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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Sep 27. 2019

성산 일출봉을 닮은
이스터 섬의 오롱고 곶

칠레-이스터 섬, 오롱고 곶

이스터 섬에서 가장 성스런 장소, 오롱고 곶


이스터 섬은 길이 24km, 면적 163㎢에 달하는 우리나라 안면도보다 조금 더 큰 섬으로 작은 바위섬이다. 그러나 섬 속에는 잃어버린 문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꿈꾸어 왔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잃어버린 문명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고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고고학자도, 인류학자도 아니다. 그저 아내와 함께 세계의 기(氣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다. 허지만 잃어버린 문명의 발자국을 따라갈 때마다 과거의 문명과 현대의 문명 사이에서 어떤 시대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항가로아 마을에서 오롱고 곶까지는 7km. 길은 마치 제주도 오름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이곳 오롱고 곶도 화산 분출로 생긴 오름이니까 산굼부리 오름이나 성산일출봉 오름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다가 마지막 정상 부근에서는 상당히 가팔랐다. 마치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것 같다고 할까? 이스터 섬에서 오직 이곳에만 숲이 우거져 있다. 오름에는 남국 특유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침 일직이라 그런지 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부부 둘 뿐이었다. 


성산 일출봉을 닮은 오롱고 곶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오롱고 곶으로 가는 길



"꼭 제주도의 오름을 오르는 것 같아요."

"글쎄 그렇다니까. 우도봉을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정상 부근에 올라서니 멀리 항가로아 마을이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길도 제대로 없는 산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사방은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왔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 그 모습은 바로 제주도에서 보아왔던 오름 언덕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드디어 오롱고 곶의 정산인 라노카오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마치 성산 일출봉처럼 생긴 거대한 분화구가 원형으로 깊게 파여 있다. 성산일출봉과 다른 것은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물은 이스터 섬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는 장소이기도 하고 주민들의 소중한 식수원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화산이지만 300만 년 전 해저 화산 폭발로 생긴 이스터 섬은 세 개의 거대한 분화구(라노카오, 라노아로이, 포이케)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기생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롱고 정상에는 성산일출봉 같은 분화구가 있고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 


분화구 절벽에는 이끼처럼 파란 풀들이 돋아나 있고 분화구 안은 마치 달 표면이나 화성의 표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물웅덩이가 멋진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분화구는 수평선과 어울려 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작은 섬에 호수를 이루고 있는 분화구가 있다니 신비하기만 했다. 이곳은 이스터 섬 라파누이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성소다.


우리는 분화구 절벽 가장자리에서 검은 화석을 주어 돌탑을 쌓기도 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분화구의 가장자리를 따라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오롱고 곶에 도착하니 바위에 오롱고(Orongo)라고 쓰인 하얀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롱고는 이 섬의 라파누이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 성역이다. 



오롱고에는 53개의 석실과 500개가 넘는 바위그림이 있다. 바위에 새겨진 부조는 롱고롱고 문명의 흔적으로 아직도 이 글을 해석하지 못하고 수수께끼에 묻혀 있다고 한다. 세계의 학자들이 해독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오롱고는 새알 쟁탈전 의식이 거행된 곳이다. 바다로 떨어지는 가파른 벼랑과 거대한 라노 카오 분화구 사이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원래 한 점의 아후를 닮은 테라스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50여 개가 넘는 타원형의 돌로 지은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오롱고 곶의 타원형 석실


군대 벙커를 연상케 하는 석실


축대로 쌓아 놓은 석실은 마치 비무장지대의 벙커를 연상케 한다. 돌집의 입구는 간신히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작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섬에서는 문을 크게 낼 수 없었으리라. 석실 주변에 흩어진 바위에는 새의 모양이나 물고기 모양을 한 부조,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새겨져 있다. 도대체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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