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찰펴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예방접종

클레어 데더러 - 『괴물들』 서평

by 찰란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예술가가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예술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주며 희망의 말을 속삭여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우리는 모두 그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괴물이 된 자의 작품들은 빛이 바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보이던 작품들을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인가, 혹은 혐오할 것인가. 어느 누구에게도 선뜻 내리기 쉬운 결정은 아니다. 예술가와 팬 사이에는 단순히 수용자와 제공자라는 관계 이상의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고 그 밑바탕에는 깊은 감정적 교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괴물들』은 2017년에 기고되었던 에세이를 확장하여 출간한 책으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해외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 국내 출간 직후에는 다수의 주요 일간지에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소개되었으며 알라딘 기준 14주간 인문학 100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만큼 국내 평단과 독자들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추천의 글귀는 책의 표지를 넘어 속지까지 이어질 정도로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괴물들’이 되어 버린 예술가들을 가리키며 ‘우리 모두의 딜레마’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투 운동’의 불길이 전 세계를 뜨겁게 불태웠을 만큼 광범위한 사안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다는 점이 사람들을 더욱 갈등에 빠뜨리는 것이다. 『괴물들』은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편으로 미뤄뒀을지도 모르는 그 도덕적 딜레마를 본격적으로 마주하겠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이라는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하나의 분명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분한 태도로 뜨거운 세상을 마주하다


소위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뉴스, 특히 도덕성에 관한 사회적인 사안은 정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사람들은 깊은 고민의 과정 없이 사안에 대한 판단을 신속하게 끝내고는 한다.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지 않는 이른바 ‘캔슬 컬처’는 보편적인 양태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및 드라마의 공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저자 클레어 데더러 역시 〈애니 홀〉의 감독 ‘우디 앨런’과 〈차이나타운〉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존경해 온 오랜 팬이었으며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에게 깊은 고마움을 가진 만큼, 괴물들로 변한 그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이 책은 개념을 설명하는 인문서이면서 동시에 클레어 데더러의 에세이기도 하다. 본인 역시 ‘괴물들’의 피해자이며 스스로 느낀 좌절감과 배신감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뜨거운 사안에 대해서 차분하게 접근한다. 괴물들이 저지른 도덕적 과오는 분명하게 짚으며 비판하는 한편, 그들이 세상에 선물한 뛰어난 작품들의 명성을 무작정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모순적인 인식을 시인하는 한편,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이 사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을 역설한다. 나아가, 혹시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 ‘괴물’과 같은 면모가 없는지 성찰한다. 뜨거운 사안을 다루고 있음에도 함부로 확답을 내리지 않으며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예방접종


『괴물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예방접종과 같은 책이다. 도덕적인 과오를 저질러 사람들의 마음에 열병과 같은 상처를 남긴 예술가들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고,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향유해야 할지 함께 고민한다. 고민의 지점에서 머무르지 않고 책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앞으로 가면을 벗고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미래의 괴물들에 대한 항체를 미리 형성하게 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대중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책의 각 챕터는 ‘괴물들’의 실명을 부제로 삼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인물에 대한 설명을 나열하지 않고, 각 챕터에서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절한 예시를 들며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옳지 않다고 느끼는 격렬한 감정을 뜻하는 ‘도덕적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애니 홀〉의 감독 ‘우디 앨런’에 대한 분노와 탄식을 한 챕터에 담아냈다. 우리 사회에서 천재성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추악함을 잘 숨겨주는지 말하고자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천재 화가 ‘피카소’와 천재 작가 ‘헤밍웨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 문제적 작품인 『롤리타』를 집필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예시를 들며 자신 안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스스로 괴물을 자처한 예술가도 있음을 알린다. 그런가 하면, 괴물은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해당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여성 괴물 ‘밸러리 솔라나스’도 예외 없이 비판한다. 챕터가 진행될수록 괴물들에 대한 사유는 더욱 깊어짐과 동시에 넓은 범위로 확장된다.


예술가와 작품은 별개의 존재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가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하지만 추악한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예술을 어떻게 완전무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작품을 어떻게 한순간에 내칠 수 있는가?

책을 완독 하더라도 위와 같은 물음에 명쾌하고 명료한 답은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확실한 마침표를 제시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괴물들』은 대신, 우리 마음에 물음표를 심어주는 길을 택한다. 단순히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수많은 좌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좋은 예술은 명료한 정답을 주는 대신 깊이 있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의 사회가 마주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의 사유를 한층 더 확장시키는 좋은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우리는 항체를 갖게 된다. 또 다른 ‘괴물’이 우리 앞에 가면을 벗고 등장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튼튼해진 마음으로, 그의 얼굴을 담담히 마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의 괴물이 창작한 예술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곳에서, 그 괴물성 안에서 우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를 찾기보다는 우리 모습을 비춰줄 거울을 찾아야 한다.

- 『괴물들』 中, 클레어 데더러, 을유문화사,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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