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
기나긴 겨울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자주 찾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을 하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고민을 한다. 하지만 읽고 싶어 고른 책이라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두 읽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차에 눈에 띈 김금희 작가의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도서관에서는 모두 대출 상태라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 받은 후 자리를 뜨지 않고 단숨에 읽은 책이다.
복잡하고 바쁜 서울 도심에서 조선의 궁궐과 종묘는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다. 대학에 다닐 때도 이후 회사 생활을 할 때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면 자연스럽게 찾곤 했다. 그런데 그곳에 온실이 있었다니...? 소설에 등장한 허구적 장치인가 싶었지만 유홍준 교수의 추천사를 보니 실존하는 곳이라는데 난 왜 금시초문이지... 큰 물음표를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 영두는 강화도 옆 석모도에서 나고 자란 프리랜서 작가이다. 우연한 기회에 창경궁 온실 복원 사업의 보고서 작성 작업 의뢰를 받고 20여 년 전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당연히 나보다 연배가 위일 것 같았던 주인공 영두가 사실 십수 년이 더 어리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미 대학생으로 사회인으로 세상에 나와 궁궐에서 위안을 얻었던 시간에 그녀는 서울에 갓 상경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그 시절 경험한 창덕궁과 원서동의 모습이 생생하고 낯익어서 내 과거의 한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영두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하숙집에서 함께 살면서 가족이 된 사람들과 느슨하지만 해롭지 않은 인연을 만들어가며 강남의 잘나가는 중학교에서 무리 없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한 방을 쓰면서도 속을 알 수 없고 끝까지 친구가 되지 않은 아이로 인해 상처를 입기 전까지는. 그 시절엔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영두에겐 시험지를 훔쳐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결국 처벌받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소중한 사람의 마음 또한 다치게 하고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온다.
정신이 쏙 빠진 채 아버지의 곁에서 세상을 등지고 지내는 영두를 찾아온 할머니는 스케이트를 건네주었다. 신나게 춘당지의 얼음을 지치고 달리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라는 듯. 억울한 사건이었지만 그것에 지지 말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영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기엔 영두가 아직은 많이 어리고 세상은 차가웠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영두를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하고자 찾아온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랬다면 영두가 지금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꼭 용서하지 않더라도 내 자리를 지켜내고 꿋꿋이 어른이 되어 갔다면 어땠을까. 그녀에게 엄마가 있었다면 그 상처를 달리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창경궁의 온실을 복원하는 가운데 만나게 된 할머니의 과거와 한 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의 현재는 영두에게 자신의 상처가 이제 더이상 아프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영두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상처가 주는 쓰라림을 견뎌내고 돋아나는 새 살을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