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땅' 라싸로 가는 길

― 랑무스·허쭤·란저우·칭하이·골무드·라싸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by 찰라


랑무스의 이른 아침, 출발의 숨


영혼의 땅 라싸를 향해 떠나는 랑무스의 아침, 우리는 작디작은 두 순례자였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랑무스의 아침,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우리 둘의 발걸음은 마치 기도의 문장처럼 고요했다. 말없이 걷는 동안, 랑무스의 하늘 아래 먼 길에 대한 두려움이 안갯속에 잦아들었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티베트 고원에 모처럼 케니지의 색소폰 선율이 스피커를 타고 번져 나왔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서양음악이었다. 그 잔잔한 음색은 고원의 바람과 섞여 마치 떠나는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축복처럼 등 뒤에서 은근히 밀어주었다.


마을 고개를 넘어갈 때 안개는 햇빛에 이끌려 서서히 장막을 걷어냈다. 안개에 가렸던 레드마운틴이 붉은 성처럼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과 산과 우리가 잠시 같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여정은 늘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다는 것을.


버스가 랑무스 마을을 벗어나 간쑤성으로 접어들자 하늘과 초원이 맞닿은 들판에는 야크들이 점점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야크의 검은 등들이 물결처럼 흔들렸고, 그 너머로 펼쳐진 하늘은 끝없이 깊어 보였다. 그 풍경 속에서 라싸로 향하는 우리 역시 저 야크 떼처럼 거대한 초원 위에 찍힌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름도, 목적도 벗어놓은 채 그저 고원의 손짓을 따라 흘러가는 작은 순례자였다. 나는 끝없는 초원 위에 한 점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갈수록 내 존재는 먼지처럼 가벼워졌고, 아내의 숨은 더욱 고요해졌으며, 우리는 초원 위의 이슬처럼 어디론가 스며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결국 한 점으로 돌아간다는 이 단순한 진실—그 진실이 우리를 다시 길 위로 이끌었다.

허쭤까지 이어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아마도 세 시간 이내면 닿을 듯했다. 버스 창밖으로 흐르는 고원의 바람은 차갑지만, 그 바람 속에 묘하게 ‘안심’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간쑤성의 땅은 대부분 산과 사막으로 덮여 있다. 거칠고 황량한 불모지. 그러나 바로 그 황막함 위를 지나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꿈과 교역, 종교와 문화가 오갔다.


세상이 실핏줄처럼 연결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는 이미 거대한 길이 있었다. 고대의 캐러밴들이 낙타 등에 비단과 향료를 싣고 천천히 사막의 모래를 가르며 오갔던 길. 그 유명한 실크로드가 바로 이 간쑤를 관통해 중국과 서역을 잇고 있었다.


불교 역시 이 길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왔다. 신장에서 간쑤를 지나 둔황으로 이어지는 석굴군은 그 여정의 자취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모래바람 속에서 수많은 순례자와 승려들이 법을 찾고 길을 찾으며 오갔던 발자국이 지금도 그 바위벽 깊숙이 새겨져 있다. 현장법사도 간쑤의 란저우를 지나 서역으로, 더 먼 인도로 향했다. 그의 걸음은 바람에 사라진 먼지 같지만 그 먼지 위로 수천 년의 신앙이 길을 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이 땅을 지나갔다. 1,400년 전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 17세의 젊은 공주는 장안에서 말을 타고 출발하여 3,000km에 이르는 당번고도(唐蕃古道-당나라에서 토번에 이르는 길)를 따라 한 달간의 긴 여정 끝에 티베트의 왕 송첸감포에게 시집을 갔다고 전해진다. 그때 문성공주도 간쑤의 땅을 지나 머나먼 라싸에 도착했다.


이 길은 단순한 혼인의 길이 아니라 중국과 티베트의 문화와 불교가 이어지는 거대한 인연의 고리였다. 이 모든 역사와 숨결을 품은 간쑤의 땅 위를, 나와 아내가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한 순례자들일지라도, 길은 우리에게 한없이 깊고 넓게 다가왔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모든 걸음이, 지금 이 순간 우리 걸음을 받쳐주고 있구나.”


그 깨달음만으로도 허쭤까지의 세 시간은 순례자의 마음에서 영원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버스가 허쭤(合作)에 들어섰을 때, 거리는 후이족의 흰 모자들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양고기를 굽는 냄새와 자전거 벨 소리가 얽혀 낯선 골목의 공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슬람 기도 소리는 마치 이 땅의 숨결처럼 낮고 잔잔했다. 이곳은 두 신앙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물빛처럼 포개져 흐르는 도시였다. 아침엔 아잔이 울리고, 해가 기울면 티베트 승려들의 염송이 골목을 적신다. 다름은 서로를 가르지 않고, 그저 함께 살아갈 자리를 내어준다.


허쭤 버스터미널에 내린 아내와 나는 잠시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는 샤허에 위치한 라브랑 사원의 금빛을 보고 싶었고, 아내는 갈 길이 바쁘니 라싸로 곧장 가자고 했다. 그 짧은 숨의 갈림길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배워온 진실을 다시 확인했다.


순례는 어디를 보느냐의 길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걷느냐의 길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주저 없이 란조우로 향하는 버스로 올랐다. 후이족의 기도와 티베트의 바람이 뒤엉킨 허쩌의 공기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속삭였다.


“진리는 다투지 않는다. 길은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합해진다.”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먼 고원을 향해 달려갔다.

창밖에는 아득한 황토대지가 길을 열었다. 실크로드의 먼 영혼이 붉은 바람결 속에 살아 있는 듯했다.




칭하이 고원을 달려 골무드로


간쑤성은 가도 가도 황량했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사막은 누군가의 긴 한숨처럼 고요했고, 그 사이사이에 막고굴(莫高窟) 같은 석굴의 그림자들이 마치 잊힌 기도처럼 드문드문 서 있었다. 황허에서 뻗어 나온 강줄기는 누런 황톳빛으로 흐르며 수천 년 동안 이 땅을 적셔온 티베트 고원의 먼 역사를 하나의 색으로 말하고 있었다.


허쩌에서 출발한 버스는 5시간 30분을 달려 란조우 남부버스정류장에 내려주었다. 배낭은 등에 눌러오고, 피로는 슬그머니 무릎을 잡아당겼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랑무스에서부터 함께 온 노르웨이 아가씨와 합류해 택시를 잡았다. 란저우 역까지 19위안. 우리가 14위안을 내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5위안을 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 위에서 나누는 정은 언어보다 빠르고, 국적보다 넓다.


란저우 역은 여행객들로 들끓고 있었다. 기차표를 살 수 있을까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마침 5시 49분, 골무드행 급행열차가 있었다. 일반석은 매진, 남은 것은 침대표뿐. 비쌌지만 주저할 수 없었다. 이 열차를 놓치면 하루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테니까. 151위안짜리 표 두 장을 손에 쥐었을 때, 기묘한 안도감이 가슴을 따뜻하게 스쳤다.


노르웨이 아가씨는 다음 날 일반석 표를 사들고 우리와 작별을 고했다. 짧은 여정의 동행이었지만 그녀는 손을 흔들며 기차역 저녁빛 속으로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여행에서 인연은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서늘한 황토 바람 사이로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푸른 신호등이 깜빡였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길, 라싸로 향하는 긴 고원의 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칭하이의 사막은 붉었다. 황허의 수원이 깃든 고원, 염호의 은빛 물결, 붉은 사막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햇살, 그 풍경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골무드, 라싸로 가는 길

마지막 관문에 도착하다


오후 5시 49분, 란저우를 떠난 기차는 곧 칭하이의 광막한 고원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 고장은 한때 암도라 불렸고, 세기 동안 티베트의 일부였던 땅. 황허의 젖줄이 시작되는 초원지대와 소금기 어린 불모지가 끝없이 이어지며 인간의 발길을 머뭇거리게 하는, 고요하고도 혹독한 고원이다. 차창 밖으로 붉은 흙빛의 산맥이 스치고, 염호의 하얀 호흡이 잠깐씩 번졌다. 햇빛은 사막으로 붉게 내려앉아 마치 세상이 느릿하게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잠시 고대의 카라반이 되어 실크로드를 건너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는 뜨거운 물로 끓인 라면이 유난히 따뜻했다. 이런 먼 길에서 라면 한 그릇도 은혜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중국 열차의 뜨거운 물 보급은 이 고원 여행자들에게 마지막 자비와도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열차의 덜컹거림이 어릴 적 들었던 자장가처럼 귀를 어루만졌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도의 기압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는지 잠결에 숨이 약간씩 가빠졌다. 그러나 그 또한 라싸로 가는 길목의 예고편 같아 이상하게 마음은 안정되었다.


새벽 3시쯤 눈을 떴다. 창밖은 여전히 칠흑 같았고, 고원은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고원의 차가운 숨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왔다.


여명이 틀 무렵,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하늘은 희게 밝아오고, 자줏빛 설산의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광막한 사막과 암갈색의 고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바람도, 새도, 사람도 자취가 없는 땅. 그 희뿌연 침묵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순례란 목적지가 아니라, 이렇게 아무도 없는 풍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아침 7시, 열차의 뜨거운 물로 빵을 적셔 먹으며 다음 여정을 확인했다. 숨만 조금 빨리 쉬어도 가슴이 뛰는 고도. 주변의 산들은 모두 4000미터가 넘었다. 오전 10시 20분. 20시간을 달린 기차는 드디어 골무드 역에 닿았다. 마치 고원의 심장으로 들어온 듯한 순간이었다.



멀고 먼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더 깊은 라싸의 숨을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 20시간을 달려 도착한 골무드는 바람이 거칠고 하늘은 투명했다. 아내는 배낭을 메고 내 손을 잡았다.

“여기까지 왔네요. 정말… 여기까지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목이 메었다. 라싸로 가는 길은 지도 위의 거리만이 아니라 우리 둘이 함께 건너온 세월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아내의 미소와 나의 기도가 함께 있었다.


랑무스를 버스를 타고 험한 티베트 고원을 달려, 란조우에서 기차를 타고 이틀 만에 골무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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