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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21. 2019

58. 한밤중에 돌멩이 세례를 받다

페루-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길 

한 밤중에 쿠스코를 떠나게 되니 마치 정복자들을 피해 도망을 가는 잉카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탯줄을 묻은 삶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멀리 도망을 가야만 했던 잉카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쿠스코에서 푸노까지는 버스로 16시간이 넘게 갈린다고 한다. 4,000m를 넘는 안데스 산맥 고지대를 넘어가야 하므로 오늘 밤에도 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버스는 덜덜거리며 안데스 산맥을 따라 칠흑 같이 어두운 고지대를 달려갔다. 너무 어두워 밖은 모두 까만색 일색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아내 역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커브가 심한 비포장도로는 승객들의 몸을 가만 두지 않고 도리질을 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고산지대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여 멀미도 덜하고 토하지도 않았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깜박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쨍하고 들려 소스라치게 잠을 깼다. 유리창을 뚫고 돌멩이가 날아 들어왔다. 


“이크, 이게 뭐야!”

“모두 엎드리세요!”

“여보, 작은 배낭으로 머리를 가리고 엎드려요!”

“이거 큰 일 났네!”


차장이 엎드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승객들이 모두 의자 밑으로 고개를 들이박고 엎드렸다. 돌멩이는 계속 날아왔다. 우려했던 데모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버스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속력을 냈다. 차가 널뛰기를 하듯 덜커덩거렸다. 언덕 위에서 돌멩이는 계속 날아왔다. 피용! 피용! 돌멩이는 버스의 지붕을 총알처럼 때리며 튀어나가거나 유리창을 깨고 버스 안으로 날아들었다. 어떤 승객은 돌멩이가 맞아 “아악!” 하고 소리를 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게 전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티티카카 호수로 오는 길에 돌멩이 세례를 받고 깨진 유리창


한 참을 달려서야 우리는 돌멩이 세례를 겨우 피할 수가 있었다. 버스 차장이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방의 군중들이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삼고 시위를 하는 그런 내용인 것 같았다.


드디어 날이 새기 시작했다. 안데스의 봉우리들이 손에 닿을 듯 스쳐 지나갔다. 라마 떼가 풀을 뜯다가 놀란 눈을 하며 산등성이로 뛰어갔다. 돌멩이 세례가 언제이었느냐는 듯 창밖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세상사는 시간의 파도 위에서 잠시 주춤거리다가 시간의 파도 속으로 묻혀 버린다. 우리는 돌멩이가 날아드는 어젯밤의 지옥 같은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점점 새로운 풍경 속으로 취해 들어갔다. 


“와아, 티티카카 호수다!”


쿠스코에서 버스로 20여 시간 만에 도착한 티티카카 호수


누군가가 소리를 질러 창밖을 내다보니 티티카카 호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호수는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며 바다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 상에서 기선이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에 도착한 것이다. 지옥과 천당이 따로 없다. 어젯밤은 정말 지옥과 같았는데 오늘 아침 티티카카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마치 천당에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황량한 고원’을 뜻하는 푸노는 해발 3,850m에 위치한 도시다. 티티카카 호수에 인접되어 있는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니 숨이 찼다. 버스에서 내린 아내는 "휴우~"하고 긴 숨을 토해냈다. 어쨌든 돌멩이 세례 속에서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여행은 트러블의 연속이 아니던가? 고산증세에 어느 정도 적응은 되었지만 배낭을 메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찼다. 천천히, 더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바다 같은 호수가 있는 곳인데도 숨이 차군요!"

"쿠스코 보다 더 높은 호수이니 천천히 걸어야 해요."

"호수는 아름다운데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의 집들은 꼭 달동네 같아요."


푸노(3850m)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숨이 찼다. 


고개를 돌려 시야를 호수 쪽으로 돌리니 거대한 터키석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숨은 차고 힘이 들지만 호수는 아름다웠다! 푸노는 기선이 항해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 접해 있다. 호수와 안데스 산맥 사이에 끼어 있는 푸노의 산등성이에는 갈색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잉카의 창시자인 망코 카팍이 강림한 곳이라는 전설을 담고 있는 푸노는 잉카 시대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곳이다.  그러나 스페인이 점령한 후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곳이기도 하다. 그 시대 원주민들은 도시에서 쫓겨나 산속이나 호수 위의 갈대 섬으로 이주해야만 했고 생활 터전을 빼앗겨 버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론리 플래닛 안내책자를 꺼내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찾고 있는데 키가 호리호리한 원주민 두 명이 다가왔다.


“쿠스코에서 오신 미스터 초이시지요?”

“네, 그런데요?”

“저희들은 비바라틴에서 연락을 받은 푸노의 여행사 직원들입니다. 푸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 저희들 차에 타시지요.”


그들은 아내와 내 등에서 말릴 사이도 없이 배낭을 끌어내려 차에 실었다. 허지만 그들의 인상이 썩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그들은 내가 론니플래닛에서 찜해둔 호스텔로 가자고 하자 그곳은 위험한 곳이니 자기들이 정해놓은 호텔로 가자고 했다. 


덜덜 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가던 그들은 망코 카팍의 동상이 바라보이는 와후사파타라는 언덕 부근에 있는 어느 호텔에 차를 세웠다. 간판을 보니 마리아 호텔 앙골라(Hotel Maria Angola)라고 붙어 있다. 그들은 호텔 비용이 원래 40달러인데 특별히 20달러로 할인하여 우리들에게 제공을 한다고 말했다. 시설에 비해 그렇게 비싼 요금은 아니어서 우리는 하루 밤을 묵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무언가 꼬여드는 느낌이었다. 


티티카카 호수 투어비용을 물으니 1박 2일에 1인당 78(약 24달러)솔이라고 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비용보다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일단 나중에 연락을 하겠노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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