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웃백 투어-울루루
카타추타 국립공원 트레킹을 마치고 울루루로 가까이 다가가자 거대한 붉은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원주민들이 '지구의 배꼽' 혹은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바위다. 울루루(Uluru)라는 명칭은 원주민 아난구(Anangu) 족 언어로 '그늘이 지는 장소'라는 뜻이다. 아난구 족이 영혼의 성지로 여기고 있는 가장 신성한 성소다.
글렘은 울루루의 일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차를 세웠다. 허지만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려 있어 울루루에 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 일행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까지 떨어져 내렸다. 글렘이 일행들을 달래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여긴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곧 하늘이 갤 지도 모르니까요."
"저기, 무지개가 떴다!" 누군가 외쳤다. 사막 저편에 무지개에 떠올랐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순간 먹구름이 갑자기 걷히더니 황홀한 노을이 붉은 바위에 비추이기 시작했다.
"오우, 원더풀!"
"뷰티풀!"
"어메이징!"
모두가 순간적으로 나타난 울루루의 황홀한 일몰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태양이 점점 사막 속에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붉은 바위 색깔이 카멜레온처럼 여러 가지로 변했다. 울루루는 하루에도 수차례 얼굴색을 바꾼다. 때와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위 색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글렘의 설명에 의하면 일출 때는 오렌지색으로 빛났다가, 정오에는 호박 색깔, 해 질 녘에는 짙은 선홍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지금 보이는 색깔이 짙은 선홍색이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색깔이 변화되며 마법의 성처럼 다가오는 울루루의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울루루의 일몰이나 일출 감상은 뜨고 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변화하는 울루루의 바위색깔을 보는 것이다.
"행운의 무지개가 뜨더니 황홀한 일몰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결코 흔치 않거든요. 여러분은 오늘 큰 행운을 잡았네요."
글렘이 울루루에 비추인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한 듯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붉은 색깔을 만들어 낼까?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오묘한 조화다. 아웃 백의 12월은 지독하게 덥다. 살이 익어버릴 것만 같은 더위 속에서 ‘지구의 배꼽’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카타추타 국립공원에서 더위와 체체파리에 시달리며 8킬로미터나 부시워킹을 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행운의 무지개와 울루루에서 황홀한 일몰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쌓인 피로도 잊은 채 울루루의 장엄한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울루루를 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호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어떤 여행자들은 이동식 간이 테이블을 펼쳐 놓고 와인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일몰을 감상하기도 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고 황홀한 일몰을 바라보다가 울루루에 땅거미가 내려앉자 야영텐트로 돌아왔다. 사막 위에 친 야영텐트는 군 막사와 흡사했다. 우리는 저녁밥을 손수 지어먹었다. 밤이 되자 그토록 덥던 사막은 서늘해졌다.
칠흑 같이 어두운 사막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했다. 하얀 메밀꽃 같은 은하수가 하늘가를 흐르고, 크고 작은 별들이 무수히 어두운 창공에 흩어져 반짝거렸다. 나는 별빛 쏟아지는 사막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세상의 중심,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땅에서 가부좌를 틀고 별빛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이 지구의 배꼽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두운 창공에 별똥별이 길게 선을 그으며 울루루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우주에서 지구의 땅으로 억겁의 세월이 흘러내리는 빛처럼 보였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나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별똥별이 지구별로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빛이 1년 동안 나아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한다는데... 1광년을 거리로 계산을 하면 약 9조 5천억 킬로미터나 된다. 그런데 지구에서 은하계까지는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230만 년 광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글렘의 설명에 의하면 오래전 이 지역은 바다였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은 6억~9억 년 전에 호주 대륙 중앙의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서서히 퇴적층이 형성되며 수억 년 동안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솟아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별빛 쏟아지는 밤에 나는 울루루가 생겨나기 전 수억 년 전의 과거와 은하계를 시공을 초월해서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의 생각의 속도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들고자 텐트로 들어갔다. 그러나 텐트 안에는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무수한 벌레들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잠을 자지 말고 반짝이는 별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듯 벌레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벌레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기가 청정하고 공해가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는 새벽녘에야 꼬박 잡이 들었다. 짧지만 아주 단 잠이었다. 기분이 개운하고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람은 잠을 푹 자고 나면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오감이 차단되어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오감이 차단된 뇌는 기분 좋은 알파파를 발산시키고, 동시에 엔도르핀이 온몸에서 분비된다.
이 알파파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도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랑을 할 때’라고 한다. 사랑을 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알파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깨어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부지런히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여행은 사랑이다. 남녀가 ‘둘만 떠나는 여행’은 저절로 사랑의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뇌 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든 잡다한 번뇌는 포맷이 되어버린 컴퓨터처럼 싹 지워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저절로 사랑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물론 싸워서 갈라져 오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추억, 기쁨, 아픔, 고통, 다툼 등 함께 살아온 삶의 얼룩이야말로 진실로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도달하지 못할 사랑도 그 영혼의 면면에 흐르는 사랑은 아름답다. 이곳 울루루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그토록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남자 주인공 ‘사쿠’가 죽도록 사랑했던 ‘아키’의 영혼을 죽은 후에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통에 찌들어 얼룩이 진 마음의 창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란 커튼으로 갈아 끼우면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크다. 오늘은 12월 31일이다. 아침 일찍 우리는 울루루에 뜨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하여 야영텐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