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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19. 2019

57. 살사와 폴클로레

페루- 쿠스코

스페인어와 살사춤을 배우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다


과거 생에 나는 이곳 쿠스코에서 잉카인으로 태어났을까? 며칠간 머무는 동안 어쩐지 쿠스코가 옛 고향처럼 정이 듬뿍 들었다. 잉카인들의 정다운 미소, 돌담길, 12각의 돌, 잉카의 시장, 계단식 밭과 소금밭 살리네라스, 그리고 코카 잎과 코카 차에 이르기까지…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거리와 음식, 사람들이 제법 익숙하게 낯이 익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코스코에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갈길이 너무나 먼 우리는 이제 정든 잉카의 고도 쿠스코를 떠나야 했다.


살리네라스 소금밭에서 쿠스코로 돌라온 우리는 티티카카 호수로 갈 준비를 하였다. 기차로 갈 것인가 버스로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지만 기차는 일주일에 네 편이 출발하는데 이틀을 더 기다려야 했다. 버스는 회사마다 출발시간이 다 달랐다. 그런데 비바라틴 지배인은 기차와 버스 둘 다 길이 막혔다고 했다. 푸노로 가는 길 어디서엔가 지방 사람들이 데모를 하며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통행을 방해하듯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며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언제쯤 길이 열리지요?”

“글쎄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데모 덕분에 우리는 쿠스코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된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쿠스코에서 잉카의 문화탐방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오늘 밤에는 호스텔 식당에서 세비체라는 페루 전통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아내는 별로 맛이 없다고 하며 절반이나 남겼다. 아마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생선이 입맛에 맛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어 갈 무렵 날씬한 몸매를 한 남미의 아가씨가 들어왔다. 얼핏 보아도 전형적인 메스티소(mestizo-중남미 원주민과 에스파냐계 백인간의 혼혈인종))다. 그녀는 문을 들어서면서 “올라”라고 유쾌하게 인사를 했다. 웃는 얼굴이 귀엽고 편안하게 보였다. “올라” 하고 내가 인사를 받자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전혀 모른다고 대답을 하자 그녀는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이곳에 스페인어를 가르치러 왔다고 했다. 누구를 가르칠까?     


여행자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스페인어 선생님


내가 그녀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사과 앞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자 문득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이둔이 떠올랐다. 이둔은 ‘굉장히 사랑받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있는 청춘의 여신으로, 그녀는 항상 젊은 사과를 자신의 상자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사과 앞에 앉아서 멋진 포즈를 취해주는 스페인어 선생님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가 사과를 들고 나랑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녀와 함께 사과를 들고 어설프게 포즈를 취하자 아내가 눈을 흘기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스페인어 선생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어쩐지 어설프게만 느껴졌다. 아내가 찍어준 사진도 역시 어설프게만 보였다.

     

사진을 찍고 나서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2층에서 일본인처럼 생긴 청년이 내려왔다. 수염을 어설프게 길어서일까? 나는 그가 꼭 일본인처럼 보였다. 그도 아마 스페인어 선생과 앉아있는 내 모습이 어설프게 보였으리라. 내가 그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자 그는 의외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L 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1년 동안 홀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반가웠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긴 하는데 싱글이라고 했다.


그는 쿠스코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동안 스페인어와 살사 춤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이 멋지게 생긴 스페인어 선생님한테 스페인어를 배우고, 살사는 호스텔 종업원한테 배우고 있다고 하며 어깨를 으슥했다. 멋진 남자다! 현지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홀로 세계일주를 하며 살아가는 여유를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스페인어 수업이 끝나고 원주민들이 드나드는 살사 댄스홀로 살사 실습을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나는 그의 제의를 즉시 수락을 했다.

      

살사 댄스홀은 호스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L군을 따라 걸어서 살사 댄스홀로 갔다. 살사를 가르치는 호스텔 종업원 아가씨가 동행을 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호스텔 종업원 아가씨는 전형적인 인디오 혈통으로 순진하게 보였는데 매우 싹싹하고 친절했다.


살사춤을 가르친다는 호스텔 여 종업원

     

지하에 있는 댄스홀은 어둡고 시끄러웠다. 로컬 원주민들이 맥주를 한잔 시켜놓고 밤새 춤을 추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내는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너무 어두웠다. 밤이 깊어지자 점점 더 많은 원주민들이 몰려들었다. L군은 자신을 가르치는 살사 선생님인 호스텔 아가씨와 함께 무대로 나가 춤을 추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어설프게 보였다. 허지만 그는 즐거운지 마냥 싱글벙글 웃었다.   

  

“아휴, 이 담배 냄새. 그만 나가고 싶어요.”

“그래요. L군이 자리로 오면 나가요.”     


살사 춤을 출 줄도 모르는 우리는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에 그냥 앉아있기도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 원주민 남녀들이 함께 어울려 음악에 맞추어 춤을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춤이 무척  혼란스럽게만 보였다. 맘보도 아니고, 차차차도 아니고…     

 

살사(Salsa)는 원래 쿠바가 원조인데 라틴아메리카의 마을 축제나 파티에서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1940년대에 ‘차랑고’ 등의 무도 반주음악 연주와, 볼레로, 맘보, 차차차 등의 리듬 요소를 짬뽕하여 탄생된 음악이 살사란다. 쿠바의 음악이 뉴욕으로 진출하고, 빅밴드에 의한 스윙, 재즈를 섞어 ‘라틴재즈’로 발전되어 거기에 남미의 음악적 요소를 가미해서 탄생한 것이 오늘의 ‘살사’란다. 살사라는 말은 소금을 뜻하는 스페인어 ‘sal’과 소스를 뜻하는 ‘sals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내게는 남미의 원주민 혼혈인들만큼이나 복잡하게 보였다.   

   

L군이 숨을 몰아쉬며 살사 선생님과 함께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싱글벙글 웃는 그는 여행을 제대로 만끽할 줄 아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방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며 하는 여행이야말로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어쨌든 우리는 함께 온 호스텔 아가씨, 아니 살사 선생과 함께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그들과 함께 잉카의 맥주를 한잔 마시고 우리는 먼저 나왔다. 층계를 올라오는 데 역시 조금 숨이 찼다. 맥주 한잔 탓 일까?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뭔가 신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쿠스코! 생각 같아서는 이 멋진 스페인어 선생한테서 몇 달 스페인어를 배워 남미를 제대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날도 역시 티티카카로 가는 길은 아직 열리고 있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덕분에 쿠스코 다운타운과 중앙시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중앙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비바라틴 지배인이 불렀다.


“미스터 초이, 길이 열렸데요. 오늘 밤 10시에 버스가 출발을 할 수 있답니다.”

“오, 그래요? 그럼 저녁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좀 구해주세요.”

“네, 그렇게 하지요.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입니다.”

“좋아요. 10시든 11시든 관계없습니다.”     



잉카의 전통음악 '폴클로레'에 빠지다


티티카카로 가는 길이 언제 열릴지 몰라 우리는 오늘 밤에는 잉카의 전통 민속공연인 페냐 쇼를 보기로 되어 있었다. '페냐쇼'는 ‘폴클로레(Folcore)’ 등 잉카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해서 쿠스코를 떠나기 전에 잉카 음악을 듣고 싶었다. 공연은 7시에 시작하여 9시경에 끝나므로 미리 짐을 싸 놓았다가 떠나면 될 것 같았다.


공연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입장해 있었다. 이곳은 폴클로레를 풀코스로 즐길 수 있는 쿠스코 문화 센터다. 폴클로레는 남미의 민족적인 민요로 흔히 잉카의 음악이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주로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안데스 지역의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연주되어왔다. 잉카의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알티플라노(Altiplano-중부 안데스 고산 지대에 넓게 펼쳐진 고원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인 티티카카 호를 비롯해 중심 도시인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가 위치해 있다)를 중심으로 널리 부려지고 있는 폴클로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폴클로레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원주민들


잉카의 악기는 대부분 타악기와 피리 종류다. 그중에서도 짧은 대나무와 긴 대나무를 차례로 가로로 묶어서 만든 안타라(Antara-남미 팬파이프의 일종)의 소리는 가장 심금을 울려준다. 안타라도 크기에 따라 소리도 다르다. 챠스키 복장을 한 소년이 소라 고동 나팔인 푸투투를 불며 뛰어나왔다. 이어서 흙으로 구어 만든 오카리나 멜로디가 애간장이 끊어지듯 흘러나왔다. 동물의 뼈다귀로 만든 작은 피리 케나케나(quena-quena) 소리는 가슴을 후비듯 파고들었다. 완카르(wankar)라는 북이 쿵쿵 울리며 흥을 돋우었다. 판초 차림으로 연주하는 차랑고(charango) 소리는 경쾌한 잉카의 리듬을 타게 했다. 잉카의 춤과 노래에 젖어들며 우리는 먼 잉카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연주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원주민들이다. 잉카의 춤을 추는 사람들도 나이가 지긋한 현지 노인들이 많았다. 원색의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잉카의 여인들은 어떤 가식도 없었다. 평소 자기들이 즐기며 추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잉카 시대의 음악과 춤에 흠뻑 빠져 있다가 밤 9시경에 비바라틴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별말씀을요. 미스터 초이, 제가 아는 푸노의 여행사에 두 분의 도착 시간을 알려 놓았어요. 아마 마중을 나올 겁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하여간 고마워요.”


비바라틴의 지배인과 작별을 고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는 늑장을 부리다가 10시 30이 넘어서야 출발했다. 쿠스코 시내가 깜빡거리는 전등 불속에 점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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