨가며 물을 줘야 했는데, 마침 감자를 심고 나서 며칠 비가 내린다. 자격 없는 농부를 위해서도 단비를 내려주는 신의 자비란. 그렇게 땅과 감자, 그리고 신의 자비가 힘을 합쳐 나의 엉망진창 농사를 응원하며 여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감자에 싹이 났다, 잎이 났다, 뽀야 뽀야 뽀야. 하나 빼기 일!



당최 어디서 구전됐는지 모를 가위바위보 게임. 그 이상한 주문에 등장하는 감자 싹을 실제로 보게 되니 마냥 신기하다. 어떤 영양분도 보태지 않았는데 저 혼자서 씩씩한 자태로 여름을 키워가고 있다. 땅의 힘과 작물의 자생력에 다시 한번 경이를 느낀다.


알감자를 간장에 달콤하게 졸여서 밥에 얹어 먹어야지, 군침을 삼키며 마침내 감자를 수확하던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먹만 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흙 속에 자리하고 있던 것. 나는 알감자를 심으면 알감자가 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알감자는 그냥 작은 감자였을 뿐, 무럭무럭 자라 왕감자가 되었다. 알감자 조림의 짭짤 달큰한 기대는 무너졌지만 예상치 못한 수확의 기쁨을 맞는다. 이게 바로 농사의 정점이구나 싶은 순간. 혹여 호미에 찍힐까 조심조심 흙을 파내가며 감자를 캐냈다. 겨우 감자 두 고랑을 캐 내고 밭에 널어 흙을 말리면서 내가 정말 그럴듯한 농부가 된 것 같았다. 기특하기도 하여라. (물론, 감자가.)





솥 바닥에 약간의 물을 붓고 왕감자로 치환된 알감자를 잘 씻어 담는다. 젓가락으로 쿡쿡 찔러가며 익기를 기다린다. 선풍기를 틀어 내게 향하게 한 뒤 바닥에 쟁반을 놓고 앉는다. 여기서 상을 펴지 않는 것이 포인트. 잘 쪄진 감자를 살짝 식혀 껍질을 벗기고 반을 갈라 그대로 한 입 먹는다. 헛뜨 헛뜨. 입 안에 감자를 굴려가며 그 보드랍고 구수한 맛을 느낀다. 이번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감자를 싱싱한 상추 위에 얹고 장을 곁들여 싼다. 우물우물거리다 끝에는 맥주 한 모금과 함께 감자를 넘긴다.


감자쌈을 먹으며 나는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경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비슷한 맛이 아주 느껴지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스물아홉의 여름, 훌쩍 떠나와 생애 처음 기른 상추와 감자를 싸 먹는, 새로운 내 여름날의 추억을 오므려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앞으로 여러 번의 다른 여름을 맞으며 두고두고 삼킬 것이었다. 서투른 농부가 만들어 낸 그 감자쌈의 투박하고도 특별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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