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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30. 2019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이는 파타고니아 야생화

야생화 천국 파타고니아의 봄

야생화 천국, 파타고니아의 봄


은하계의 별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파타고니아의 야생화! (12월 23일 촬영)

          

파타고니아의 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파타고니아는 봄과 여름의 구분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여름에 해당하는 계절이 우리나라의 봄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되는 12월이 오면 꽃들은 그 짧은 순간에 꽃들은 생명의 싹을 틔우며 일제히 피어난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 마뉴엘의 추천에 따라 고물 렌터카 로시난테를 타고 마젤란 해협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다운 파타고니아의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어있다는 것.


"마뉴엘, 여분의 팬벨트를 하나 더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겠소?"

"튼튼한 팬벨트로 갈아 끼었으니 절대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요. 하하하."

“하하하. 정말이지요?”       


팬벨트가 떨어지는 바람에 우수아이아를 가지 못한 우리는 마뉴엘의 추천에 따라 로시난테를 몰고 마젤란 해협 인근에 있는 푸에르테 블네스로 향했다. 마뉴엘의 말대로 정말 해안을 따라가는 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 있었다. 이곳은 산티아고의 K사장이 극구 추천했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9번 도로를 타고 해변을 따라 내려갔다. 푼타아레나스를 벗어나자 곧 길 양쪽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들은 바람이 많은 대지에 밀착하여 바짝 엎드린 채 피어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사계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까닭에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바람에 버틸 수  있는 자세로 누어 자라며, 식물들도 줄기가 작아지면서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꽃을 피운다. 대지에 밀착하여 바짝 엎드린 채 바람결에 일렁이며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꽃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보였다. "와아~ 원더풀!" 아내는 꽃을 보자 넋을 잃고 원더풀만 연발했다.


은하계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반짝이는 파타고니아의 야생화


속도를 내면 풍경을 잃고 풍경을 얻으면 속도를 잃기 쉽다고 했던가? 시간이 많은 우리에겐 속도보다는 풍경이 중요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 토마스 플러의 말처럼 비록 현명한 사람은 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느릿느릿 걸으며 야생화를 관찰했다. 정말 은하계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반짝거리는 야생화들이 미소를 지으며 길손을 반기고 있었다.


인생의 봄이 짧듯이 파타고니아의 봄도 순간에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꽃들은 그 짧은 촌음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피어난다. 그 짧은 순간에 생명을 잉태하고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간 꽃은 이듬해 다시 피어난다. 그러니 꽃들의 잉태와 시들음은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순간의 피어남과 시들음이 영원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숲과 벌판에는 노란 칼라파테(Calafate), 요염한 푸시아(Fuchsia), 선지처럼 붉게 피어난 파이어 부시(Firebush), 알록달록하게 피어나는 루핀(Lupines) 등…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헤아릴 수 없이 피어 있다. 특히 붉은 푸치시아는 그 색이 너무 곱고 신비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얼음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솟아 나오며 피어오르는 파이어 부시는 파타고니아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너도밤나무에 기생하여 탁구공처럼 노랗게 자라나는 버섯도 있었다. 초기에는 크림색을 띠다가 자라면 나무에 매달린 혹처럼 보여 신비하다. 이 버섯은 원주민의 식료품으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12월에 피어나는 파타고니아의 야생화. 위로부터  레드파이어부시, 푸시아,  칼라파테, 유니플로라, 칼라파테열매



남미대륙의 최남단 푸에르테 블네스


"오, 저기 아름다운 무지개를 좀 봐요!"
"정말! 세상의 끝에 선 우리를 축복이라도 해주듯 아름다운 무지개가 우릴 환영해주고 있네!"


푸에르테 블네스 요새에 도착을 하니 아름다운 무지개가 너도밤나무 위에 황홀하게 걸려 있었다. 블네스 요새는 푼타아레나스에서 남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마젤란 해협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육지로서는 남미의 땅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북유럽의 끝 노르웨이에서 남미대륙의 끝 파타고니아까지, 실로 세상의 끝에서 세상의 끝으로 온 긴 여정이었다. 난치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세상의 끝에 서서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자니 감개가 무량했다. 이 감동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었다. 푼타 아나 해변의 끝에는 낡은 간판이 하나 서 있었다.



Punta Santa Ana  

LAT. 53° 38' 15"S, LONG 70° 54'38"W'

ESTRECHO DE MAGALLANES

DESCUBIERTO POR DON HERNANDO DE MAGALLANES EL 01-X1-1520


푼타 산타 아나

남위 53도 38분 15초, 서경 70도 54분 38초   

1520년 10월 1일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마젤란 해협


  


"이곳이 세상의 끝인가요?"

"남미대륙의 땅 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허지만 세상의 끝은 바로 당신의 마음에 있어요."

  

세상의 끝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내 인생이 다 하는 날, 그  시점이 '세상의 끝'이 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바다로 나갈 수 없는 대지의 끝에는 불의 땅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밀려온 고사목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고사목에 앉아 아내는 자못 감격스러운 듯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아니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인생의 밑바닥에 우리는 앉아 있었다. 세상의 끝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밑바닥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점이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은 오히려 새로운 건축을 지을 수 있는 걸림돌이 없는 단단한 토대이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이는 야생화 밭에 앉아서 희망을 노래했다.


칠레 땅 끝 마젤란 해협 야생화 밭에서


병에 걸리기 전에는 건강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치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세계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우리는 건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우물이 마르기 전에는 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목숨을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여행길에서 우리는 행복을 마음껏 즐겨야 할 권리가 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항해를 미룬 사람은 순간의 행복을 맛볼 권리가 없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여행길이 아닌가? 세상의 끝에 앉아 있으니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이곳에는 별처럼 반짝거리는 야생화가 바람결에 휘날리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굶주림의 항구에서

   

푸에르테 불네스에서 나와 해변을 따라갔다. 갈매기가 길을 인도한 대로 도착한 곳은 푸에르토 델 암브레란 조그마한 항구였다. 항구에는 낡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자동차를 파킹 하자  어디선가 개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개들은 굶주린 듯 로시난테의 주변을 코를 킁킁 거리며 빙빙 돌았다.


"개들이 사납게 생겼군요. 차에서 내리기가 겁이 나는데요?"

"괜찮아, 내가 옆에 있지 않소."


푸에르토 델 암브레는 '굶주림의 항구(Port Famine)'라는 뜻이다. 마젤란 해협에는 스페인이 이 지역을 개척했던 슬픈 역사가 남아있다. 바로 그 역사가 이곳 푸에르토 암브레 항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1580년 마젤란 해협까지 왔던 스페인 장군 '페드로 사르미엔토 데 감보아'는 대양을 제압하려는 전략에서 마젤란 해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펠리페 왕에게 마젤란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요새를 지을 것을 제안했다. 스페인은 당시 자주 출몰하던 영국 해적에게 대항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1584년 3월, 그는 마젤란 해협 북쪽 해안 두 곳에 요새를 짓고 사람을 살게 했다. 그러나 두 곳 다 거친 자연환경과 함께 원주민의 공격이 잦아 사람이 살기 힘들었다.



1586년부터 1588년에 걸쳐 역사상 세 번째로 세계를 일주했던 영국 항해 가이자 해적인 토머스 캐번디시는 마젤란 해협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살았던 두 곳 가운데 하나였던 '킹 돈 펠리페'에서 살아남았던 사람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한 사람을 구조했다. 그는 그곳을 '사람이 굶어 죽은 포구'라란 뜻으로 '포트 패민'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은 칠레 정부가 세워 놓은 표지판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또 그 근처에는 마젤란 해협에서 죽은 영국 선원들의 묘지가 있다.


배고픈 서러움은 배가 고파본 사람만이 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나는 배고픈 날을 많이 보냈다. 나는 배고픈 시절을 극복하고 굶주림의 항구에 서 있었다. 세상의 끝, 굶주림의 항구에 서서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


"갈 때는 제가 운전을 하면 안 될까요?"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나 되었는데요?"

"사실은 면허만 따고 실습을 한 두 번 밖에 하지 않았어요."

"여보, 자동차도 없는 한가로운 길이니 한 번 해보라고 하지요."

"흠… 아직 운전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겠는데……"


동행한 J군이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권유도 있고 하여, 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로시난테의 고삐(핸들)를 J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는 몇 미터도 가지 못하고 자동차를 도랑에 처박아 넣고 말았다.


"아이코, 이런! 그러니까 아무나 로시난테를 운전하는 게 아니라고."


J는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액셀을 밟아 버렸던 것이다. 마젤란 해협의 바다에 세 사람 다 물귀신이 될 뻔했던 대형 사고였다. 다행히 핸들을 바다 반대편으로 돌려 자동차가 바다 쪽으로 굴러가지 않고 육지 쪽의 작은 도랑에 쳐 박혔다. J군에게서 핸들을 뺏어 고물 자동차를 달래며 나는 겨우 도랑에 빠진 로시난테를 도로 위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굶주림의 포구'에서 우리 세 사람 모두 물귀신이 될 뻔했구먼."

"죄송합니다.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제가 암벽 타기를 도와드려 두 분을 인수봉 꼭대기 올려 드릴게요."

“하하하, J에게는 인수봉 암벽 타기가 자동차 운전보다 쉽겠군.”

“정말 그래요. 그러나 두 분을 인수봉에 올려놓을 자신이 있습니다.”

“고맙소. 귀국하면 기대하겠소.”


인수봉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 제발 다시는 운전을 하겠다는 말았으면 좋겠다. 허지만 위험한 모험을 즐기는 J의 용기가 나는 좋았다.  



우린 돌아오는 길에 다시 파타고니아의 야생화에 한 참이나 취해 있다가 늦은 밤에야 마뉴엘의 집으로 돌아왔다. 마뉴엘의 집으로 저녁 늦게 돌아오니 일본인 아가씨들 세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브라질 리오 왔다는 이들은 두 여인은 리오에서 포르투갈어를 공부를 하고 한 여인은 여행을 떠나와 함께 만난 사이라고 한다.


어디를 가나 일본인들은 만난다. 아무리 오지라도 일본인들은 있다. 그중 한  아가씨가 심한 감기에 걸려 있어, 가지고 있는 바이엘 아스피린을 그녀에게 주었더니 감사하다는 ‘오하이오 고사이마쓰’를 몇 번이나  연발한다. 하여간… 일본인들의 매너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다니까. 여행 중 아스피린은  매우 중요하다. 어지간한 병은 아스피린 몇 알이면 다 낳으니 꼭 챙겨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제 길고 긴 칠레의 여정도 다 끝나가고 있다. 내일이면 우린  칠레를 떠나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만큼이나 여정도 길고 다양한 자연경관을 만끽을 한 샘이다. 만년설에 덮인 안데스, 빙하,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지구의 땅 끝 파타고니아의 강한 바람… 고물차 로시난테, 이 모두가 잊지 못할 추억  거리다.


아디오스, 파타고니아!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야인 12월 24일이다. 아침 일직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었다.  아침을 커피 한잔 빵으로 간단하게 먹고 짐을 챙겼다. 12시 40분 발 산티아고 행 비행기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10시 30분. 우리는 마뉴엘 부부와 긴 포옹을 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며칠간 정이 듬뿍 들어버리고 말았던 마뉴엘 가족이다.


"마뉴엘, 다음에 올 때에는 제발 로시난테의 펜 벨트를 잘 점검해  두게나."

"초이, 여부가 있나. 오기만 해라. 그땐 팔팔한 로시난테를 무료로 빌려줄 거다. 하하하."

"하하하. 정말이냐? 고맙다. 아디오스 마이 아미고!"

"아디오스, 미스터 초이!"

       

이별은 언제 슬프다. 파타고니아의 강한 바람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감정을 겨우 추스르고 마뉴엘 가족과  헤어졌다. 정군과 함께 파초코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11시다. 그는 일단 산티아고로 가서 이스터 섬으로 갈 거라고 했다. 12시 40분. 이윽고 ‘란 칠레 080’ 비행기가 바람이 강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나는 다시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을 떠 올리며 눈을 감았다. 아디오스,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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