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디킨스 -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서평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 응원봉이 광장을 환히 밝히는 동안 남성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기보다 혼자만의 안전한 동굴에서 고독을 택하는 남성들. 30대에 들어서면 하나둘씩 멀어지는 친구와의 관계. 40대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남성 자살률. 50대와 60대 남성의 고독사는 한 해 전체 고독사의 절반을 넘어섰다. 고독과 고립은 한 끗 차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타인과 융화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동굴 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출간 이후 타임스, 가디언, BBC 라디오 등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이 책의 저자 ‘맥스 디킨스’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가감 없이 소개하며 남자들의 우정, 감정 표현, 성향 등 관계 맺기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남성들의 우정과 여성들의 우정이 어떻게 다른지, 남성의 감정 표현이 왜 항상 어설프고 서투른지, 여사친을 대할 때와 남사친을 대할 때의 태도 차이 등 저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적 및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남성 독자들에게 자신의 대한 성찰과 탐구의 시간을, 여성 독자들에게는 주변 남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맥스 디킨스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의 들러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친구 관계를 돌이켜 본다. 그런데 마주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 나에게 진정한 ‘베스트 남사친’이 있었던가? 한때는 친했지만 어느새 멀어졌거나 만나면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사이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남사친들과 있을 때는 마초적이고 공격적인 남성 캐릭터를 ‘연기’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에 시달려 온 그는 “항상 지속적인 감시를 당하는 느낌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중 남성 기숙사에서의 일화는 초식남 저자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으로 소개된다. 말끝마다 욕설이나 ‘섹드립’을 붙이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얕보이기 십상이다.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저자는 기숙사에서 지내는 내내 남성성을 연기하고 과시하며 그들(남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의 입담이 더해지다 보니 ‘웃픈’ 블랙 코미디로만 보일 수 있겠지만 그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남성 무리에서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는 일종의 “남성적 광기”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걸까?
한편 저자의 진정한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함께 동거했던 두 명의 여사친 ‘호프’와 ‘필’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진짜 ‘나’로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성 간의 우정을, 그는 “애정과 양면성과 모호함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당연히 그곳에는 성적 긴장감도 민망한 순간도 존재하겠지만 남성들은 이러한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사친들과 있을 때 더 편한 나, 정상인가요?
남자들은 유머 감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음을 책은 설명한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오줌 멀리 갈기기’처럼, 농담이 단순한 재미나 조롱이 아니라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로 이루어지는” 농담은 지위의 도구, 즉 남성 간 서열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책은 이 또한 남성성이 지우는 일종의 맨박스라고 설명한다. 남성들에게는 “‘무대 앞’ 자아와 ‘무대 뒤’ 자아가 모두 존재하며” 남사친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어김없이 무대에 서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공연이 그러하듯 오래 지속하기에는 너무도 힘들고 진 빠지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남자다움, 남성성의 가면을 벗을 때 더 자유로운 ‘남사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나아가 그러한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성의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공격적인 ‘섹드립’을 주고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닌, 진솔한 감정을 터놓고 대화하는 관계가 남성 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책에서는 ‘요 녀석들 합창단’이라는 커뮤니티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경쟁의 요소가 없는 합창이라는 사교활동을 통해 서로 다른 나이대와 직업군의 남성들은 한데 모여 노래를 연습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쿨한 표정을 짓기 위해 사용할 근육도 남아 있지 않’게 노래를 부르고, ‘우리 모두가 방금 함께 해낸 것을 축하하는’ 경험을 공유한다. 파괴적인 마초 캐릭터를 애써 연기하지 않더라도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으로서 다른 남성들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경험은 새로운 남성 연대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대목이다.
우정은 노력을 요구한다. 특히 감정 표현에 서툰 남성들에게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숙제로 다가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그들은 우정의 ‘유지 보수’를 어려워하며 친구 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대로 개개인의 남성성을 강화하여 억지로 남성우정을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우정이 이루어지는 맥락을 다시 만들어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늘날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성이 아닌 다양성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친구를 가지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친구가 되는 것뿐”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다가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오랜 친구라 하더라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우정의 색이 바래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서글픈 얼룩으로 뒤덮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정은 단지 다른 모습을 띨 뿐이다.”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지키기 위해 남자들에게는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는 레퍼토리”가 필요하며, 저자는 이를 “연장 상자”에 비유한다. 인생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연장이 필요하므로 남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하지 말고 확장하여 더욱 충만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아주 짧은 말이라도 좋으니 친구에게 그동안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진심 어린 우정의 말을 건네보자. 쑥스럽고 민망한 건 당연하다. 친구도 당황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넨다면 상대방도 분명 나에게 같은 연약함을 보여줄 것이다. 더 깊고 더 단단한 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속살을 꺼내 보여주는 과정을 지나야만 한다. 이 책은 그 연약한 탈피 과정에서 남자들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