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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Aug 28. 2019

끝없이 이어지는 브라질 커피 농장을 달리며...

브라질-상파울루

 

버스에는 큰 보따리에 짐을 든 서민들로 가득 찼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에는 인형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지 인형 보따리를 실은 사람들도 있었다. 에어컨이 너무 강하여 추울 지경이었다. 이윽고 버스는 브라질의 광활한 땅을 달려갔다.


"저기, 푸른 나무가 뭐지요?"

"바로 저게 커피라는 나무라오. 여기서부터 커피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농장이 상파울루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대요. "

"와우, 그래요? 규모가 어마어마하군요!"


이구아수 폭포를 출발하여 상파울루로 가는 길에는 커피 농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브라질의 커피 생산은 상파울루 지역을 중심으로 남부지방에 커피농장이 집중되어 있다. 파라나(Parana), 상파울루(San Paulo),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 등으로 이어지는 커피 농장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다. 세계인이 마시는 커피의 40% 이상을 생산하는 커피 대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는 커피농장이 신기한 듯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브라질 커피 생산지

"저렇게 끝없는 커피농장이 있는 걸 보면 커피의 본고장이 원래 브라질인가 보지요?"

"아니, 커피의 원조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라고 해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라니 의외인데요?"


나는 인터넷에서 주어 읽었던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지만 커피의 원조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이다. 6~7세기경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지방에 ‘칼디( Kaldi)'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염소를 보살피는 데 누구보다도 성실했던 칼디는 어느 날 염소들이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술에 취한 듯 흥분하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칼디는 염소들이 먹은 붉은 열매를 따서 집으로 돌아와 물에 끓인 후 마셔보았다. 바로 그 순간 칼디는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는 이 신기한 사실을 이근 이슬람 수도원에 알렸으나 수도사는 그 열매가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불속에 던져버린 커피 열매가 불에 타면서 특이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곧바로 불에 타다 남은 열매를 수거하여 뜨겁고 검은 커피음료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수도사들은 커피가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어 밤에 기도를 할 때 졸지 않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커피는 이렇게 악마의 유혹에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발견된 커피는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예멘으로 전달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와 같은 음료로 개발되었다. 예멘의 모카(Mocha, 우리가 마시고 있는 모카커피의 발상지 )항은 인도양에서 홍해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커피 무역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15세기경부터 커피가 점점 인기 있는 음료가 되면서부터 아랍 인들은 커피에 대한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 씨앗의 발아가 불가능하도록 껍질을 벗겨서 수출하였고, 커피나무와 씨앗의 수출을 금지시켰다. 이를 어기거나 밀무역을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그 후 커피가 유럽에 소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인들은 아라비아 메카를 경유하여 커피나무를 네덜란드로 가져오는 데 성공하였고, 여기에서 나온 커피 씨앗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이식(1696년)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 재배를 시작하였다. 네덜란드 인들은 1714년 커피나무 한그루를 프랑스 루이 14에게 선물로 기증을 하였는데, 프랑스는 이 커피나무를 식물원에서 재배하여 그 씨앗을 식민지로 보내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브라질 커피농장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인 브라질에 처음으로 커피가 재배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카피 재배는 18세기 브라질 장교 프란시스코 데 멜로 팔레타(Francisco de Melo Palheta)가 프랑스령인 남미의 기아나에서 커피 열매를 훔쳐 온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왕실의 온실에서만 커피를 재배하여 왕실에만 바치는 귀한 존재였다. 프랑스는 허가받지 않는 지역으로 커피나무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엄격한 통제하에 커피를 재배하고 있었던 남미의 기아나(Guiana)는 프랑스령과 네덜란드령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두 나라 간에 국경분쟁이 있어 났다. 두 나라는 고심 끝에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에 중재를 요청했다. 브라질은 중재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브라질은 중재자를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커피 씨앗을 반입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브라질은 커피 씨앗을 구하려면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중론을 모으고 중재자를 수소문한 끝에 팔방미인 격인 팔레타를 선발하여 중재자로 파견하였다. 기아나에 파견된 팔레타는 총독뿐만 아니라 총독 부인의 호감을 사는데도 성공하였다. 팔레타는 총독 부인의 눈에 들어 불륜을 즐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팔레타는 총독 부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마다 커피 씨앗을 화제로 올렸다고 한다. 


팔레타의 원만한 중재로 국경분쟁이 성공적으로 해결된 어느 날, 팔레타는 사랑에 빠진 총독 부인에게 본국에서 호출 명령이 떨어져 귀국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타가 기아나를 떠나는 날, 총독 부인은 사랑하는 팔레타에게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케처럼 생긴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했다. 그녀는 팔레타가 커피 씨앗을 자기만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꽃다발 속에 한 줌의 커피 씨앗을 다른 사람 눈에 띠지 않게 선물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1727년 커피 씨앗을 반입하는 데 성공한 브라질은 세계 커피 강국으로 가는 게기가 되었다. 커피 씨앗을 꽃다발에 담아온 팔레타는 이를 아마존 강가에 심어 재배를 하기 시작했다. 커피나무 씨는 묘목으로 자라 점점 브라질 전역에 펴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가 되었다. 이 스토리는 마치 우리나라의 문익점이 붓 대롱 속에 목화씨를 담아와 목포 인근 고하도에 씨를 뿌려 목화를 재배한 사연과도 비슷하다.


브라질의 커피 재배를 도와준 것은 적당한 기후조건과 풍부한 노동력이다. 커피 생산 지대는 대부분 아열대성 기후에 속해 있는 남부 지방으로 적당히 흐린 날씨가 커피를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커피 재배 중심지는 상파울루 고원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고 오늘날 커피는 브라질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부케와 커피 씨… 끝없이 이어지는 커피 농장을 바라보며 프랑스 총독의 부인으로부터 커피 열매를 받아 부케에 숨겨온 팔레타의 손이야말로 브라질을 위하여 신이 내려준 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바람둥이 남자가 브라질을 커피 대국으로 만들었군요."

"그런 셈이지요. 팔레타는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대롱 속에 넣어 우리나라에 밀반입을 한 문익점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밀수도 때로는 국가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할까? "


커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없이 이어지는 커피 농장에 어둠이 찾아왔다. 밤이 되니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웠다. 밤 9시경 버스는 어느 휴게실에 정차를 했다. 뷔페식 간이식당이 있었는데, 음식을 무게로 달아서 팔았다. 입장 시에 가격표를 나누어 주고 먹고 싶은 음식을 무게로 달아 가격을 계산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도중에 버스가 고장이 나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른 버스가 와서 갈아탔다. 


버스에서 밤새 울어댔던 아이


뒤 자석에는 아이 둘을 앉은 부부가 앉아있었는데, 한 아이가 계속 울어대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가는 데도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두 편이나 되는 비디오를 보다가 잠이 겨우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눈부신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높은 빌딩들이 마천루처럼 나타났다. 16시간 만에 마침내 남미 최대의 도시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밤새 울어댔던 아기도 내가 언제 울었냐는 식으로 웃고 있었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16시간 달렸던 버스 길은 끝없는 커피농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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