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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1. 2019

모아의 석상의 귀는 왜 모두 길까?

귄 귀와 짧은 귀들의 전쟁 때문일까?

"여보, 그런데 모아이들은 모두 부처님의 귀처럼 귀가 길지요?"

"글쎄? 그게… 섬의 구전에 의하면 이 섬에는 귄 귀를 가진 장이족과 짧은 귀를 가진 단이족 두 부족들이 살았다는군."

"그러면 짧은 귀 모아이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요?"

"긴 귀는 상류계층이고, 짧은 귀는 하류 계층이어서 짧은 귀는 파괴되어 없어지고 지배계층인 긴 귀의 모아이만 남아 있다고 해요."

"설마… 그럴 리가?"


이스터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모든 것이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여행자들 모두가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처럼 호기심 덩어리로 빠져 들어가고 만다. 아내가 물으면 낸들 어찌 태고의 수수께끼를 알 재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워낙 가보고 싶었던 곳인지라 인터넷에서 자료 수집은 물론, 이스터 섬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읽었었다.


모아이 석상의 귀는 모두 부처님의 귀처럼 길다


참고로 이스터 섬을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하여 내가 읽었던 책을 이곳에 밝혀둔다. 존 플렌리와 폴반의 '이스터 섬의 수수께끼(The Enigmas of Easter Island)', 카트린과 미셀 오를리아크의 '이스터 섬', 이해선의 '모아이 블루', 재레드 다이마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 그리고 여행 가이드 북은 'Lonely Planet'의 'Chile & Easter Island'편에 의존했다. 


아내와 단 둘이서 이스터 섬을 여행하는지라 아내는 주로 물었고, 나는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더듬어 내거나 가이드북을 펼쳐 들고 대답을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늘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힘은 들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모아의 귀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길다. 모아이의 귀가 모두 긴 것도 하나의 미스터리다. 섬의 구전에 의하면 이스터 섬에는 귄 귀를 가진 '하나우 에에페(Hanau Eepe)'와 짧은 귀를 가진 '하나우 모모코(Hanau Momoko)'란 두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부족 간에는 항상 갈등이 있었다는 것.


토르 헤이에르달은 '귄 귀'의 주민들은 최초 개척자들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손들이며, '짧은 귀'의 주민들은 좀 더 나중에 도착한 폴리네시안 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전설에서 이스터 섬 주민들이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왔다는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


헤이에르달은 긴 귀의 사람들이 귓불을 길게 늘인 다음 구멍을 뚫어 원형 장신구를 매달았다고 보았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첫 상륙을 할 때까지 남아 있던 관습이었다. 그러나 17개월 동안 이스터 섬에 머물며 연구를 했던 루틀리지 여사는 긴 귀가 귀를 늘이는 관습이 아니라 본래 귀가 긴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구전에 의하면 17세기 이 두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짧은 귀가 '포이케 도랑의 전투'에서 긴 귀 한 명만을 남기고 모두 학살했다고 한다. 폴리네시안인 짧은 귀 부족이 긴 귀를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을 물리치고 전쟁에 승리하여 그때부터 섬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설은 긴 귀는 '넓은, 힘센, 뚱뚱한 사람들'로 상류 계급에 속하고, 짧은 귀는 '날씬한 사람들'로 하류 계급에 해당되며, 긴 귀가 연단을 디자인했고, 짧은 귀는 석상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모아이의 귀는 상류계급인 장이족이 이를 디자인했기 때문에 길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토머스 바르텔은 이 섬의 구전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폴리네시아에서 호투 마투아가 섬에 들어온 것은 그와 같은 방향에서 온 사람들이 최초로 섬을 식민지로 삼고 난 것은 한참 후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투 마투아(대부라는 뜻) 왕은 하나우 모모코의 족장이었지만 하나우 에에폐 죄수들도 섬에 데리고 들어왔다고 보았다. 섬에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들은 모모코 지역에서 떨어진 포이케에 정착을 했다. 두 집단의 명칭은 장이족과 단이족으로 다르지만 두 집단의 관계가 정복자와 패배한 피정복자, 혹은 귀족 신분과 미천한 신분일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섬의 구전을 고고학적으로 맞추어 보려는 시도는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뒷받침할만한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구전들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극소수의 원주민들로부터 이삭 줍듯 조금씩 모아 온 것들이다. 이 시기는 전쟁이나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부족의 문화와 역사에 얽힌 집단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스터 섬을 돌아볼수록 점점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섬의 여행자들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를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수수께끼의 진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고고학적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터 섬은 새로운 문화적 영향이 갑자기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고, 끊임없이 원주민들에 의해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몇 백 년 동안 침묵을 하고 있는 모아이 석상이 입을 연다면 그 진실이 밝혀질까? 그러나 모아이 석상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 역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품은 채  자동차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테레바카 언덕으로 슬금슬금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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