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 부탄탄뱀연구소
버스가 상파울루에 도착할 무렵 경쾌한 삼바 리듬이 버스에 울려 퍼졌다. 리듬이 단순하고 경쾌하며, 담백하고 즐겁다. 엉덩이춤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삼바, 삼바, 삼바…"
"아니 당신 왜 그래?"
"흥겹지 않소? 삼바 리듬이…"
"아이고, 못 말려."
페루 리마에 도착하여 안데스 산맥을 몇 번이나 넘으며 오직 육로를 따라온 길이다! 그 길은 극한 고행의 길이기도 했지만 폴클로레, 탱고, 삼바로 이어지는 즐거움의 길이기도 했다. 삼바리듬은 남미의 그 어떤 음악보다도 경쾌하고 흥겹다. 페루의 안데스 음악이 애잔하고 슬프다면,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멋들어지면서도 슬프다. 그러나 브라질의 삼바는 마냥 경쾌하고 즐겁다.
나는 상파울루의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사람들)라도 된 듯 삼바 리듬을 흥얼거렸다. 내 마음은 이미 하늘로 치솟아 있는 고층빌딩의 스카 라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린 것이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오직 현실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순간순간을 소중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파울리스타가 되는 거야. 상파울루는 이민자들이 독특하게 만들어 낸 문화, 즉 '혼돈의 조화'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홍수를 이루는 호도비아리아 터미널은 혼돈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인구 약 1100만 명, 1000곳이 넘는 금융기관, 170개 이상의 극장, 7개의 텔레비전 채널, 11개의 일간신문, 257개의 정보 기관지…"
"브라질에 이렇게 큰 도시가 있다니 믿기지 않군요."
터미널에 도착할 무렵 내가 가이드북에 나온 내용을 읽어주자 아내는 그저 놀라기만 했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유역이나, 이구아수 폭포 등 원시적인 자연만을 상상하다가 이렇게 큰 도시가 나타나니 놀랄 수밖에. 브라질 최대 버스터미널인 체테 호도비아리아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여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마치 인종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상파울루는 각국의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도시로 유명하다.
2층에서 T층(브라질에서는 1층을 T로 표시)으로 내려가니 100곳의 플랫폼, 100곳의 티켓 판매소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틀 후의 리오 행 버스 티켓 두 장을 사들고 다시 체테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지하철을 타고 리베르다데 역에서 내려 안내서를 보고 중국인 호스텔을 찾아갔다.
"여보, 너무 더러워요."
"다운타운이 가까워서 좋긴 한데……."
"그래도 너무 지저분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그럼 다른 데로 갈 수밖에."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상파울루 프라카 아보레 호스텔(Praca da Arvore Hoatel)로 향했다. 다운타운에서 꽤 멀지만 호스텔은 깨끗하고 편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리베르다데 거리로 갔다. 아내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해서 리베르다데 역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한국관'이라는 한국음식점이었다. 2층에 한국관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한국관이라는 간판만 보아도 반가웠다. 2층으로 올라가 한국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인은 없고 현지 종업원과 현지인들만 있었다. 주인은 한국인인데 경영은 현지인이 한다고 했다.
내가 김치찌개 2인분 하며 두 손가락을 들자 여자 종업원은 금방 알아들었다. 아내는 김치찌개가 빨리 먹고 싶은지 빨리 해 달라고 독촉을 했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밤새 달려왔으니 배가 고프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김치찌개를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내가 종업원에게 한국말을 좀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빨리빨리!"
한국인들이 여행지에 와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빨리빨리'이다 보니 그 말을 가장 먼저 배웠다는 것이다. 네팔에 갔을 때에도 같은 말을 들었는데 이곳 상파울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들이 우리말 중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하는 것을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치 삼바춤을 추듯 날렵하게 김치찌개를 들고 왔다.
"정말로 빨리 나왔네!"
"빨리빨리!"
그녀는 '빨리빨리'란 말을 다시 중얼거리며 씩 웃었다. 아마 그녀도 한국관에 근무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병이 전염된 모양이었다. 김치찌개를 다 먹어갈 무렵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가 나타났다. 종업원의 말로는 그가 이 식당의 보스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반가워 내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더니 그도 반가이 맞이한다.
"어허, 두 분이서 이렇게 멀리 브라질까지 오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소갈머리가 없는 부부지요."
"별말씀을… 그래 상파울루 구경은 좀 하셨나요?"
"오늘 아침에 막 도착을 했는걸요."
"사실 상파울루는 도시만 컸지 볼게 별로 없어요. 상파울루에서 특이한 곳이 있다면 부탄탄 뱀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 한 번 가보심이 어떨지요. 그곳에 가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아마존의 뱀들을 볼 수 있지요."
"아, 그래요."
"그리고 내일은 이곳 리베르다데 거리에서 일본인 축제가 열리는데 그것도 볼만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김치찌개가 맛이 그만이군요."
"아, 그래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종업원들이 한국말은 모른다는 데 '빨리빨리'란 말은 금방 알아듣더군요."
"아하 그거요. 한국의 여행자들은 들이닥치자 말자 빨리빨리 달라고 어찌나 닦달을 하든지 이곳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빨리랍니다. 하하."
"하하, 그렇기도 하겠군요."
계산대로 가서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 여자 종업원에게 감사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빨리빨리"라고 속삭이면서 하면서 다시 씩 웃었다. 빨리빨리 가 보아야 빨리 죽기만 할 터인데, 빨리빨리 병은 정말 고쳐야 할 한국병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국관에서 나온 우리는 한국관 사장의 추천에 따라 부탄탄 뱀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하필이면 뱀 박물관을 가느냐고 싫다고 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을 하여 우리는 뱀 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리베르다데 거리에서 걸어서 세(Se) 광장에 이르니 야자수 나무가 도열된 대성당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상파울루 거리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세 광장에서 헤블리카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상파울루의 중심가다. 짙푸른 공원으로 둘러싸인 헤프블리카 광장에서 우리는 부탄탄행 버스를 탔다.
뱀의 유혹과 이브의 유혹-부탄탄뱀연구소
‘부탄탄-USP’ 역에서 내려 뱀 박물관을 찾는 데는 결코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포르투갈 말을 한마디로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USP에서 한참을 헤매며 손짓 발짓으로 물어물어 찾아 간 부탄탄 뱀 박물관은 낮은 구릉에 하얀색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뱀을 싫어하는 아내가 꼭 뱀 박물관을 가야 하느냐는 다시 투정을 했다. 누군들 징그러운 뱀을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어떤 여행지에서나 호기심을 가졌던 곳을 가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되면 꼭 후회가 뒤따른다. 그때 꼭 가보았어야 하는 건데… 생전에 다시는 가 볼 수도 없는 곳인데… 그러나 나중에 후회를 해 보아야 그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가고 싶은 곳은 기를 쓰고라도 꼭 가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곳 부탄탄 뱀 박물관도 그중의 하나다. 나 역시 뱀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마존의 진기한 뱀'이라는 호기심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뱀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거지? 그러기에 뱀의 유혹에 이브가 넘어간 것이 아닐까?"
“저 현란한 색깔 좀 보아요.”
“정말 색깔도 다양하네.”
투정을 부리기만 하던 아내가 진기한 뱀들을 보고 놀랐다. 뱀 연구소에 진열된 뱀들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파란 뱀, 하얀 뱀, 빨간 뱀, 검정 뱀… 뱀의 색깔도 정말 다양했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이브가 고대 여신을 상징하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인 무화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따먹게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두 남녀는 살을 섞는 황홀한 쾌락을 맛보지만, 이브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아담은 노동의 고통을 떠맡게 되었다고 한다.
선악과를 먹은 후 눈이 밝아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알몸인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의 무서움도 알게 되었다. 육체적 사랑의 원죄로 불행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샘이다. 고대 여신으로 모시던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로 인해 온 인류가 고통을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이브(여자)의 유혹은 뱀의 유혹에 견줄만하다. 성경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저리는 죄를 '원죄'라고 부른다. 이들의 원죄가 인류에게 미처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이 원죄는 타락한 천사인 뱀의 유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세상은 타락한 천사들의 유혹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타락한 천사들의 유혹 속에 욕망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과연 이브가 저 아름다운 뱀의 유혹에 빠질 만도 하네!"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것이 뱀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뱀은 여전히 징그럽게 보여요."
어쨌든 뱀은 이런저런 연유로 고대로부터 유혹의 사탄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부탄탄 뱀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뱀들을 보게 되니 과연 유혹의 사탄이 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였지만, 욕심과 교만으로 변질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뱀은 간교하고 교활한 모습으로 인간을 타락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지혜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성경에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 10:16)'라고 뱀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뱀은 매우 지혜롭고 깨끗한 동물로 본받을 게 많다. 첫째, 뱀은 겨울 동면을 위하여 미리 고단백질을 많이 먹어둠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말하자면 후일을 미리 예비하는 존재다. 둘째, 뱀은 1년에 한 번 허물을 벗으며 변화와 개혁을 꽤 한다. 셋째, 뱀은 보호색을 가지고 주위의 환경에 적을 한다. 어떤 자리이든, 어떤 자리이든 어떤 문화권이든 적응을 한다는 것이다. 넷째, 뱀은 뱀을 먹지 않으며 동료를 배신하지도 모함하지도 않는다. 다섯째, 뱀은 뼈가 있으나 뼈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보를 다 노출시키지 않고 위험을 대비한다. 여섯째, 뱀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는 불협화음을 내지 않으면서 원만한 인간관계, 무난한 대인관계를 갖게 하는 교훈을 준다. 일곱째, 뱀은 승산이 없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무모한 도전을 부리지 않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뱀은 색깔이 아름답고 부드럽다. 즉 산신의 외모관리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외모가 깨끗하고 단정하면 누구에게나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부탄탄 뱀연구소에서 갖가지 색깔의 뱀을 보며 정말 뱀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어지로운 세상을 살아가며 이처럼 지혜로운 뱀의 지혜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배낭여행은 많은 위험이 따르는데 뱀의 지혜를 따르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탄탄 뱀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다. 또한 뱀뿐만이 아니라 독거미, 전갈 등의 독도 연구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약 4000종, 4만 마리에 달하는 독이 많은 파충류들이 진열되어 있다. 독이 많은 파충류에서 백신이나 혈청을 뽑아내어 인간을 치료하는 병원용 백신이나 혈청을 제조한다는 것이다. 징그럽게만 보이던 뱀이 인간에게 이로운 약을 공급해 준다니 형형색색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뱀들이 새삼 다른 존재로 보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