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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7. 2019

한여름에 즐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칠레 산티아고 크리스마스 축제 현장

오랜만에 푹~ 잤다. 된장찌개에다 맛깔난 김치, 그리고 소주까지 한잔 마시고 나니 온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런데다 내 집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K사장의 마음이 내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었다. 여행 중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늦잠을 실컷 자고 난 다음날 우리는 산티아고 거리로 산책을 나갔다. 오늘따라 날씨가 청명하다. 페인의 식민지였던 도시는 다 마찬가지이지만 산티아고 역시 시내의 도보여행은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16세기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 기마상 우뚝 서 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는 마푸체(Mapuche)족 독립운동 지도자 알론소 라우타로의 동상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정복자의 동상과 이에 맞선 원주민 전사의 동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아르마스 광장에 공존하고 있다.   


마푸체(Mapuche)족 독립운동 지도자 알론소 라우타로의 동상


12월의 산티아고는 덥다. 더구나 12월 중순 아르마스 광장은 크리스마스 축제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흥겹다. 성탄트리가 아르마스 광장 한가운데 설치되고 거리에는 야자수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있다. 마침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는 군악대가 크리스마스 축제의 흥을 돋우려는 듯 흥겨운 연주를 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군악대 주변에 몰려들어 연주를 시청하며 춤을 추거나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모두가 흥에 겨운 모습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흥에 겨워 춤을 춘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 군악대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인형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아이들을 반긴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과 박물관 등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스페인 콜로니얼 시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그 사이사이로 현대식 고층빌딩들이 하늘 높이 솟아와 과거와 현대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여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종소리와 미사 진행에 따라 사람들은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


마침 일요인지라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크리스마스 축제 행렬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며 성탄 분위기 즐긴다. 거리는 매우 활기가 넘쳐흘렀다. 화려한 2층 시티 투어 버스가 보였는데 특별히 오늘은 무료라고 한다.


"여보, 우리 저 시티투어차를 타요. 오늘은 특별히 무료로 운행을 한대요."

"공짜라고요? 그럼 빨리 타요!"


시티투어버스를 공짜로 타는 행운을...^^


아내와 나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2층 오픈카에 올랐다. 오래된 오픈카처럼 보였다. 오픈카는 서서히 움직이며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다운타운 중심가를 돌았다. 거의 걸어가는 느린 속도다. 안내원이 마이크를 잡고 거리 풍경을 설명해주었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코미디언, 예술가, 화가, 공연자들로 심심치 않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서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무료 시티투어버스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와 우리를 내려주었다.


아르마스 주변 구시가지 풍경


"와우, 공짜 시티투어 한번 잘했네요!"

"하하,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부터 우린 운이 무척 좋아요."


눈도 내리지 않는 남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오히려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그새 더 많은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들었다. 어린이들의 손에는 모두 긴 고무풍선을 들고 흔들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어린이를 안고 있는 아바에게 물어보니 크리스마스 축제 행렬이 곧 다가온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기는 산티아고 시민들


고풍스러운 건물 창가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네를 타듯 걸려있었다. 곧 축제의 행렬이 시작된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있자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환호를 했다. 그때 갑자기 관중들 앞에 구레나룻을 기른 중년 남자가 드럼을 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꼭 노숙자처럼 보이는 그는 신나게 드럼을 두들기며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드럼은 냄비 뚜껑, 강통, 양동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호호, 재미있군요!"

"그러게 말이요. 


어느 노숙자의 신나는 깡통 냄비 드럼 연주^^


그는 신나게 냄비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다가 퍼레이드 행렬이 들어오기 전에 마지막 피날레 모션을 하고 관중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가 터졌다. 이윽고 축제행렬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관중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가며 환성을 질렀다. 첫 번째로 천사가 긴 나팔을 불고 있는 거대한 인형이 들어오고 이어서 성가대들이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성가를 부르며 입장했다.


이어서 아기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을 재현한 마구간에 성요셉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를 태운 마차가 등장했다.  축제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허공에는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색종이가 휘날리고 축제의 풍선이 휘날렸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도 관중들도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축제를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뜨거운 한여름에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이색 축제행렬과 축제를 즐기는 관중들은 실로 엄청난 모습이었다. 


한여름에 즐기는 크리스마스 축제-칠레 산티아고


"준비도 엄청하고 연습도 많이 했겠어요. 참으로 대단하군요!"

"중요한 것은 축제행렬에 참가를 한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관중도 하나가 되어 축제를 즐기고 있어요."


크리스마스 축제 행렬을 구경한 후 우리는 산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obal)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산크리스토발은 산티아고 시내를 한눈에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산 같은 곳이다.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데 앞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배낭을 뒤에 메는 건 아주 위험합니다. 산티아고에서는 배낭을 앞으로 메고 다녀야 한답니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배낭을 뒤에 메거나 바지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니는 것은 모두 소매치기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주의를 해야 한단다. 고마운 아주머니였다. 아내와 나는 뒤에 멘 배낭을 앞으로 돌려 멨다. 푸니쿨라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산티아고 시내의 멋진 야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계단의 끝 가장 높은 정상에는 하얀 백색의 마리아 상이 자비스러운 모습으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이 14미터 무게 36톤이나 되는 거대한 마리아 상 앞에서 불빛이 명멸하는 산티아고를 굽어보고 있었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내려다본 산티아고 시내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상


“이 마리아 상이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 상 보다 훨씬 더 정감이 가는군요.”

“입을 굳게 다문 그리스도 상과는 퍽 대조적으로 보여요.”


마리아 상은 자비스러운 모습으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보고 있었다.  1918년 스페인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정부가 칠레에 선물한 백색의 마리아 상은 해발 880미터 정점에 양손을 벌리고 서 있다. 태양이 사라진 뒤 밤에는 밑에서부터 올려 쏘아 올린 조명으로 검은 창공에서 성모님이 마치 내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칠레 교포들 사이에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칠레의 '남산'이라고 불리어진다고 한다. 산크리스토발 언덕 밑에 한인들이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경과 야경이 한국 서울의 남산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듣고 보니 서울 남산에서 바라보는 야경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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