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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ul 05. 2019

독립 후, 가장 그리운 것

내 고향 나무들



25년 한 아파트에 살았다.
아주 어린 꼬마가 한 회사의 과장이 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아빠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본인으로부터 3대 위, 즉 나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을 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겐 추억이 없는 그곳보다 이 아파트가 고향이었다.



내 고향, 아파트는 태초부터 푸르렀다.
해외 손님을 맞이할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라 환경미화를 중시해지었다고 들었다. 어린 묘목 대신 다 자란 나무를 엄선해 심어놓아 녹음이 짙었다. 축제가 끝나고 손님이 모두 떠난 자리에 우리 가족이 들어섰다.



그리고 나무는 매일 자랐다.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콘크리트 아파트와 달리 매일 조금씩 나무들은 자란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나무 끝이 내 방에서 보였다. 자고 나면 키가 자라있던 어린 나는 “너는 키가 5층이야!” 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나무들은 그렇게 8층으로, 14층으로 솟아났다. 그러다 이젠 아파트 옥상보다도 높아졌다. 아무리 아파트가 나무를 가리고 있어도 나무는 찰랑 제 머리를 아파트 너머로 내보인다. 그렇게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



나의 계절은 나무로부터 시작됐다.

초록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봄이었다. 잎마다 성장 속도가 달라 들쑥날쑥 돋아나기 시작한다. 마치 중학생들처럼. 그러다 여름이면 반듯해진다. 초록 잎과 가지들이 아치를 만들어 빛을 가려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그 초록터널 아래에서 잎사귀들이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늦여름 매미들이 울어대기 전까지만 허락된 소리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하나둘 색을 물이들여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내 잎을 떨구고 까칠한 표면을 드러내며 잔뜩 수축돼 보이면 어느새 겨울이다. 그렇게 계절이 바퀴를 돈다.


이사를 하고 난 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알게됐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완벽한 도심. 3분 거리에 스벅, 영화관, 마트, 다이소, 엽떡, 올리브영 등등 근린시설이 다 갖춰져있다. 심지어 지하철부터 우리 집까지 지하로 걸어올 수도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으나 무엇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독립하고 첫 봄, 읽을 수 없어 온지 몰랐다.

봄이 온거야? 어디? 혼잣말을 유독 많이 뱉었다. 내가 고향을 떠나 새로이 거주하는 곳은 새 건물이 즐비하다. 신축단지 속 나무들은 팔목만한 몸통을 지닌 어린 묘목들이다. 게다가 군집을 이루지 않고 드문드문 연약하게 서있어 그들에게서 계절의 오고감을 읽을 순 없었다. 본가를 방문해 고향의 나무들을 보고나서야 봄을 느꼈다. 어느새 봄이 왔구나. 여기는 봄이 있구나. 그래, 나는 나무들의 부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집값은 오를 거다.

아파트를 철거할 때, 필히 나무들을 베어야 한다고 들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그들이 이제껏 계절을 알려주고, 사계절 차양막이 되어 주었으나 새터전을 마련해 주기엔 너무 많은 돈이 든다고 했다. 아무리 많은 웃돈을 벌어도 다른 생명과 나눠쓰기엔 늘 모자른 것이다. 훗날 우리 아파트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면, 나는 먼저 나무들을 생각할 것이다. 안위를 걱정하고 또 보고싶어 할 것이다.

내 고향, 나는 그들과 함께 자랐다.



내 고향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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