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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6. 2019

오, 된장찌개와 김치 맛!

오랜만에 먹는 김치 맛!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최고의 음식!

저녁 8시 40분. 란 칠레 점보기는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남미에 와서 벌써 세 번째로 찾은 산티아고다. 아리카에서 산티아고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산티아고로, 그리고 이스터 섬에서 다시 산티아고로…

우리가 산티아고로 다시 오는 것은 칠레의 끝 파타고니아로 가기 위해서다. 장어처럼 긴 나라의 중간 허리에 위치한 산티아고는 남미의 끝 파타고니아와 남태평양의 고도 이스터 섬으로 가는 거점도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남미의 여행의 마지막 기착 점인 파타고니아로 가기 위해서 다시 산티아고 땅을 밟고 있었다.  


산티아고의 12월은 덮다. 산티아고의 12월과 1월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짐을 찾고 공합 대합실로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어? 누구지? 낯선 산티아고 땅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다니! 그러나 피켓에 적힌 이름은 분명히 내 이름이었다. 나는 설마 하면서도 피켓을 든 여인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지요?"

"최 선생님 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저는 지구촌여행사의 C부장입니다."


오, 지구촌여행사! 한 달 전 아리카에서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서로 길이 엇갈려 숨바꼭질만 하다가 만나지 못했던 지구촌여행사의 K사장이 보낸 직원이 아닌가! 그녀는 예상한 대로 K사장이 보내서 왔다고 한다. K사장은 산티아고에서 "지구촌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우리는 서로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전화 통화만 하고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갔었다. 그때 전화통화에서 나는 이스터 섬을 갔다가 다시 산티아고로 올 것이라고 하면서 돌아오는 날짜를 말해주었는데 그 날짜를 기억하고 사람을 보내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산티아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장님 이름이 어쩌면 우리 큰 딸하고 이름이 같지요?"

"아, 그래요?"


아내는 반갑고도 놀라는 표정으로 C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큰 애 이름과 같은 C부장을 만나고 나니 칠레에서 친딸을 만난 듯 기뻤다. 저런! 생김새도 우리 큰 딸하고 비슷했다. 우리는 지구촌 여행사의 C부장의 차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갔다. 그녀는 매우 친절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지 않으세요?"

"말하면 잔소리지요. 먹고 싶다 말다요!"

"우선 한국 음식점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먼저 하시지요? 사장님께서는 오늘 교포 골프대회가 있어 끝나시면 바로 오신다고 했어요."

"아, 그래요."


우리는 C부장이 안내하는 어느 한국음식점으로 갔다. 김치!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최고의 한국음식이다. 오랜만에 김치와 매운탕, 그리고 된장찌개에 소주까지 한 잔 마셨다. 오, 된장찌개와 김치 맛! 그리고 거기에 오랜만에 마셔보는 고국의 술 소주 한잔의 맛! 얼마 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인가! 아내도 나도 한국음식에 주려 있었다. 새콤한 김치 맛이 혀에 감겨 침을 잔뜩 흐르게 하며 입맛을 돋우었다. 아내와 나는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서 실컷 먹었다. 역시 아무리 먹어도 밀키지 않는 것이 김치와 된장찌개다.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음식과 K사장의 따뜻한 배려에 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K사장이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야무진 모습이었다. 전화만 한 통화를 했을 뿐인데도 처음 만나는 순간 우린 오랜 된 친구처럼 금방 친숙해졌다.


"반갑습니다. K라고 합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렇게 환대를 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천만에요. 지난번에 정말 미안했습니다. 길이 서로 엇갈렸나 봐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다음 날 아르헨티나로 넘어갔어요."

"아, 그랬었군요. 이스터 섬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이스터 섬의 매력에 흠뻑 젖어 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한 번은 꼭 가볼만한 곳이지요. 그런데 산티아고에 숙소는 정했나요?"

"아니요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요. 지만 번에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로 가려고 합니다."

"아, 그러면 저희 집에서 머무르시지요. 누추하지만 게스트 하우스보다는 나을 겁니다. 냉장고에는 김치도 잔뜩 쟁여 있고 라면도 있습니다."

"저희들이야 영광이지만,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중년을 훌쩍 넘긴 부부가 둘만 배낭여행을 오신 분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고향 소식도 들을 겸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시지요."


우리는 염치 불고하고 K사장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K사장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는 한국의 소식이 그리웠고,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  K사장 집은 아르마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방 두 칸에 아담한 거실. K사장 집에 도착한 우리는 칠레산 포도주를 마시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게 얼마만인가. 허리띠를 풀러 놓고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운 지가…. 우린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K사장은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우리들의 잠자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거실에 잠을 자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부부이기 때문에 이해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부담 없이 자기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역시 여행을 좋아 하기에 여행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린 그의 따뜻한 마음과 환대에 어떤 호텔보다 편안했다.

 

마침 사모님께서 한국에 잠시 귀국하여 마음이 더 편안했다. 우리는 염치 불고하고 3일 동안이나 K사장 집에 머물렀다. 냉장고에 가득 찬 김치와 한국음식을 마음껏 꺼내 먹고, 아침이면 산티아고 거리로 나가 쏘아 다니다가 저녁이면 마치 내 집처럼 돌아와 잠을 잤다. 3일 동안 영양보충을 충분히 하고  잠을 잘 자서 그런지 그동안의 여독도 완전히 풀렸다. 아아, 산티아고는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주는 도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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