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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Oct 06. 2019

한 마리 새가 되고 날고 싶었던
이스터 섬사람들

칠레 이스터 섬 - 무시무시한 조인 축제 이야기

이스터 섬의 무시무시한 조인(鳥人) 축제


라파누이들은 이스터 섬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망망대해로 이들에게는 이스터 섬이 온 세상과 마찬가지였으리라. 라파 누이(이스터 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스터 섬을 '떼 삐또 오 떼 에누아(Te Pito O Te Henua)'라고 부르며 이스터 섬을 세계의 배꼽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라파누이 언어로 'Pito'는 배꼽, 혹은 자궁을 의미하며, 'Henua'는 지구, 우주를 의미한다. 또 라파누이들은 이스터 섬을 '마따 끼 떼 라니(Mata Ki Te Rangi)'라고 부르며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불렀다. 


나는 라파누이들이 세계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라노카오 섬 정상에 자궁처럼 벌어진 바위틈에 앉아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때마침 바람도 자고 옴팍한 바위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드니 정말 세상의 중심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사라진 문명의 뒤안길에서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었던 라파누이들의 환상을 보고  있었다. 


조인 축제가 열렸던 오롱고 곶. 상어 떼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뛰어들어 가장 먼 떼 삐또 오 떼 아누아 섬까지 헤엄쳐 나가 마타 누라 알을 가져오는 자가 조인이 되었다.


오롱고 절벽 앞에는 세 개의 작은 바위섬이 조각배처럼 둥둥 떠 있다. 가장 큰 섬이 모투 누이(Motu Nui-큰 섬)고, 그 옆에 모투 이티(Motu Iti-작은 섬), 모투 카오카오(Motu Kao Kao-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섬) 등 세 개의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창조의 신 마케마케(Makemake)가 바다새들을 이끌고 피신한 곳이 이 세 개의 섬이었다고 한다. 마케마케는 라파누이 신화에 등장하는 우주 창조의 신이다. 마케마케는 다산의 신인 동시에 탕가타 마누 신의 우두머리다. 탕가타 마누(Tnagata Manu)는 '새(Manu=bird) 사람(Tangata=human beings)'을 뜻한다. 


이스터 섬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새사람(Tangata Manu=Birdman)'을 숭배하는 종교를 믿었다. 새사람은 지상에서 세상을 창조한 마카마케 신을 대변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는 달리 작은 섬에 갇혀 섬의 안팎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섬사람들에게는 새사람은 매우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 오롱고 마을은 새사람 숭배의 중심지였다. 바위에는 새들이 그려진 무수한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오롱고 곶에는 바위에 무수히 새사람이 그려진 암각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터 섬의 최대 종교 행사도 '탕가타 마누'라고 불리는 조인(鳥人) 즉 '새사람' 축제다. 새사람 축제는 해마다 7월에 이곳 오롱고에서 열렸다. 세 섬 중에서 가장 큰 모투 누이 섬에는 철새인 '마누 타라(Manu Tara-검은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하여 날아온다. 조인 축제는 이때를 맞추어 열렸다. 전사들은 각각 자신의 부하를 한 명씩 지명하여 상어 떼가 득실거리는 바닷속을 헤엄쳐 모투 누이 섬에서 마누 타라의 알을 갖고 오는 경주를 벌렸다.


전사들은 의식용 복장을 하고 '아오의 길'을 따라 석실로 이루어진 오롱고 마을에 당도하여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몸을 던져 헤엄쳐 갔다. 상어 떼에 물려 죽는 붉은 피를 흘리며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섬에서 검은 제비갈매기의 첫 번째 알을 찾아 치열한 경쟁을 벌리는 동안, 오롱고 마을에서는 신들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식이 치러졌다.


새사람 축제가 열렸던 오롱고 곶


마누 타라의 알을 가장 먼저 발견한 호푸 마누(Hopu Manu-수영자)는 알을 머리 위에 묶은 바구니에 넣고 오롱고까지 헤엄쳐서 돌아왔다. 그러면 그의 상관인 전사는 머리를 깎고 신관이 백단 나무 조각과 적새의 나무껍질 천을 팔에 묶어 주었다. 그것이 조인이 되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조인은 일 년 동안 종교적, 정치적, 실권을 잡고 섬을 통치했다. 조인으로 선발된 전사는 신처럼 춤을 추면서 탕가타의 마타베리 동굴로 내려와 인간제물인 사람 고기를 먹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신적인 존재가 된 조인은 라노 라라크 화산 밑자락에 있는 조인 거주지 통가리카나 다른 아후에 은거하며 아주 엄격한 금기사항들을 지켜야 했다. 목욕도 할 수 없으며, 성적인 접촉도 가질 수 없었다. 특별한 하인이 특별한 전용 화로에서 끓인 음식만 먹어야 했다. 머리카락이나 손톱도 자를 수도 없었다. 모투 누이 섬에서 가져온 신성한 알은 내용물이 제거되고 그 안에 타파(tapa)라는 것을 채워 조인의 집에 걸어두었다. 


조인은 왕과 마찬가지로 현신 왕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한 번 조인이 된 사람은 죽은 후에도 일반인과 구별되는 전용 아후(Ahu-제단)에 납골되었다. 조인 의례가 행해지고 수주일 후에야 비로써 그에게 마누 타라의 알이나 고기를 잡는 것이 허락되었다. 


1년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그 신성한 알은 힘을 잃게 되고, 힘이 사라진 알은 바다에 던지거나 라노 라라쿠의 바위틈에 숨겨두었다. 혹은 나중에 조인이 죽어서 신성한 장소에 묻힐 때 같이 묻어두기도 했다. 조인은 은거지에서 나와 이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는 남은 일생동안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았고, 축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싶었던 사람들


나는 조인 축제가 열렸던 신성한 장소인 오롱고 곶에 누워 사라진 문명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남단 바다가 바라보이는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 마리 새가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한국에서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스터 섬으로 날아와 끝없이 넓은 태평양을 날아가고 있었다. 태평양의 바람이 윙윙 불어오는 모투 누이 섬을 향해 나는 새처럼 두 팔을 벌렸다. 마치 내가 날아가는 조인이 된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싶었던 꿈을 간직했던 나는 한국에서 16,000km 떨어진 이스터 섬으로 날아와  마치 조인(鳥人) 축제에 뽑힌 새사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나라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용포(龍浦)'라고 불리는 우리 마을 뒤에는 오룡산이란 낮은 산이 있다. 오룡산은 다섯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용포(龍浦)라는 마을 이름은 용(龍)의 포구라는 뜻이다. 지금은 그 산 밑에 전라남도 도청이 들어서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틈만 나면 오룡산 정상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새가 되어 바다 건너 멀리멀리 날아가는 꿈을 날려 보내곤 했다. 그 꿈이 지금 현실로 다가왔다. 비록 난치병 아내를 소원을 좇아 이곳 이스터 섬까지 날아온 것이지만 어쨌든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도 갈구했던  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좁은 땅에서 살아야만 했던 라파누이들도 한 마리 새가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리라. 때 마침 저 멀리 바다 수평선에서 한 마리가 새가 날아왔다. 새는 점점 모습이 커지는데 가까이 오니 그것은 새가 아니라 비행기였다. 새가 되고 싶었던 라파누이들도 이제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섬을 떠나 먼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시 오롱고 곶 바위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모투 누이 섬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라파누이들은 바닷속에는 상어들이 득실거리는 위험천만의 바다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투 누이 섬으로 가서 검은 제비갈매기 알을 가져오는 경주에 참가했다. 이 섬을 1년 간 통치하는 조인(鳥人)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런 영광스러운 조인이 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 곁을 지켜주는 아내가 종전처럼 건강해졌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저 모투 누이 섬으로 헤엄을 쳐 나가는 기염을 토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상상을 하며 한 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내가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재촉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오가 가까워진 것이다. 배가 출출했다.


우리는 오롱고 곶에서 숲 속을 따라 내려왔다. 숲길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알 수 없는 남국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에덴동산과 지상낙원이라는 것은 이런 풍경들을 두고 한 말일까? 우리는 마치 에덴동산을 거니는 아담과 이브처럼 유칼립투스 숲 속을 걸어 다녔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배낭 하나와 물병, 빵 한 조각뿐인데 마음은 행복했다. 나무 가지로 지팡이를 만들고 아무도 없는 유칼리 숲을 거니는 기분은 상쾌했다. 이 순간 우리는 숲의 탐험 자이고, 아담과 이브이며, 이 섬을 살아가는 라파 누이었다. 


유칼립투스 나무와 이름모를 꽃이 피어있는 오롱고는 마치 에덴동산을 연상케 했다.


바닷가로 걸어 내려오니 오후의 태양이 더욱 작열하게 비추이고 있었다.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해변을 걷다가 바닷가 어느 원두막에서 한 조각의 빵과 우유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빵을 먹고 나니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기적 같은 빵 한 조각이 위장에 포만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한 톨의 밀도 생산되지 않는 섬에서 한 조각의 빵은 정말 우리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다. 성경에 나오는 '일용한 양식'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까? 서울의 음식점에서 산더미처럼 버려지는 음식물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신성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정말 큰 죄악이다.


아침일찍부터 하루 종일 걷다 보니 다리와 몸도 지쳤다. 우리는 배낭을 베개 삼아 원두막 안에 있는 나무의자에 길게 누웠다.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나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잃어버린 문명도 모두 파도 속에 포말을 그리며 바닷속으로 묻혀 버렸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시간, 나는 마치 포근한 어머니의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바닷가 원두막에서 빵 한조각으로 점심을 떼우고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그렇게 한 참을 잤나 보다. 파도 소리에 잠을 깼다. 이스터 섬의 수평선에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다.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망망대해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처럼 보인다. 여기 이스터 섬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바다가 말을 한다. 거대한 파도가 물밀듯이 밀려와 눈처럼 흰 포말을 만들며 바위에 부서지면서 말을 했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라!"


파도는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살아가라고. 부서져 흰 포말로 사라지더라도 힘껏 부딪치며 살아가라고.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이스터 섬의 파도는 다른 어떤 바다의 파도보다도 웅장하고 거대하다. 감청색 바다가 잔잔하게 수평선을 이루다가 갑자기 집채 같은 성난 파도를 형성하며 흰 거품을 하늘로 솟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태풍이나 불어와야 구경을 할 수 있는 그런 큰 파도였다. 파도 속에서 어떤 알 수 없는 영혼의 힘이 느껴졌다. 모아이의 영혼일까? 아쿠 아쿠! 인간 창조자의 신 마케 마케(Make Make)의 힘일까? 


바람 한점 없는 데도 엄청나게 큰 파도가 부딪쳐왔다.


이스터 섬의 주민들이 섬기는 신은 마케 마케다. 호투 마투아 씨족의 수호신인 마케 마케는 이스터 섬의 신전에서 최고 신이다. 마케 마케는 탕가로 아(Tangaroa-바다의 신)의 태초의 알에서 태어난 신이다. 마케 마케는 새의 머리를 가진 인간 존재로 묘사된다. 이스터 섬에서 마케 마케 신화는 탕가로아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바람, 햇빛. 이런 것들이 바다의 색깔을 다르게 하고 소리를 다르게 하고 모양을 다르게 했다. 항가로아 마을 어귀로 도착하니 여행자들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사색에 젖어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모아이 석상처럼 먼 곳을 바라보는 그들은 인간 모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닷가 오두막에서 한 숨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난 우리는 항가로아 마을을 지나 모아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모아이는 눈을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모아이 석상도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었을까?


삶은 오래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파도가 치더라도

온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라.

긴 세월 하늘을 향해 

서 일는 모아이의 눈처럼

참고 견디며 오래오래 기다려라.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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