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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Sep 23. 2019

아쿠 아쿠!
수수께끼 모아이의 영혼 속으로

칠레-이스터 섬

수수께끼의 이스터 섬에 표류한 두 사람

                                                                                  

아쿠! 아쿠! 

어쨌든... 우리는 망망한 태평양에 티끌만큼 작은 수수께끼의 이스터 섬에 상륙을 했다. 칠레 해안으로부터 약 3,700km나 떨어져 있고,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절해고도!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16,000km나 떨어져 있는 이스터 섬에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의기양양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호기심 때문인지 아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쿠 아쿠! 수수께끼의 모아이의 알 수 없는 힘이 아내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일까? 컴컴한 밤에 공항에 도착하여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상한 새의 눈이었다. 공항 대합실로 들어가는 벽에 그려진 신비한 새의 눈이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스터 섬 마타베리 공항에 그려진 이상한 새의 눈


"흠, 저 새의 눈을 좀 봐요. 당신을 환영이라도 하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 같지 않소?" 

"호호, 그렇군요. 가면무도회에서 쓸법한 그런 모습이네요."


수수께끼에 싸인 모아이 석상을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북극에서 가까운 노르웨이 오슬로의 콘티키 박물관에서였다. 콘티키 박물관에는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이에르달이 남태평양을 탐험할 때 사용했던 발사나무로 만든 콘티키호의 모형을 원형 그대로 만들어 놓고, 모아이 석상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콘티키 박물관에서 헤이에르달이 타고 갔다는 콘티키 호와 모아이 석상을 바라보며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등 갖가지 설이 난무하는 수수께끼의 모아이 석상에 대하여 호기심이 크게 발동했다. 그때 아내와 나는 수수께끼의 비밀을 간직한 모아이 석상이 서 있는 이스터 섬까지 가보기로 결정을 했다. 어쩐지 그 섬에 가면 인간의 마음을 치유라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영혼의 힘이 있을 것만 같았다. 


헤이에르달은 남미에서 자생하는 발사나무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콘티키(Kon-Tiki, 태양신이라는 뜻)호를 타고 102일 동안 8,000km를 항해한 끝에 이스터 섬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타히티에서 동쪽으로 800km나 떨어진 어느 산호초 섬에 도착했다. 해류를 이용하여 낚시로 생선을 잡아먹고 내리는 비를 저장하여 식수를 마시면서 정처 없이 태평양을 저어나간 콘티키호는 항해라기보다는 표류에 가까웠다. 


표류 항해 8년 후인 1955년부터 이듬해까지 헤이에르달은 트롤선을 타고 고고학자 세 명과 이스터 섬으로 들어가서 이스터 섬의 역사와 모아이 석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했다. 그리고 <아쿠 아쿠>(Aku Aku-The  Secret of Easter Island)란 책을 발간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기서 '아쿠 아쿠'란 라파누이 어로 영력(靈力:신령스러운 힘)을 뜻한다. 헤이에르달은 섬에 접근해 배에서 육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살며시 육지로 다가갔다........ 섬의 저 멀리 안쪽에는 사화산의 슬로프를 따라 예의 그 석상(모아이)이 산재해 있었다........ 물가에는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친 화석과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마치 우주선을 타고 일찍이 지구상의 생물과는 다른 생물이 살고 있던 어딘가 사멸한 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비록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돌아 돌아 이스터 섬에 상륙을 했지만 어쩌면 갈대배를 타고 태평양을 표류했던 헤이에르달보다 더 힘든 항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단 둘만의 여행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꿈에 그리던 이스터 섬에 표류하듯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이스터 섬에 발을 내딛자 헤이에르달이 섬에 섬에 상륙하며 느꼈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우주선을 타고 낯선 혹성에 도착한 착각에 빠졌다. 


아무튼....... 이스터 섬의 땅을 밟자 우리들의 영혼에 맑은 기(氣)를 불어넣어주는 그 무엇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공항 대합실로 나가니 많은 현지인들이 환영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손님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이름을 적은 피켓은 없었다. 숙소나 여행사에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왔기 때문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마중을 나온 사람들을 따라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이스터 섬에 도착한 여행자들


어두운 밤, 텅 빈 공항터미널에서 아내와 나 둘만 떨렁 남았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원주민 여인이 ‘하루 밤에 10달러, 아침 포함’이라는 피켓을 들고 히죽 웃으며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 팻말에 적힌 가격보다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우리를 마법처럼 끌어당겼다. 아쿠 아쿠, 우리는 그녀를 따라가기로 하고 그녀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우리의 의중을 알아차린 그녀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부겐빌레아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들고 뛰어왔다.


그녀는 아내와 나의 목에 부겐빌레아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마냥 싱글벙글 웃었다. 부겐빌레아 향기가 목을 타고 가슴으로 물씬 스며들었다. 아내와 나는 부겐빌레아 꽃을 목에 걸고 서로 마주 보며 어린아이들처럼 웃었다. 여독에 지친 피로가 부겐빌레아 향기 속에 녹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공항을 나왔다. 서로가 손짓 발짓으로 겨우 알아낸 그녀의 이름은 마르타였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그녀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피장파장이었다. 그래서 우린 보디랭귀지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허지만 마르타가 부겐빌레아 꽃을 목에 걸어주며 해맑게 웃는 미소는 우리들을 오래도록 행복하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아쿠 아쿠! 모아이의 영혼 속으로!


마타베리 공항에서 마르타네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20여분을 걸어가자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오두막 한 채가 바로 바다가 인접해있는 해변에 나타났다. 정말이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그대로였다. 그녀의 집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파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도 이스터 섬, 그리고 항가로아 마을 한 구석 바닷가의 외딴집이 마르타네  집이었다.


▲마르타네 오두막 집


마르타의 집에 들어서니 덩치가 큰 누렁개 한 마리가 환영이라도 하듯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곧이어 마르타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방에서 나오더니 "올라!" 하고 인사를 하며 엄마의 치마폭을 휘어잡은 채 부끄러운 듯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마르타의 남편인 듯한 남자가 밤송이처럼 털이 부스스한 머리에 검은 구레나룻을 기른 모습으로 말없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마치 외계에서 온 이방인처럼 퍽 이국적으로 보였다. 


▲마르타와 그녀의 남편 로져와 함께(좌), 꼬리를 치ㅕㅁ 다가오는 누렁 개


그녀의 오두막 집은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처마 밑에 놓인 탁자 하나, 그리고 탁자 앞에 낡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부엌 옆에 달린 작은 방이었다.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끓여왔다. 그녀의 환한 미소가 커피 향을 타고 우리들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왠지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가깝게만 느껴졌다. 전생부터 서로 인연이 있었을까?


“말은 통하지 않는데 왜 이리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지요?”

“모아이의 영혼이 마르타의 따뜻한 가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오는 것은 아닐까?”


행복은 우리들에게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마타베리 공항에서 마르타를 본 찰나의 순간에 행복은 우리들에게 성큼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다가 온 이 행복을 영원의 행복으로 잡아야 한다. 이 순간의 행복이 우리들의 아픈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 가슴도 뜨거워졌다. 철썩~처얼썩~ 바닷가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우리는 소꿉장난 같은 방에 짐을 풀고 긴 여정의 피로도 잊은 채 파도소리를 따라 해변으로 나갔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거대한 파도가 포효하며 부서졌다.


마르타의 집 바로 앞이 해변이었다. 몇 걸음도 채 걷기 전에 우린 거대한 파도 앞에 섰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파도는 마르타네 집보다 더 높이 우리들을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그리곤 암벽에 부딪쳐 포효하며 흰 포말로 사라져 갔다. 


마침 보름이 다가오는지라 밤하늘엔 타원형의 달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 아래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바다를 등지고 수수께끼처럼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모아이의 고향은 어디일까? 정말 데니켄이 주장한 것처럼 모아이는 자신의 고향인 외계의 별을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모아이 석상이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킬 듯 신비하게 보였다. 그렇다! 우린 기적을 바라고 이 섬까지 그 먼 길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고자 나선 여행길이 정말 기적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지구 둘레보다 더 머나먼 길을 돌아 '부활의 섬'에 당도한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의 부활, 육체의 부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이요, 부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 외로이 서 있는 모아이 석상


도대체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까마득하게 잊혀 가는 세상의 시간들. 거기엔 오직 달빛과, 파도와 모아이, 그리고 우리 두 사람만이 작은 깃털처럼 모아이 석상에 기대고 서 있었다. 희로애락이 없는 곳, 나를 잊어버린 그런 시간들. 우린 마치 흰 포말을 이루며 달빛에 부서지는 거품 같은 존재였다. 아쿠 아쿠! 우리는 정말 모아이의 영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르타네 가족의 얼굴에는 항상 행복한 미소가 철철 넘쳐흘렀다. 그녀의 딸은 미히노아라 했고, 남편은 로져라고 했다. 로져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오는 어부라고 했다.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마르타네 가족처럼 이렇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소득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잡히는 우리 같은 민박 손님과 남편이 바다에서 낚시로 잡아온 고기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인간의 영혼을 편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마치 행복이라는 마법의 그물에 걸려 있는 듯했다. 


“여보, 이 머나먼 이스터 섬까지 우리들을 불러들인 것은 모아이가 아닌, 바로 저 마르타네 가족이 아닐까요?”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돼요. 저들의 행복한 미소를 우리들의 배낭에 듬뿍 담아 갑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르르 쾅쾅! 쏴아! 마르타네 집에서 바라보이는 것은 오직 산처럼 밀려왔다가 흰 거품을 물고 사라지는 거대한 파도뿐이다. 손에 잡힐 듯 별들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밤하늘엔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물며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인 모아이, 밀어를 속삭이는 파도, 그리고 외딴 오두막집… 이 모든 것들이 어느 동화 속 나라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토르 헤이에르달 등 많은 학자나 탐험가들이 이 섬에 찾아와 그 수수께끼의 모아이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쿠 아쿠! 우리는 모아이의 영혼 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쿠 아쿠!

암벽에 부서지는 거대한 파도

달빛에 반짝이는 물 빛,

남태평양 절해고도 수수께끼에 사인 이스터 섬 

넓고 넓은 바닷가 외딴 오두막집


바다를 등지고 하늘의 별을 응시하고 있는 모아이여!

그대 어디 별에서 왔는가

아쿠 아쿠!

그대 영혼의 힘이 

내 가슴에 느껴지네!     


아쿠! 아쿠! 아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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