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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May 20. 2023

아보카도




동생의 주먹이 아빠의 광대뼈에 부딪히기 직전, 눈앞으로는 짙푸른 아보카도가 스쳐 지나갔다.



바구니 한가득 담겨 있는 아보카도는 며칠째 그대로였다. 엄마가 즐겨 보는 건강 프로그램에 이번에는 아보카도가 주인공이었던 모양이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우르르 무너질 것 같은 청록색 피라미드는 거실 식탁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그 위태로운 모습에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늘 그렇듯 악성 재고를 처리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식탁 앞에 앉아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곰팡이가 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보카도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한 번도 날붙이를 갈거나 다듬지 않은 탓에 칼은 생각처럼 잘 들지 않았다.

칼날은 아보카도의 껍질조차 단번에 가르지 못할 만큼 무뎠고, 미끄러운 과육을 자꾸만 빗나가 손등을 스쳤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숟가락 모서리보다도 못한 칼과 씨름을 하고 있자니 답답했다.


기껏해야 만 원도 하지 않는데 왜 칼을 새로 사지 않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당신은 그저 아직 괜찮다는 말로 질문을 어영부영 넘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숫돌이라도 사서 갈아놓든지, 하고 일러두었을 뿐이다.

달콤한 자색 고구마를 닮은 보라색 칼은 우리 가족의 저녁상을 도맡아 온 오랜 동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볼품없기 짝이 없는 그 칼이 어쩌면, 엄마의 가슴을 향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동생에게는 한 가지 재주가 있었다. 생각을 오래 하지 않는 재주.

나는 늘 방 안에 틀어박혀 생각만 했다.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며 다음날 아침 풍경을 상상했다. 폭풍이 지나간 이후 멋쩍은 거실의 분위기를. 과일을 깎고 지쳐 누운 거실의 칼을.

그러다 보면 정말 아침이 왔다. 생각을 오래 할수록 밤은 짧아졌지만 밤이 짧아진다고 생각도 짧아지지는 않았다.

동생의 재주가 부러웠다. 나도 상상 속에서는 온 집안을 뒤집어엎었는데. 주먹도 불끈 쥐었는데.


아빠는 팔을 붙잡는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려 애를 썼다.

거봐, 담배를 피워대니까 이렇게 팔에 힘이 없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왠지 엄마라면 아빠에게 구박을 줄 것만 같았다. 가느다란 팔을 있는 힘껏 휘저을 때마다 신경질적인 고함이 연기처럼 거실을 메워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탓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단어들은 KF 3중 필터에 갇혀 웅얼거림으로 변했다.

동생은 아랑곳 않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엄마의 비명은 끊어질 듯 가늘어졌다.


소음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온몸으로 충돌을 막아섰다.

동생의 울긋불긋한 얼굴, 마스크 속에서 울리는 아빠의 고함, 그리고 엄마의 가는 숨결.

이토록 가까이서 이들의 살갗과 육성을 물리적으로 느껴본 게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생일 케이크 앞에서 억지로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이만큼 가깝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싶어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위에는 아보카도 껍질과 그 옆에 힘없이 주저앉은 보라색 칼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엄마가 일부러 무딘 칼을 버리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보카도 하나조차 제대로 썰지 못한 채 어찌어찌 오랜 세월을 버텨온 칼을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과 닮았다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그날 어느 때보다도 가장 가까이 붙어 있었지만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동생은 방문을 몇 번 후려치더니 씩씩거리며 가방을 멘 채 코로나 바이러스로 붐비는 카페로 떠났고, 엄마는 당신의 엄마가 보고 싶다며 서둘러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는 현관을 나섰다.

덩달아 나도 뒤를 쫓았지만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며 그녀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점이 점점 작아지며 멀어졌다.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가볍다는 게 문제였다.

지구상의 그 어떤 물질도 나를 잡아당겨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어깨를 기댈 곳도 조용히 쓰러질 곳도 잠시 몸을 누일 곳도 마땅치가 않아 그저 계속 걷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길 위에는 씁쓸한 커피를 마시는 내가 서 있었고, 투명한 얼음물을 계속 빨다가 빨대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컵 속의 얼음이 영원히 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땀 흘리듯 삐질삐질 녹는 얼음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하수구 속으로 쏟아버렸다. 잠시 멈춰 선 것이 어색해서 다시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불 꺼진 아빠와 홀로 남은 거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방 수조 속 열대어는 입만 뻐끔거렸고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가라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저녁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귓구멍으로 물이 들어간 것처럼 눈앞이 먹먹하고 뿌옇게 보였을 뿐이다.





며칠 후 아빠는 한밤중 병원으로 실려 갔다.

요로결석은 "죽지는 않지만 뒤질 만큼 아픈" 병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방바닥을 네 발로 기며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애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불편한 쾌감을 느끼고는 했다.


이윽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전신마취가 동반되는 큰 수술이기에 보호자가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말에 아빠는 며칠을 당혹스러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보내야만 했다.

병원으로부터 걸어서 십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엄마의 직장이 있었지만, 그녀는 단 세 시간도 함께 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끔찍한 공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따지면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며 간호사며 보안 직원들은 이미 두세 번은 죽었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다른 곳도 아닌 규모 있는 대학병원인만큼 방역 수칙 준수에 철저할 것이라는 논리적인 설명도, 제발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좀 해 달라는 감정적인 호소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수 차례에 걸친 통화와 대담에도 그녀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선을 그었을 뿐이다.


정말로 그녀는 당신의 남편이 죽음의 문턱을 그러쥐며 울부짖을 때까지 괴로워하기를 바라는 듯했다.

1cm도 되지 않는 작은 돌멩이가 아니라 아보카도의 씨앗처럼 큼직하고 단단한 돌덩어리가 그의 뱃속을 굴러다니기를, 엄마는 남몰래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설득 끝에 직장 동료를 보호자로 동반해 수술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저녁 식탁을 차렸으며, 동생도 얼마 남지 않은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

다들 이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는 방 안에 더 깊숙이 틀어박혀 밤이 짧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 가족은 그날 이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사진을 찍는다 한들, 그 노력이 모두 헛수고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느낄 테니까.

아보카도의 껍질처럼 얄팍한 거짓말이 힘없이 벗겨진 이상, 이전의 일상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에 걸리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이미 후유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는데 숨을 쉬는 것이 조금씩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물러지는 것도 있다.


거짓말처럼 다시 주말이 돌아왔고 나는 다시금 식탁 위에서 아보카도를 집어 들었다.

아보카도는 손으로 가볍게 쥐는 것만으로 뭉개질 만큼 물러져 있었다. 알맞게 익은 때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지만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아까웠다. 여전히 무딘 보라색 칼을 찔러 넣었다. 짙푸른 피가 응어리가 되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미끄러운 아보카도를 홀린 듯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껍질을 벗길수록 고름 같은 과육은 손톱 사이를 파고들었다. 푸르뎅뎅한 과육이 입 주변과 양손에 지저분하게 묻었지만 닦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문 작성일 : 2020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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