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A. 캐스파 - 『명령에 따랐을 뿐!?』 서평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에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2024년 12월 3일 밤에 벌어진 일을 목격했다. 총과 방패를 든 군경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르며 국회를 봉쇄하고 의원들의 출입을 진압했다. 국회의 의결이 있기 직전까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후에 잘못을 인정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현장에서 명령을 받고 움직였던 군경들은 물론, 그 명령을 내린 대다수의 지휘관도 상부의 명령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의 태도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4월의 제주, 5월의 광주, 10월의 부산과 마산에서도 민간인을 향한 진압과 학살이 자행되었으나 이후 주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 잘못은 없다고 주장했다.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한 법무부 감찰관은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국회의원을 제압하려는 시늉만 하며 불법적인 명령에 소극적으로 저항했던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머릿속에 의문을 갖게 된다. 도대체 명령이 개인에게 얼마나 강한 힘을 행사하기에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럼에도 강압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개인은 어떤 심리였을까.
《명령에 따랐을 뿐!?》은 명령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 뇌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한다. 저자 에밀리 A. 캐스파는 르완다의 후투족,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정권 인사 등 대량학살을 자행한 가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을 인터뷰한다. 정부의 묵인으로 인해 가해자를 특정하기 힘든 현실 등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악의 평범성을 뇌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인터뷰를 거듭한 끝에 가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감정을 들을 수 있다. 저자의 집요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복종이 만들어 낸 역사적 비극을 되짚어 본다. 또다시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는 지금,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20세기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당시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친위대 아돌프 아이히만은 공개 재판에서 자신은 그저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을 참관한 그녀는, 실제로 아이히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절하고 선량한 시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를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로 만든 것은 특별한 악의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를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던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심리학계에서는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등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해당 실험들은 많은 도덕적 한계와 실험 설정상의 결함이 존재했다고 현대에 들어 비판받고 있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실제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반론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타인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위가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점 또한 실험의 ‘외적 타당도’를 저하하는 한계이다.
이에,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심리학상, 의식과학연구협회 윌리엄 제임스 상, 이븐스 과학상 등 인지/신경심리학 논문으로 다수의 상을 받은 저자 에밀리 A. 캐스파는 기존의 이론을 보완한다. 실험의 모든 것이 가상 상황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제거하기 위해 건강에 해가 없는 선에서 실제 전기 충격을 주도록 실험 조건을 수정했다. 또한 기존의 실험과 달리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아 피험자에게 ‘자유 선택’의 여지를 주었다는 점도 보완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실험한 임상 결과들을 기반으로 ‘악의 평범성’을 기존보다 훨씬 보완된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복종할 때 주체의식이 감소한다는 사실, 인지적 공감 능력을 제어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여지를 늘릴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추가로 검증함으로써 기존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높은 층위로 끌어올린다.
21세기의 한나 아렌트라고도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에밀리 A.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에는, 기존의 이론 및 실험의 한계를 보완하며 ‘명령에 따르는 뇌’를 과학적으로 분석 집요한 노력의 정수가 담겨 있다.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인 대안은?
“예방의 열쇠는 이해다.”
《명령에 따랐을 뿐!?》은 ’악의 평범성’을 단순히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과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량학살의 가해자들을 단순히 괴물이나 악마라고 낙인찍지 않는다. 실험 결과, 명령을 따르는 사람의 뇌에서는 실제로 주체의식을 느끼는 정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말하면 주체의식을 높일 수 있다면 명령에 불복종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저자는 민간 생활에서 사전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적인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대량학살 피해자의 복수심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가해자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것은 피해자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걸쳐 PTSD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전역에 퍼진 복수심이 나치 독일을 탄생시킨 역사적 사실을 예시로 들기도 한다. 복수심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덕관념에 따른 보편적인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명령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 뇌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비극을 예방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물론 집단학살은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단편적인 방안으로 해결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데 이바지하는 무의식적 신경 활동을 이해하고 명령에 불복종한 의인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공감, 도덕적 용기, 독립적 사고를 촉진하는 개입 방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해자의 악마화가 갈수록 두드러지는 오늘날,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클 것이다.
집단학살을 저지른 자의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데 이바지하는 무의식적 신경 활동 같은 복잡한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섬세한 학제 간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중략) 예방의 열쇠는 이해다. (p.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