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의 우리들
밤이 오면 애인에게 노래를 지어 주었다. 4마디 정도 되는 짧은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나는 나
너는 너
그러나 우리는 지구인
그래서 나랑 너, 너랑 나
개인의 자아를 존중하는 동시에 인류 공동체임을 부각시키는 가사였다. 갑작스럽고 진지하게 노래를 시작하면 애인은 킥킥거렸다. 그의 하루에 어떤 일이 마음에 남았더라도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목젖을 열고 웃어댔다.
그 날, 그 밤에 나오는 나의 노랫말은 오직 애인만이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낱말들이었다. 다듬지 않은 애인의 수염을 놀리기도 하고 유치하지만 꼭 전하고 싶은 서운함을 담기도 했다. 어떤 말들은 그 날 애인의 이마를 짚어 주기도 했고 뾰로퉁한 마음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애인은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명곡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나의 노래는 갑자기 시작됐으며 녹음을 시작하기 위한 여러 동작이 채 완성되기 전에 끝이 났다. 그저 그 공간과 그 시간에 머무는 유일한 것이었다. 내게 멍석을 깔아주면 쭈뼛대며 딴청을 피울까봐 애인은 내 흥을 깨지 않으면서도 노래를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지막이 가사를 따라 읊었다.
철저히 이성적인 낮의 나는 사라진다. 풀어지지 않던 경계심이 애인의 앞에선 모습을 감춘다. 어떠한 부끄러움도, 쑥스러움도, 검열도 없다. 자유롭게 나풀거리는 날 것 그대로의 창작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