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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02. 2020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 속으로

서호주 퍼스  '스완 벨 타워'


퍼스의 중심가는 그리 크지 않아서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잠을 푹 잔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은 후 녹색이 우거진 킹스 파크로 갔다. 킹스 파크 언덕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스완 강을 바라보며 그림 같은 시내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킹스 파크에 들어서면 마법에 걸린 듯 발걸음이 저절로 늦어진다. 서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12,000여 종의 야생화들이 지친 나그네의 발목을 잡으며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월의 퍼스는 너무나 덥다. 우리는 킹스 파크 호수변에 우뚝 서있는 '스완 벨 타워(Swan Bell Tower)'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워 앞으로는 '스완 강'을, 뒤로는 퍼스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벨 타워는 마치 한 마리의 백조처럼 고고하게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악기 '스완 벨 타워'

퍼스의 랜드마크인 '스완 벨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악기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돛 모양을 하고 있는 높이 82.5미터의 유리탑 매우 독특한 조형작품처럼 보였다. 벨의 수는 18개인데 그중 12개는 1988년 호주 2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영국의 성 마틴 성당에서 기증한 것이고, 3개는 런던 시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그리고 나머지 벨은 서호주 정부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주조하여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때마침 스완 벨 타워에서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원래 이 스완 벨은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울린다고 하는 데, 마침 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어서 신혼부부를 위하여 특별히 울려주고 있었다.


벨소리에 이끌려 우리는 10달러(2017년 현재 18 호주 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백조의 탑으로 들어갔다. 결혼식장에는 한 쌍의 남녀가 그들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이 우아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하객은 양가의 가족과 친지 몇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양가의 가족이 조용하고 경건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지는 결혼식은 꼭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결혼식이란 무릇 이렇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가운데 백조의 벨이 울려 퍼지고 모든 시선이 두 신랑 신부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정신없고 시끄러운 우리네 결혼식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스완 벨 타워에서 내려온 신랑 신부는 탑 정문에서 간단하게 기념을 촬영을 하고 꽃다발을 든 채 분수대를 따라 걸어갔다. 그 뒤를 몇 명의 친구들이 따라갔다. 스완 벨 타워에서는 그들이 멀어져 갈 때까지 축하의 벨을 울려주고 있었다. 먼 이국에서 전혀 모르는 생면부지의 결혼식을 바라보는 데 괜히 우리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행복해졌다.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우리들의 금혼식을 저 백조의 벨 탑에서 올리면 어떨까?

"호호, 꿈같은 이야기네요."

"꿈을 자꾸만 꿈만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질 않던가요?"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 스완 벨 타워에소 올리는 결혼식


아내의 말처럼 정말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허지만 꿈을 자꾸만 꾸다 보면 그 꿈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 막연히 꿈에만 그려왔던 세계일주의 꿈이 지금 꿈처럼 이루어지듯이 말이다. 우리가 결혼을 한지도 벌써 30년이 훌떡 지나가 버렸다. 앞으로 20년 후에 우리는 결혼 50주년이 되는 금혼식을 맞이하게 된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2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막연하지만 나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18개의 벨이 하모니를 이루어 내는 벨 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18개의 벨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로프로 당겨 직접 조율하여 울려 퍼진다. 벨이 울릴 땐 백조 타워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된다. 16세기 영국 민요를 변주하여 랜덤 식으로 울리는 음악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종소리는 조율사의 로프에 의해  1-2-3-4-5-6 번순으로 울렸다가 2-1-3-4-5-6으로 변화하며 울린다. 


벨소리도 천차만별이다. 5개의 벨로는 5분 동안에 120가지의 소리를, 6개-720가지(20분 동안), 7개-5040가지(3시간 동안)의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한 번에 18개를 다 울릴 수는 없고 최대 12개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스완 벨 타워에서 나온 우리는 페리를 타고 스완 강을 유람했다. 스완 강은 퍼스의 중심을 지나는 강으로 퍼스 시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강변을 따라 조깅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스완 강을 중심으로 킹스 파크, 보타닉가든과 스완 벨 타워 등 명소가 들어서 있다. 유유히 백조의 강에서 바라보는 퍼스의 스카이라인은 그대로 한 장의 엽서였다. 


쇼핑천국 퍼스 하버 타운 아울렛 센터


오후에는 하버타운 아울렛 센터(Harbour Town Outlet Centre)로 갔다. 갑자기 축포가 울리자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지 첫날 유령의 도시처럼 텅 빈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연말연시를 기해서 바겐세일을 하는 모양이다. 쥐 죽은 듯 조용했던 도시가 갑자기 쇼핑객들로 들끓었다. 하버타운은 갑자기 쇼핑천국으로 변했다. 아내의 눈이 번뜩거렸다. 우리는 아이쇼핑만 실컷 하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울루루가 있는 앨리스 스프링스로 날아간다. 호주의 서쪽 끝 퍼스는 하늘과 땅이 청정하고 도시는 깔끔하고 깨끗하다. 명상하기에 좋은 도시다. 나는 잠들기 전에 세상의 끝 서호주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명상에 들었다. 오늘로 집을 떠나온 지 92일째다. 이제 우리들의 여행도 점점 종착역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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