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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Sep 25. 2019

어쩐지 제주도를 닮은 이스터 섬

칠레-이스터 섬

이스터 섬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항가피코 선착장에는 고기잡이배가 옹기종기 묶여 있었다. 낯설지가 않는 풍경이다. 아내와 나는 마르타 집에 머무는 동안 이곳 작은 선착장을 자주 산책을 하였다. 바다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 작은 섬에도 어부가 있고, 고기잡이배가 있다. 때가 되면 어부들은 작은 통통배를 몰고 고기를 잡으러 망망대해로 미끄러져 나갔다. 모아이의 신앙을 굳게 믿으며, 어떤 파고에도 견뎌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부들은 스스럼없이 바다로 나간다. 


제주도를 닮은 이스터 섬 항고피코 선착장. 모아이 석상은 돌하루방 같은 느낌든다.


“여긴, 어쩐지 제주도 같은 느낌이 들어요. 파도소리, 까만 바위 색깔, 돌하르방과 유사한 모아이 석상…… 이런 모든 것들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고 익숙하게만 느껴지네요.”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 김녕 바닷가 백년사 요사채에서 묶었던, 꼭 그 집 온 느낌이 든다니까.”


이스터 섬은 마치 제주도에 온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문득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던 때가 상기되었다.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신혼여행만큼은 제주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때가 내 생애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였다.


우리는 김녕 바닷가 백년사란 절에서 일주일 동안을 먹고 자고하며 신혼의 단꿈을 보냈다. 우리들이 묶었던 요사채의 방은 이스터 섬의 마르타네 방보다 더 작은 방이었다. 바다가 지척에 있어 파도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도 오늘처럼 달빛이 밝은 그런 밤이었다. 


달밤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닷가를 산책하다 보면 저절로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낮에는 버스를 타고 섬을 여행하고 밤에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닷가를 산책하곤 했다. 그러다가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지곤 했었다. 


마르타네 집이 그랬다! 한국에서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에서 우리는 오래전 신혼의 낭만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달빛이 흐르는 바다,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파도 소리, 사랑하는 마음… 모든 것이 똑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행복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아내를 품에 끌어안고 속삭였다.


"여보, 우린 이스터 섬까지 허니문을 온 거야. 그러니 오늘 밤부터 우리들의 인생은 다시 새 출발하는 거야."

"그때 백년사의 바닷가에서처럼?"

"그래, 바로 그때처럼!"


어부인 로져와 마르타


우린 마르타네 집에 머무는 동안 제주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낮에는 걸어서 섬을 여행하고, 밤에는 마르타네 집 주변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태평양의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가곤 했다. 여긴 낯설지가 않아. 꼭 제주도의 김녕 앞바다가 같다니까.


"이오라나!"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마르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라파누이들의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파누이 언어로 '이오라나(iorana)'는 우리나라의 '안녕', 영어의 'Hello'에 해당하는 인사말이다. 이스터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라파누이어와 스페인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아침 8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부활의 섬'에서 맞이한 첫 아침. 해가 바다 앞에서 떠오를 줄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웬걸 엉뚱하게도 해는 마을 뒤쪽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거 참 이상한 데요? 해가 거꾸로 떠오르는 것 같아요?"

"글쎄? 나도 방향감각을 통 잡을 수가 없네?"


방향감각을 잃고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을 보고 마르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방향감각의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요리저리 아무리 살펴보아도 마르타 집 앞이 동쪽 같은데 서쪽이란다. 어쩐지 어젯밤에 달이 떠 있는 방향도, 별자리도 낯설게 생각이 들더니, 남태평양의 한 점처럼 떠 있는 섬에서 우린 방향감각을 잃고 잃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타는 아침식사라고 하며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을 하얀 탁자 위에 놓았다. 그녀는 영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콘사이스를 들고 나왔다. 손님들과 의사소통을 위해서 그녀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영어단어 하나를 써주면 그녀는 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서 해석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몸과 손으로 하는 의사소통을 하는 데 더 빨랐다. 타히티에서 남편 로져를 만나 이곳으로 왔다는 그녀는 순수한 폴리네시안 혈통의 여인이었다. 이스터 섬에서 타히티까지는 4,000km가 넘게 떨어져 먼 곳이다. 


커피 향이 진하게 코를 찔렀다. 빵을 한 조각 찢어서 커피에 적셔 한 입 물고 있는데 로져가 그 밤송이머리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방에서 나오면서 "이오라나"하고 인사를 했다. 곧이어 마르타의 딸 미히노아가 아빠의 뒤를 따라 나오며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이스터 섬의 아침은 이렇게 라파누이어, 스페인어, 한국어 3개국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마르타와 마르타의 딸 미히노아의 해맑은 미소


밀이 한 톨도 나지 않는 이 섬에 빵 한 조각은 귀한 존재였다. 이 빵은 우리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귀한 빵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빵을 뜨거운 커피에 적셔 조금씩 씹어 먹었다. 커피 향과 빵맛이 혀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빵맛이 그만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여전히 수화와 몸짓으로 계속되었다. 혀를 내밀기도 하고, 고개를 좌우로, 전후로 흔들기도 하고…….  그것은 마치 온몸과 영혼으로 나누는 대화 같았다. 마르타네 집 앞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었고, 화단에는 알 수 없는 남국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넓은 안마당에다가 캠프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간간히 배낭족들이 캠프를 치기도 하지만 더 많이 알려서 바닷가에 편한 캠핑장소를 만들겠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꿈이 화단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아이 석상과 새들이 잔뜩 그려진 이상한 지도


론니 플래닛 이스터 섬 안내 편을 들고 로져에게 어디부터 이스터 섬을 돌아보는 것이 좋으냐고 묻자 로져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나온 로져의 손에는 커다란 지도가 한 장 들려 있었다. 로져는 그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 놓더니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짚으며 이스터 섬의 여행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로져가 준 이스터 섬 지도


지도에는 수많은 모아이상과 이상한 새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섬은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어찌 보면 쪽배 모양 같기도 하고, 부메랑 같기도 하고, 새의 모양 같기도 했다. 로져는 맨 처음에 오롱고(Orongo)라고 표시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론리 플레닛 안내서를 보니 라노 카오 사화산이 있는 곳으로 라파누이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라고 했다. 로져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아후비나푸-라노라라쿠-통가리키-아후 테 피토 쿠라-아나케나-아후아키비-타하이-테라바카-항가로아 등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하면 이스터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명이 모두가 수수께끼 같은 낯선 이름이었다. 


우리는 로져의 손가락을 따라 벌써 섬을 한 바퀴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로져가 준 신비한 지도를 들고 섬 탐사에 나섰다. 로져가 가르쳐 준대로 오늘은 일단 걸어서 라노카오와 오롱고 곶을 먼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지프차를 한 대 빌려서 섬을 일주하기로 했다. 섬의 총면적은 우리나라 안면도보다 조금 크지만 짧은 시간에 걸어서 다니기엔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로져가 준 지도는 분화구가 3개나 있고, 붉은 바위와 검은 바위 투성이 속에 군데군데 모아이 석상들이 서 있었다. 나무라고는 거의 없는 볼품없는 섬이었다. 이스터 섬에는 슈퍼마켓도 오직 이 항가로아 마을에만 있기 때문에 간식과 물은 이곳에서 미리 준비해서 가야만 한다. 우리는 작은 항라로아 마을로 가서 구멍가게를 찾아 물과 빵 등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들고 우리는 롱고롱고의 비밀이 숨겨진 라노카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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