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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Sep 14. 2019

수수께끼의 모아이 석상은
외계인이 만들었다?

칠레-이스터 섬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외계인이 만들었다? 


12월 10일 아침 8시 15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을 이륙한 란칠레 항공 755호 점보기는 남미대륙을 가로질러 안데스 산맥을 넘어갔다. 지금까지 육지로만 기어 다녔던 안데스 산맥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넘어갔다. 11월 초에 페루 리마에서 출발하여 볼리비아, 칠레 아타카마 사막,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브라질 리오데 자네이루까지, 우린 그 긴 여정을 순전히 육로로 기어 다녔다. 강도와 도둑을 만나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고산병 때문에 토하고 또 토하면서 지나왔던 고행의 여정 길. 역시 여행길은 고행 길이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이미  지나간 지상에 건물들이 마치 성냥갑을 엎어 놓은 듯 점점이 보였다.



비행기는 남북으로 길게 내리 뻗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현지시간 1시에 칠레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착륙을 했다. 도대체 몇 시간을 날아왔는지… 시차가 자주 변경되다 보니 시간 개념이 희박해졌다. 이스터 섬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는 5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공항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칠레 돈 20만 페소를 CD기에서 인출했다. 그리고 시간이 있어 지난번에 만나지 못했던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K사장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공중전화박스에서 다이얼을 돌리니 마침 K사장이 직접 받았다. 반가웠다!


"최 선생님, 지난번에는 길이 서로 엇갈리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스터 섬 잘 다녀오시고요, 오시는 날 비행시간을 알려주시면 저희 직원을 공항에 보내겠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바쁘신데 괜히 민폐를 끼쳐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최 선생님을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나는 이스터 섬에서 출발하는 날 그에게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다. 어쩐지 그를 꼭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후 6시 정각. 란칠레 항공 833호를 점보기는 승객을 가득 태우고 산티아고 공항을 이륙했다. 


"이스터 섬에 뭐가 볼 거 있다고 이리도 사람들이 많이 타지요?"

"그야 수수께끼의 모아이 석상을 보러 가지요. 여행자들이 그 수수께끼의 모아이 상에 홀린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소?"

"도대체 모아이가 뭐길래."

"우리도 그중의 하나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갈 줄은 몰랐어요."


일주일에 두 번 이스터 섬으로 가는 점보 비행기는 여행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산티아고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남태평양을 향해 날아갔다. 곧바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뿐인 망망대해가 눈 아래 펼쳐졌다. 우리 옆 좌석에는 30대의 젊은 부부가 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제프와 마리아(Geff & Maria) 부부는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으로 10개월째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원월드 항공권으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동지를 만난 듯 무척 반가워했다.


"제프, 이스터 섬은 무얼 보러 가지요?"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수수께끼의 모아이를 보러 갑니다."

"아하, 그렇군요. 저희들도 실은 그 수수께끼의 모아이 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갑니다."

"오래전에 폰 데니켄의 '별들로의 귀환'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서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모아이 상을 꼭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정말로 모아이상을 외계인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허지만 그 책을 읽은 뒤로 모아이 거석상을 꼭 보고 싶다는 엄청난 호기심이 났어요."


네덜란드의 항해자 야코브 로헤벤은 1722년 4월 5일, 부활절 날 이 섬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여 '이스터 섬'이란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이 섬의 원주민들은 이스터 섬을 여전히 '라파누이(Rapa Nui)'라고 부르고 있다. 원주민 말로 ‘큰 땅’이란 뜻이다. 원주민들은 이 섬을‘테 피토 오 테헤누아(Te pito o tehenua, 세계의 배꼽)'이라고 생각했다.


이스터 섬이 처음 발견된 당시만 해도 사실 그다지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항해자들이 길을 잃고 어쩌다 들렸던 것뿐이었고, 그 뒤로는 노예로 쓸 원주민을 잡아들이기 위해 방문했다. 그러다가 이스터 섬의 호투 마투아 왕조는 백인들에 의해 멸망을 하게 되었고,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2만여 명이나 되었던 인구가 1877년 경에는 겨우 110명으로 줄어들었다. 호투 마투아 왕조가 멸망한 뒤 모아이 거석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났다. 


이 전설을 더욱 화려하게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스위스 출신 작가 에리히 폰 데니켄이다. 그는 1968년 이스터 섬을 방문하여 그곳 원주민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하고, 섬 곳곳에 떠돌아다니는 전설을 채집하여 '별들로의 귀환(Return to the Stars, 1969-후에 Gods From outer Space로 재판됨)'란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상은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데니켄이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모아이 석상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외계인이 만들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고향을 기리기 위한 외계인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외계인들은 이스터 섬에 불시착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무료함을 달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거대 모아이 석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고향 행성에서 온 구명정을 타고 모두들 황급히 떠나가 버린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이스터 섬을 비롯한 근처 섬에는 '새사람'이라 부르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외계인을 뜻하며, 이스터 섬의 석상은 그 재질이 너무 단단하여 원주민들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 또한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스터 섬의 환경상 그렇게 거대한 석상을 옮기고 세울만한 도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아이 석상이 쓰고 있는 붉은색 모자가 바로 외계인의 '우주모(푸카오)'라는 것이다."(에리히 폰 데니켄, '별들로의 귀환' 중에서)


이러한 주장은 세계를 휩쓸었다. 갑자기 이스터 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멀고 먼, 제대로 볼 것이라고는 거대 석상 밖에 없는 이스터 섬이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호화 유람선들은 코스에 꼭 이스터 섬을 넣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외계인이 만든 거대 석상'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정말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외계인이 만들었을까? 아직까지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데니켄이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근거로 세운 가장 큰 이유인 이스터 섬의 돌 재질이 너무나 단단하여 원주민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다. 이스터 섬은 화산섬으로 모아이 석상 역시 화산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화산암도 그 단단하기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모아이 석상의 재질은 간단한 도구만으로 쉽게 조각할 수 있는 암석이다.


지금은 나무도 많지 않은 황폐한 섬이지만 모아이 석상이 만들어진 15~17세기 무렵에만 하더라도 나무가 매우 울창한 지역이었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새사람'이라는 것 역시 제비갈매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며 지배자를 뽑은 행사에서 나온 말로써 높은 벼랑에서 뛰어내려 제비갈매기의 알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사람을 1년간 지배자로 인정하며 그렇게 뽑힌 사람을 '새사람'이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니켄은 날조된 거짓말로 사람을 끌어 모으려 했고, 그러한 노력은 매우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모아이 석상이 외계인의 흔적이라 믿고 있으니 그의 '세계적 낚시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겠다. 어쨌든 나 역시 데니켄의 낚시질에 엮어 이스터 섬으로 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니까.


이스터 섬 마타베리 공항에 착륙한 란칠레 점보기


이스터 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소 조바심이 났다. 남태평양 한 점처럼 떠 있는 작은 섬의 좁은 활주로에 비행기가 제대로 착륙을 할 수 있을까? 항로를 이탈하여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손에 땀을 쥐고 망망한 남태평양에 한 점으로 보이던 이스터 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흥분이 되었다. 마침내 점보 비행기는 굉음을 울리며 짧은 활주로에 무사히 안착을 했다. 


“휴우~” 승객들이 모두 길게 안도의 숨을 토해내며 무사히 안착을 해준 기장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드디어 우리들이 탄 비행기는 머나먼 바다 위 하늘 길을 날아 무사히 이스터 섬에 착륙을 했다. 우리는 수수께끼의 모아이와 조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된 마음으로 비행기의 트랩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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