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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an 28. 2020

귀한 숨을 나눈다는 건

나의 완벽한 타인들이여, 행복하세요


“귀한 숨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떼.”


요가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들은 종종 이 인사를 건넨다. 요가의 세계관에서 이런 멘트는 자연스럽다. 추상적인 표현이 가장 정확한 코칭이 될 수 있는 세계가 요가다. 예를 들면, 등으로 숨을 보내라, 호흡으로 깊어지라 등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여러 해석이 가능한 표현으로 티칭이 이뤄진다.


요가를 하다 보면 그 추상적인 표현들이 내 몸으로 구현되는 때가 온다. 등으로 숨을 보낸다는 건 등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신체 다른 부위에 불필요한 힘을 뺄 수 있다. 기반이 잡히면서 자세가 점점 정교해지고 동작은 깊어진다.


그럼에도 귀한 숨을 나눠준다는 표현은 정확히 와 닿지 않았다. 3년 동안 들어온 말이었지만 물 위 기름처럼 흡수되지 못했다, 어제까지는.






오늘 하루,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였다. 같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식당 아래 머무는 일이 편하지 않았다. 성능 좋은 마스크로 얼굴을 꽉 조여 맨 후에야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 나의 숨이 그들에게 두려움이고, 그들의 숨이 나에게 우려였다.


한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건 잠재적 질병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고 긴밀한 행위였다. 짧은 찰나 스쳐 지나가는 이들은 완벽한 타인이다. 내게 어떠한 잔상도 남지 않는 존재들.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나와는 관련 없었다.


타인이 행복할 때, 나는 행복할 수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확률은 반반. 그러나 오늘처럼 무수한 타인들이 공포를 느끼며 불행해할 땐, 나도 함께 불행할 확률이 높다. 타인의 숨이 건강하지 않을 때, 나의 숨도 위험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귀한 숨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건강한 숨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감사할 일이고 인사를 나눌 법한 일이 맞았다. 비로소 오늘 이 인사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완벽한 타인들이여, 가능한 많이 행복하고 건강하시라.






지금 듣는 음악 Feyde <Next 2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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