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여름 -『부적격자의 차트 』 서평
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인공지능에 의해 관리되는 사회,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공리주의적 선택. SF 소설의 애독자라면 선뜻 익숙한 세계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적격자의 차트』는 익숙함을 활용하되 기존 문법의 상투성에서는 벗어나려 노력한다.
사회 중심에 있는 인공지능 '모세'가 인간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은 가장 큰 차별점 중 하나이다.
『1984』나 『멋진 신세계』에서 영향을 받은 종래의 SF 디스토피아 소설 속 인류는 강력한 사회 질서에 의해 통제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로울 권리를 약탈 당한 것이다.
그러나 『부적격자의 차트』에서는 인공지능이 선택권을 부여한다. 도시 계획 초기 단계에서는 생애 한도를 제한하고 상상을 금지하는 등의 규율을 반드시 지켜야 했지만 안정성을 확보한 이후에는 얼마든지 기존의 시스템을 폐기해도 된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안정감을 추구한 나머지 인류는 변화하지 않는 것을 넘어 변화를 두려워하고 금기시 여기는 방향을 선택했다. 선을 조금만 넘어도 서로를 고발하고 중재자에게 일러바치는 일종의 수직적 계급 구조를 체화體化해 버린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는 이 상황은 마치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한 우스꽝스러운 우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인류를 멸종의 기로에 놓이게 한 재앙의 근원인 '리누트 바이러스'가 반려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100년을 가까이 사는 인간과 달리 기껏해야 20년 밖에 살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는 강아지를 대체하기 위해 발명된 '리누트'는 처음에는 그 목적대로 인간의 생애주기를 함께 하며 한평생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인간이 사망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남아 변이 바이러스를 몰고 다니는 매개체가 되어 버렸다는 설정은 다른 소설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설득력을 가진다. 그뿐만 아니라 그저 반려동물과 함께 오래 행복하고 싶을 뿐이었던 소소한 목적에서 출발한 발명품이 인류에게 가장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벽 너머를 꿈꾸는 자. 벽을 그저 바라보는 자. 벽의 존재조차 모르는 자.
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삶의 행로를 걸어가며 여러 종류의 벽과 맞닥뜨린다. 누군가에게는 성별이라는 이름의 벽이 솟아오르는가 하면 어떤 이에게는 나이나 경제력, 혹은 계급이나 국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앞을 막아서기도 한다.
'레드'는 벽 너머를 꿈꾼다. (꿈과 동일한 것으로 묘사되는 '몽증'이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소설의 세계관에 입각해 본다면 재미있는 지점이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적격적'인 행동이 뒤따른다. 사회는 당연히 개인의 일탈을 비난하며 막아서겠지만 벽을 넘기로 마음먹은 이에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인류는 셀 수 없이 많은 벽을 깨부수며 발전해 왔다. 그 모습은 평화로웠던 적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과격했다. 벽을 치고 무너뜨리고 망치로 사정없이 두들겼다. 만약 부적격한 행동임을 인지하고 손에 든 망치를 내려놓았다면 지금의 인류는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창조를 위해서는 건설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경제학자 '슘페터'의 관점에서 소설을 본다면, 레드의 유전자에 새겨진 직업이 건축가라는 사실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세인'은 '챔버'가 세상을 떠난 6년 전부터 벽을 응시하고 있다. 아직 그 너머를 넘보고 있지는 않지만 벽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며 사유한다. 행동이 스포츠카라면 사유는 연료이다. 사유 없이 행동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세인은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차마 액셀을 밟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세인은 마치 고뇌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시대의 토양 위에 불쑥 솟아난 수많은 벽들을 보고 괴로움을 느끼지만 선뜻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선善이 아님을 알아도 생계유지와 같은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벽 너머로 보내는 시선을 이내 거둘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사유라는 이름의 연료가 항상 가득 차 있다. 옆에서 누군가 함께 액셀을 살짝 밟아주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앞으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세인은 처음부터 벽 너머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레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작중 벽의 존재에 대해 가장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나오미'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모범적으로 적응하고 규율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 물론 '세인'처럼 마음속으로는 자유로운 상상을 할지도 모르지만,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일련의 사건으로 현실에 순응하는 나오미의 성향은 한층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얼핏 생각하면 나오미를 비롯해 벽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채 순응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벽은 진로를 방해하지만 동시에 바깥의 위험을 막아주기도 한다. 벽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안정감을 누리며 편안하게 여생을 벽 안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는 데다, 앞서 말했듯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바로 앞에 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벽을 넘거나 깨부수는 데 성공한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등장하기까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지켜 온 것은 나오미 같은 성실한 인물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책은 작가의 노력만이 아닌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숨은 조연들의 땀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연여름 작가는 어느 인물 군상도 함부로 예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도전하고 부딪치라는 안일한 훈계로 마무리하지 않으며 세 부류의 삶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바다를 꿈꾸는 일을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우리가 사유하고 상상하는 일을 멈춰 버린다면 리누트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지구보다 더 황폐한 세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벽을 넘지 않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 너머에도 분명 삶이 있음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벽을 넘었을 때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한다.
『부적격자의 차트』는 다시 말해, 벽 밖에 서 있는 자가 벽 안의 우리를 향해 인사하는 손짓이다. 그 인사를 받아 손을 흔들지는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치사율 100%의 '리누트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유행으로 인해 인류는 멸종 위기에 처한다. 꺼져 가는 희망의 불씨 속에서 인공지능 '모세'가 최후의 생존자들 앞에 등장한다. 인류의 안정적인 생존을 위해 '존엄 소거'라는 이름의 안락사를 통해 인구를 조절하는 데 동의한 이들은 '모세'를 중심으로 마침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돔형 도시를 건립한다.
인공지능 모세가 만든 사회는 파놉티콘과 같아서,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실무자'들은 서로를 감시하며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는 고발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여 사회가 존속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모세는 실무자 간의 갈등을 심판하지 않고 그저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중재자'라고 불린다.
병동에서 소거 대상자를 관리하고 마지막 차트를 작성하는 업무를 하는 모범적인 실무자 '세인'은 어느 날 낙상 사고를 당해 입원한 '레드'를 만난다. 인공지능 기기 '워터드롭'을 몸에서 분리하는 일, 상상을 하거나 꿈을 꾸는 일,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는 일 등, 지금까지 지켜 온 모세의 원칙에 과감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그를 세인은 처음에는 멀리한다. 하지만 사실 세인도 오래전에 소거된 '챔버'라는 인물을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는 금지된 행동을 남모르게 해 왔을 만큼 상상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에, 점차 레드의 말에 빠져든다.
세인과 함께 병동에서 일하는 수습 실무자 이폴과 베테랑 실무자 나오미는, 레드를 만나고 나서 세인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편, 세인은 레드가 말하는 돔 밖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금치 못하며 이전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래도 그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 세인의 머리카락이 파도를 타고 멀리 흩어져, 우리가 어느 백색의 땅에 있든 그의 꿈을 마음껏 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