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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3. 2019

라파 누이를 닮은 성모 마리아

이스터 섬 홀리 크로스 교회

 


아후 타하이 유적지의 모아이 석상


타하이 유적지에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파도는 커다란 휘장을 몰고 오다가 바위에 부딪쳐 흰 거품을 물고 사라졌다. 억겁을 파도에 씻겨온 바위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섬 전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타하이 유적지에는 광장, 화장터, 닭장, 돌로 둘러싼 밭, 추장이나 고관들의 주거지였던 보트하우스 흔적이 남아있다.


타하이 유적지 바닷가에 부서지는 파도


우리는 항가로아 마을에 있는 교회(Church of the Holy Cross)로 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교회는 항가로아 중심부에 돌로 벽을 쌓았는데, 돌들의 이음매가 마치 거북등처럼 생긴 모자이크 무늬를 띄고 있다. 기둥과 벽에는 역시 알 수 없는 롱고롱고 그림들이 수수께끼처럼 그려져 있었다. 지붕 전면에는 하얀 아치를 세웠고, 작은 종과 흰 십자가가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의자가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도, 성모 마리아도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조각을 한 성모 마리아와 예수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과는 전혀 상상을 초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요 제단에 모셔진 예수 그리스도는 화산 돌로 만든 십자가 위에 조개껍질과 생선뼈로 만든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제단의 나무 촛대는 이스터 섬 창조자의 신 마케 마케(Make-Make)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라파누이 문화와 종교를 혼합한 성전이다. 


"저길 좀 봐요. 성모 마리아 님이 머리에 새가 있어요!"

"흐음~ 그렇군. 팔에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이네!"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군요!"

"그러게... 라파누이를 닮은 성모 마리아 님과 예수님이 어쩐지 더 친근감이 들어요."

"아마 섬사람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토속적인 모양으로 꾸며 놓은 모양이지요?"'

"그런 것 같아. 새를 머리에 이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 님께 우리의 소원을 한번 빌어볼까?"


라파누이를 닮은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는 새 조각이 얹혀 있는가 하면, 팔에 앉고 있는 아기 예수는 라파누이 어린이처럼 천진하게 보였다. 성모 마리아 상에 라파 누의 혼이 깃들어 있는 모습이다. 


라파 누이의 신 마케-마케의 얼굴에 고대 라파 누이 사람을 모방하고, 머리에는 마누타라 새의 모습을 얹은 왕관을 쓰고 있다. 눈동자도 모아이 석상의 눈처럼 흑요석에 물고기 껍질로 만들었는데, 이는 라파누이의 영적인 힘 또는 마나(Mana)를 투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다. 


이 성모상은 타히티에서 가져온 나무통에 1970년 현지 장인이 만든 최초의 기독교 이미지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성모 마리의 이름도 산타 마리아 데 라파 누이(라파 누이의 성모, Our Lady of Rapa Nui)라고 부른다나.... 


이렇게 그리스도와 성모상이 라파누이를 닮은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에로 수사는 1862년 이스터 섬에 최초로 도착한 피푸스 성심회 소속 수사다. 칠레를 떠나 항가로아 마을에 도착한 그는 섬 주민들의 쉴 새 없는 습격에 시달리다 9개월 만에 다시 칠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17개월 후인 1866년, 에로 수사는 다시 이스터 섬으로 돌아와 정착을 했다. 


그는 첫 번째로 상륙하여 선교에 실패하였을 때와는 다른 방법 택했다. 원주민들의 토속신앙을 흡수시켜 토속신앙에 기독교를 접목시킨 것이다. 그러자 아이들이 최초로 개종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젊은 사람, 그리고 여자들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나이 많은 족장들은 개종을 거부했다. 그는 섬의 토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듯 받아들이며 끈질기게 그들을 개종하도록 설득했다. 


현재 이스터 섬 원주민들의 거의 기독교를 믿고 있으며 일요일 예배시간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교회는 초만원을 이룬다. 라파누이의 고유의 문화는 종교적인 행사인 타파티 페스티벌이나, 호투 마투아 왕 축제 등 축제 행사 때나 볼 수 있고 평소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손에 새가 모이ㅣ를 쪼고 있는  성 프란시스 와 새의 날개를 단  미카엘 대천사


성모 마리아의 형상도 지역과 기후, 원주민들에 따라 달리 표현되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과달루뻬 사원에서 보았던 성모는 검은 머리에 갈색을 피부를 가진 '갈색의 성모'로 인디오 계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성당의 성모는 기적을 일으키는 '검은 성모'로 나타내고 있다. 


라파누이들은 비록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지만 그들은 새를 닮은 성모 마리아 님과 예수님께 경배를 하며 저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신들의 고유 신앙인 마케마케 신과 조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텅 빈 교회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묵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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