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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18. 2019

56. 잉카인들의 숨은 비밀 모라이와 살리네라스

페루-모라이 계단식 밭 시험장, 살리네라스 소금밭

원형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잉카의 계단식 밭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온 다음날 우리는 택시를 렌트하여 계단식 밭에 농산물 재배를 연구한다는 모라이 계단식 밭 연구소와 소금을 생산하는 살리네라스를 향해 출발했다.


“여보, 꼭 그곳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여기까지 와서 잉카의 비밀을 간직한 두 곳을 가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제 이곳을 다시 올 수 있겠소? 아마 가보면 당신이 더 좋아할 거요.”

“그 말을 어떻게 믿지요?”

“운전사에게 물어볼까? 로베르토,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는 어떤 곳이지요?”

“어메이징, 무초, 무초! 비엥!(무지 좋다!)”


백미러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로베르토에게 내가 오늘 가는 곳에 대하여 물으니 영어가 서툰 그는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무초 무초를 연발하며 씩 웃었다.


“거 봐요. 무초 무초라고 하지 않소?”

“저 사람들이야 뭐든지 물으면 무조건 좋다고 말하지요.”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라는 지명부터가 이상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 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멀고 험한 오지를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는가? 아마 일생을 두고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지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주저하지 말고 가보아야 한다. 


황량한 고원을 지나 자동차는 먼지를 휘날리면서 털털 거리며 달려갔다. 황토색 밭들이 고원 위에 펼쳐졌다. 농부들이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하면서 밭을 갈고 있었다. 밭을 간 뒤로는 어디선가 하얀 새들이 날아와 부리로 흙을 파 해치고 무언가를 쪼아 먹었다. 흙을 일구어 뒤집으면 벌레들이 나온다는 것을 새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황토색 고원을 1시간여를 달려가자  'Moray'라는 간판이 보였다. 거기서부터는 시골 농로 같은 좁고 험한 길을 로베르토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운전을 했다. 마침내 갈대로 역어 만든 움막이 보이자 자동차는 그곳에서 멈췄다.



"여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응, 그러네?"

"아끼, 아끼(이쪽으로 오세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로베르토는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불렀다. 그가 가르쳐 준 곳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거대한 원형 계단식 밭이 푹 꺼진 홀 안에 거대하게 펼쳐졌다. 마치 로마시대의 대형 원형경기장이 땅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살리네라스 계단식 밭 시험장


"이건… 마치 로마의 원형경기장 같아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멋지네! 검투사들은 보이지 않지만."

"정말 천혜의 원형경기장 같군요.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소? 절대로 후회를 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황갈색으로 돌고 돌아가는 원형계단의 밑바닥이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다. 돌을 지그재그로 물려 쌓아 놓은 석축 계단의 높이가 거의 사람의 키만큼 높았다.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는 곳에는 넓적한 돌을 삐쭉삐쭉하게 박아놓아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로베르토를 따라 돌계단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딛고 내려갔다. 원형계단을 따라 내려 갈수록 기온이 높아져 점점 더 더워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밑바닥에 도달하니 마치 찜통 속에 들어간 듯 화끈거렸다. 


잉카의 계단식 밭은  가장 윗부분과 밑바닥까지 높이가 140m나 되고, 총 24개의 원형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긴 찜통 속이군요! 아이고 더워라!"

"태양 속에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태양이라니요?"

"로베르토, 이거 해가 맞지?"

"씨, 씨. 솔(맞다 태양이다)."


쿠스코지역은 적도에 가까운 열대지방이다. 그러나 해발 3000미터를 전후한 고지대여서 1년 내내 최고기온은 20도 내외다. 고지대에서 재배를 할 수 있는 농작물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잉카인들은 옥수수, 코카, 면화, 채소, 과일을 심어 산악지방으로 운반하고, 저지대의 식물을 매년 조금씩 고지대로 옮겨 심어 산악지방의 기후에 적응을 하게 만들었다. 


모라이는 해발 3,500미터 고원에 위치한 원심형의 계단식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윗부분과 밑바닥까지의 높이는 무려 140m나 되고, 총 24개의 원형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원안에 작은 원을, 그 안에 다시 작은 원을 만들어 높이에 따라 각 계단에 다른 작물을 심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밑바닥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우물터도 있었다.


잉카인들은 해와 달의 움직임과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이곳 거대한 원으로 건설된 곳은 태양을 본받아 만든 농작물 재배시험장이고, 그 옆에 또 다른 작은 원형의 재배시험장은 달을 본떠 만든 시험장이라고 한다.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온도가 점점 높아진다. 그들은 열대식물을 제일 밑에 심은 다음 차차 위쪽으로 옮겨가며 계단의 온도에 맞는 식물을 심어 재배를 했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시험재배를 통하여 계단식 농사 비법을 대대손손으로 전수해주었다. 


모라이를 돌아보고 나니 잉카의 계단식 농사 비법이 한 꺼풀 벗겨지는 것 같았다. 이 비법을 전수 밭은 잉카인들은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밭을 만들고 산 밑에는 마을을 형성했다. 산자락에 마을을 짓고 그 아래 들판에서 밭을 일구는 평야지대와는 정 반대의 생활양식이다.  


"로베르토, 우나 포토(사진 한 장 찍어줘요)!"

"씨, 씨."

"이번에는 검투사 폼으로!"

"굿! 굿!"

"여보, 더워요, 빨리 나가요!"


로베르토는 촬영기사 겸 운전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식 밭을 한 참 기어 올라온 우리는 소금 생산지인 살리네라스로 향했다. 

         


하얀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 살리네라스 소금밭 

 

아메리카 원주민은 사실 우리 동양인과 매우 비슷한 점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우랄알타이어 종족이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건너간 후 먹고살 곳을 찾아 남하를 하여 남미까지 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와 같은 피를 가진 우랄알타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운전사 로베르토와 나는 전생에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을까? 친절한 그가 왠지 친형제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모라이를 출발한 로베르토는 마치 인간의 발길이 닿기를 거부하는 더 깊은 지역으로 차를 몰고 갔다. 보이는 것은 태고의 산과 계곡뿐이다. 우리는 점점 더 깊은 심장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덜컹 거리는 길을 가다가 로베르토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갑자기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더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가파른 계속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황토색 계곡 밑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하얀 소금밭이 계곡의 가파른 언덕에 케이크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해발 3000미터에 위치한 소금 염전 살리네라스


"우와! 저게 다 소금이야?"

"씨, 살, 살(소금, 소금)."

"흐음, 이런 깊은 계곡에 소금이 있다니 믿기지가 정말 않는군요."

"그러게! 마치 흰 케이크처럼 생겼네! 우리들을 위한 웨딩케이크 아닐까?"

"맞아요! 오늘 우린 마치 잉카의 마술에 홀린 것만 같아요."

"으음... 잉카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보는 기분이네!"

"그런데 저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 지지요?"

"로베르토에게 물어봐야지. 로베르토, 이 소금을 어떻게 만들지요?"

"컴, 컴, 아키(이리로 와 봐요)."


로베르토를 따라 계곡 밑으로 내려 가보니 놀랍게도 소금밭 최상류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베르토가 손가락의 물을 적셔 입에 대며 우리도 따라서 해보라는 시늉을 했다. 손가락에 물을 적셔 혀끝에 대보니 바닷물보다 더 짰다.


소금밭 최상류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짠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이고, 엄청 짜네요!” 


잉카인들은 이 물구멍 밑에 계단식 밭을 만들어 짠물을  계속 흘러 보내 가두어 두고 햇볕에 서서히 말리면서 소금을 만들어 온 갓이다. 계단식 밭은 층마다 물이 흘러내려가도록 구멍을 뚫어서 연결하고 있었다. 약 2,000여 개의 계단식 연못이 마치 케이크 상자처럼 층층이 연결되어 있었다. 해발 3,000미터에 위치한 살리네라스(Salineras)가 오래전에 바다였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 높은 곳에서 짠물이 나오다니 믿기지 않아요. 혹 저 물구멍이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그거야 저 물구멍을 따라 들어가 봐야 만이 진실을 알 수 있겠지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높은 지역에서 짠물이 흘러나오다니…"

"지각변동으로 천지개벽이 되면 이 지구가 또 어떻게 변할까?"



보통의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3000미터의 고지에 바닷물보다 더 짠 물이 흘러나오다니. 저 물구멍이 정말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신비했다. 이런 고산 지대에 살리네라스 같은 소금밭이 있었기에 고대 잉카인들은 존재할 수 있었으리라. 소금밭은 마치 네모난 흰 케이크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모자이크처럼 연결된 소금밭에는 묘의 봉분처럼 소금이 쌓여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 지역에서 잉카인들이 필요한 소금을 전부 생산했다고 한다. 1kg씩 포장되어 있는 소금 봉지에는 잉카의 원주민이 그려진 상표가 붙어있었다.  


"소금 맛은 다소 고소하군요."

"진짜 고소하네! 잉카의 소금장수나 해볼까?"

"에그, 그런 일을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만병통치약 잉카의 소금! 뭐 이런 카피로 광고를 하면 소금이 날게 돋친 듯 팔리지 않을까?"


단나귀에 소금을 싣고 가는 소년


소금 맛을 보니 정말 짜면서도 다소 고소한 맛이 났다. 한 소년이 나귀에 소금을 싣고 갔다. 먼 과거에서 온 잉카의 소금장수처럼… 소년은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의 나귀에 큰 소금가마니를 싣고 갔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면서 생존을 해 오고 있다. 여기, 잉카의 속살, 아니 잉카의 심장에서 그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곳이야말로 정녕 잉카인들의 성스러운 계곡이자 생존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다. 


성스러운 잉카의 계곡 위로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석양 노을이 소금 계곡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로베르토가 시계를 보며 늦었으니 가자고 손짓을 했다. 소금밭을 나와 다시 쿠스코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한 떼의 양 무리가 길을 막았다. 로베르트는 양 떼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밤늦게 다시 쿠스코로 돌아왔다. 


아마존의 눈썹 우루밤바 강, 모라이 농산물 재배 시험장, 그리고 살리네라스 소금 생산지… 잉카의 진정한 숨은 비밀은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정말 잉카의 깊은 속살을 만져보는 느낌이 들었다. 로베르토의 말처럼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불평을 늘어놓던 아내는 오히려 나보다 더 흡족해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 진정으로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 두 사람 다 많은 여행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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