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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May 28. 2023

너무 한낮의 식욕




식사를 할 때면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일본 워킹홀리데이 시절 으레 '혼밥'을 하며 굳어진 버릇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단호하고도 분명한 태도로 겸상을 거부하고 있다.

식탁 앞에 앉기도 전에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태블릿이나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제발 말을 걸지 말아 달라는 비언어적 시위는 집안과 바깥을 가리지 않는다. 화장실을 갈 때도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할 때도 손에는 항상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뭐라도 붙잡고 보거나 듣고 있지 않으면 금세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사람 간의 대화는 듣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정보로 머리를 채우는 건 조금 아깝다고 할까. 결국 찾게 되는 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만 들리는 ASMR이나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먹방 동영상처럼, 분명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상들 뿐이다.





보리밥에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열무김치와 함께 먹는다.

식탁 위에서 손짓하는 반찬들을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젓가락으로 하나둘씩 집다 보면, 밥그릇에는 어느덧 가지나물과 팽이버섯 부침, 그리고 큼직한 새우튀김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며칠 전부터 냉장고 한구석을 지키던 감자만두와 쑥떡까지 뱃속에 욱여넣고 나서야 폭풍 같은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이제 죄책감의 파도에 맞설 차례다.

매 끼니마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당의 무게를 가늠하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트랜스지방의 함유량을 측정하며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삼위일체 배합은 잘 갖추어져 있는지, 잘 갖추어져 있다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완벽한지 또 식이섬유와 유산균은 들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면 무엇 하나. 이렇게 한 번 폭식을 한 이후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을.

큰일 났네, 정말 큰일 났군. 나는 둑이 터져버린 강처럼 입으로 밀려 들어오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눈앞에서 가만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혔지만  입에 허겁지겁 때려 박는 와중에도 나는 거실 매트리스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음식 솜씨 하나만큼은 뛰어난 박은, 거실 매트리스에서 누워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휴지로 입을 닦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내게 그녀는 말 한마디 눈길 한 번 건네는 일 없었다. 고맙습니다, 당신. 참으로 고마워요. 구수한 멜로디와 함께 흐르는 노랫말이 거실을 메웠다.





이상하게 오늘은 평소와 다른 영상을 보고 싶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흔한 유튜브 영상이든, 사람의 말소리가 그리웠다. 혀끝에서 흩어지는 숨소리나 떡볶이를 쩝쩝거리며 삼키는 소리가 아닌, 단어와 단어가 만나 이루는 문장이 듣고 싶었다.

태블릿으로 OTT 목록을 넘겨보다 1시간 남짓의 단편 드라마를 재생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영상화한 작품이었다. 딱 지금처럼 쨍한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의 풍경이 펼쳐졌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은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 너무 감쪽같은 나머지 없어졌음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


예전의 나는 육체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사람이었다.

저녁으로 밥 두 공기를 꾸준히 먹었고 피자 한 판 정도는 해치워야 배를 두드리며 만족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시선을 황급히 옮겨 눈앞의 식탁에 집중하고는 했다.

그렇지만 속은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 안에는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는 요령이 없었고 나쁜 말을 좋게 말하는 방법도 담겨 있지 않았으며 다정함을 드러낼 표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은 누가 나서서 차려주지도 떠먹여 주지도 않았다. 오마카세 코스를 요청할 수도 없었고 무한리필로 제공되지도 않았다. 마음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먹고 키를 키워 저기 있는 마음을 쓸어 담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굶주림은 계속 이어졌다. 알고 보니 마음은 낮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폭식을 멈추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내려두었다. 불룩 나온 배가 꺼지자 발밑에 떨어진 마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줍는 건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였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카페를 찾은 M은 시간이 갈수록 내가 반쪽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그것을 반으로 접고 또 그것을 반으로 접고... 이런 과정을 열 번만 반복하면 종이 한 장으로 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내 몸이 조금만 더 반쪽이 되면 달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마른 몸으로 변했고 허리도 가늘어졌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이제 더 많은 마음을 주울 수 있으니 기쁨에 겨워야 할 텐데, 정작 나는 허리를 굽히기는커녕 몸을 반으로 접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식탁 위에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는데도, 사랑을 두 손 가득 든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데도.



원문 작성일 : 2021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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