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찰펴보다

닫힌 문을 여는 것은 단단한 글의 힘

앨릭스 E. 해로우 - 『재뉴어리의 푸른 문』 서평

by 찰란

단단함에 주목한 데뷔작,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다


앨릭스 E. 해로우의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월드판타지상 등 권위 있는 다수의 문학상에 최종 후보작으로 올랐고, 출간된 그해 아마존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판타지에 선정되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재되는 등 언론의 호평이 끊이지 않았을뿐더러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이 저자의 첫 장편소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평단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단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최근 큰 인기를 끌었다. 전자는 마법의 도서관에서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얻는 ‘노라 시드’의 이야기를, 후자는 평행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현실이 팍팍하면 판타지가 유행한다는 말처럼, 단순한 도피를 위한 오락적 판타지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앞선 작품들 속 주인공은 공통적으로 다른 세계가 아닌 현재를 선택한다.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라는 안분지족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이제 어떤 세계 속에 있더라도 이전보다 성숙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한다. 세계의 겉모습은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신만의 단단함을 체득하며 한층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이다.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판타지 소설이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단단함을 보여 주는 성장소설이다.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 등 약자로 묘사되는 주인공 ‘재뉴어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엶으로써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능력을 단순한 도피나 일탈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지만 그곳으로 영원히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운다. 우리는 일만 개의 문을 함께 통과해 오는 과정에서 시련을 극복하며 한층 더 단단해진 그녀의 모습을 목격한다.


‘모호함’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모험을 떠나기 좋아하는 백인 여성 ‘애들레이드’와 신중한 학구파 흑인 남성 ‘줄리언’ 사이에 태어난 혼혈 ‘재뉴어리’는 어느 한 인종이나 국적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외모와 피부색을 지녔다. 소설의 배경인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의 미국은 유색 인종을 향한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였기에 이러한 특성은 그녀의 발목을 종종 잡는다. 기차 안에서도 뒤 칸으로 밀려나야 했으며 사람들에게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의 대상이 되는 식이다.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녀는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모호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재뉴어리는 자신의 모호함은 다양함이라는 무기로 변모시킨다. 때로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진취적인 자세로 고난에 맞서는가 하면, 때로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신중함을 발휘하여 역경의 늪을 조심스레 돌아서 가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함이 사회적 약점이자 비정상으로 취급받았던 근대의 흐름에 도전하는 저자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 가지 색이 아닌, 수많은 색으로 이루어진 그러데이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온전한 흑인이나 백인은 없고, 순도 100%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지닌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재뉴어리와 같은 모호한 존재이며 누구나 소수자이면서 약자일 수 있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사실 덕분에 어느 세계에서도 자연스레 융화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문지방을 넘는 행위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중간계로 빠질 수 있어 위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정체성이 확고한 협회의 남성들은, 재뉴어리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지방을 넘지 못하여 위기에 빠진다. 약자라고 정의하는 요소들이 역설적이게도 종국에는 그녀를 강자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다.


저자 앨릭스 E. 해로우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가르쳤다. 소설의 배경을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로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미국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가사 노동과 육아에 시달리는 게 일상의 전부였을만큼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보다도 흑인들은 더욱 많은 핍박에 시달렸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유색 인종 여성으로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 감옥에 갇혔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 것이다.

결국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말하기 위함이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2025년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저자는 재뉴어리를 통해 모호함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을 다양함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닫힌 문을 여는 것은 글의 힘


인종, 성별, 세대 등 여러 갈래의 집단으로 쪼개진 지금, 서로에 대한 혐오와 배척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굳게 닫힌 문을 열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타자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갈 뿐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혹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흘러가듯 살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재뉴어리는 글을 통해 시련을 극복한다. 전통적인 남성 중심 사회로 대변되는 ‘협회’에 맞서 그녀는 물리적인 폭력도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볼 법한 현란한 마법도 사용하지 않는다. 간절히 소망하듯 글을 씀으로써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자유로이 열고 닫는다. 저자인 앨릭스 E. 해로우는 마치 희망이 희미해져 가는 현실일수록 더더욱 글의 힘을 믿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확고하게 닫혀 있는 밀실이 아닌,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열린 공간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하며, 문을 열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재뉴어리의 손에 칼이 아닌 글이 쥐어져 있는 이유는 그것이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닫힌 세계의 문을 여는 글의 힘을 믿는다면, 재뉴어리의 여정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자란 세상에서는 글에 힘이 있고, 곡선과 나선형 글자가 돛과 살갗을 장식하고, 능력 있는 글꾼이 기회를 찾아내 현실을 재창조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글이 아무런 힘도 없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재뉴어리의 푸른 문』 中, 앨릭스 E. 해로우, 밝은세상,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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