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Dec 18. 2018

4. 덴마크로 가는 길

▶암스테르담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유로라인 버스를 타다

  

이른 새벽 나는 마치 누에고치처럼 꿈틀거리며 호스텔 2층 침대에서 일어났다. 20여 명이 함께 자고 있는 도미토리 룸은 잠을 자는 숨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실내는 어둡다. 나는 여행객들이 깰 새라 마치 뱀이 껍질을 벗듯 담요 속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2층 침대에서 사다리를 타고 살금살금 내려와 1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이마를 가만히 짚어 보았다.


“음음~ 지금 몇 시인가요?”

“쉿, 조용히 조금만 더 자고 있어요. 곧 돌아올 테니.”


아내에게 속삭이며 방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오자 여성 여행자가  한 사람이 복도에 있는 로커에서 짐을 꺼내어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에 차곡차곡 챙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씩 웃었다. 나도 로커에서 짐을 꺼내어 짐을 싸기 시작하자 그녀가 낮은 속삭이듯 목소리로 물었다.


“스키폴 공항?”

“노우. 유로라인 버스터미널로 갑니다.”

“난,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요.”

"오우, 멋진 곳으로 가네요. 저는 코펜하겐을 거쳐 북유럽으로 가요."

“와우, 그곳은 더 멋진 곳인데요.”


얼굴이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서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잠자는 사람들에게는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짐을 먼저 싼 그녀는 눈인사를 하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큰 배낭을 메고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 나갔다. 새벽길을 말없이 떠나는 배낭여행자들은 순례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들어오고 떠나는 여행자 숙소는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나는 조용히 배낭을 꾸려 놓고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라면을 끓일 물을 올려놓고 다시 로커로 올라오니 아내가 눈을 부스스 비비며 나와 있었다. 


“여보, 컨디션이 어떻소?”

“그런대로 견딜 만해요.”

“견딜 만하면 안 되지요? 먼 길을 가려면 팔팔해야지. 우리 라면으로 속을 풀고 기운을 냅시다.”

“염려 마세요. 곧 기운을 차릴 테니.”


라면 봉지를 들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냄비 속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수프와 함께 라면 두 개를 풀어 넣으니 곧 입맛을 당기는 수프 냄새가 퍼지며 라면이 펄펄 끓었다. 먹음직스러웠다. 라면을 퍼서 아내와 둘이서 뜨거운 국물이 든 라면을 먹고 나니 몸이 한결 풀리는 것 같았다. 아내도 게걸스럽게 트림을 하며 기운을 차렸다. 라면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놓고 배낭을 걸머진 채 리셉션으로 걸어 나갔다. 첫날 우리가 들어올 때 근무를 했던 그 남자 직원이 청소를 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벌써 떠나시나요?”

“네, 8시에 출발하는 코펜하겐으로 가는 유로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버스터미널까지는 지하철로 가는 편이 빠릅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을 타려고 합니다. 고마워요. 잘 지내고 갑니다.”

 “해브 어 굿 트립!”


그는 유로라인 버스터미널로 가는 지하철 노선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호스텔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다. 우리는 제법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낑낑거리며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열차에 오르니 이른 아침이라 좌석은 텅텅 비어있었는데 마침 우리 앞좌석에 젊은 긴 머리를 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아가씨, 암스텔 역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되지요?

"네, 여기서 세 정거장을 가서 내리면 됩니다."

그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지하철은 곧 암스텔 역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버스터미널을 찾아 걸어갔다. 유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터미널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으로 "Euro Line"이라고 쓴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o'자와 'i'자는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 글씨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암스테르담 유로라인 버스터미널


유로라인 버스를 타면 유럽에서는 어느 국가든지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가 있다. 버스터미널의 간판과 버스와 유로라인 글씨는 하나의 시였다. 버스는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을 멀리 “데려다 주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나는 배낭을 벽에 내려놓고 매표소에서 240유로를 지불하고 코펜하겐행 티켓 두 장을 샀다. 기차를 타면 360유로를 지불해야 하는데 기차표에 비하여 버스가 훨씬 저렴하다. 버스표를 손에 들고 돌아 서는데 의자에 앉아 있던 청년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헬러 미스터, 배낭을 조심하시오. 늘 당신 곁에 두어야 합니다. 터미널은 언제나 위험한 곳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청년이 무심코 낮게 던진 말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버스터미널은 위험지대이다. 여행 중 방심은 금물! 언제나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내자 청년도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역시 나에게 행운을 주는 도시인 것 같았다. 스키폴 공항의 무지개를 볼 때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었다.


버스는 예상보다 15분 늦게 출발했다. 유로 버스는 서민들과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 버스에는 옷차림이 수수한 서민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코펜하겐까지는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버스는 기차보다는 느리지만 값이 싸고 더 많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상쾌한 아침이다. 잠시 도심을 빠져나온 버스는 펀펀한 들판을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도심을 빠져나가자 곧 끝없는 초원이 이어졌다. 돌지 않는 풍차들이 간간히 벌판에 서 있었다. 봄이 오면 들녘에 90억 개의 꽃이 핀다는 튤립의 나라, 고흐의 영혼이 숨 쉬고 있는 예술의 땅, 안네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곳,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역설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고향…. 네덜란드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사연을 간직한 나라다. 


▲그로닝겐에서 갈아탄 버스


▲역 앞에 끝 없이 서 있는 자전거

10시 15분, 버스는 네덜란드 북부 그로닝겐(Groningen)에 잠시 정차를 했다. 이곳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운전사도 교대한다고 한다. 우리는 안내에 따라 짐을 내려 'BOVO TOURS'라고 쓰인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를 갈아타는 동안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아이들에게 엽서를 부치기 위해 역사 앞에 있는 우체통으로 뛰어갔다. 우체통 옆에는 자전거들이 끝없이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와 우체통! 어쩐지 낯설지가 않고 정겨운 풍경이다. 우체통아, 이 엽서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려무나. 나는 이번 여행 중에 아이들에게 보내는 첫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아이들에게 엽서를 부쳤던 우체통

네덜란드는 기차나 지하철 역사, 버스 정류장, 큰 빌딩 옆에는 예외 없이 자전거의 행렬이 늘어서 있다. 높은 언덕이 별로 없는 땅이기도 하지만 남녀노소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다. 교통 혼잡과 공해도 피하고 건강에도 좋은 자전거 타기 문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킬 수는 없을까?         


앞좌석에는 칠순을 넘어 보이는 두 할머니가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무슨 할 이야기가 저리도 많을까? 허지만 스페인 말이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자들은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두 할머니는 수다를 떨다가 버스가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두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11시 30분, 버스는 독일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정차를 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국경 경비원들의 모습이 자못 삼엄하게 보였다. 독일인들의 눈빛은 차갑다. 능글맞게 보이는 프랑스 인들의 눈빛과는 영 딴판이다. 한 경비원이 버스에 오르더니 짐을 모두 내려서 토치카처럼 생긴 창고에 넣으라고 했다. “이런, 잘못 걸려들었네!” 앞좌석에서 내내 수다를 떨던 스페인의 두 할머니들이 두 손을 겨드랑이에 치켜들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짐을 모두 창고에 넣자 경비원들은 어디선가 송아지처럼 큰 셰퍼드 세 마리를 데리고 왔다. 입에 철망을 낀 셰퍼트 늑대처럼 무섭게 생겼다. 셰퍼드들은 쇠창살로 막아진 우리에 각각 별도로 가두어 놓고 있었는데 경비원들은 한 마리씩 차례로 풀어서 창고로 데리고 갔다. 셰퍼드를 데리고 들어간 그들은 창고 문을 굳게 닫아놓고 개들로 하여금 짐마다 낱낱이 냄새를 맡게 했다. 그들은 셰퍼드 세 마리가 교대로 짐을 검사하게 했다. 짐을 검사하는데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셰퍼드마다 각자 임무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저먼 셰퍼드(German Shepherd)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찰견이다. 덩치가 크기도 하지만 뾰쪽한 귀에 주둥이가 길고 아몬드 모양의 눈초리가 무섭게 생겼다. 그러나 셰퍼드는 주인에게 충성을 충성을 다하고 주인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일이랍니다.”

“뭘 저렇게 오랫동안 샅샅이 검사를 하지요?”

“아마 마약이나 무기류 검사를 하지 않겠어요.”


셰퍼드가 짐을 검사하는 동안 여행자들은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9.11 테러 이후 월드컵을 준비하는 독일의 국경검사가 더욱 삼엄해지고 있었다(독일은 2006년도에 월드컵을 개최했다). 드디어 사냥개들이 철수를 하자 창고 문이 열리고 여행자들은 각자의 짐을 찾아 버스에 다시 실었다. 


“정말 너무하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검사를 하다니!”

“허지만 본받아야 할 점도 많아요. 대강 대강이 아니고 철저하게 근무를 하는 저들의 태도를….”


독일 국경을 통과한 버스가 함부르크에 도착하자 운전수는 커피 한 잔을 할 여유가 있다고 코멘트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항구도시의 하나인 함부르크 시가지는 매우 활기차게 보였다. 유로라인 버스 터미널은 천장이 유리로 덮여 있어 시각적인 예술미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둘이서 나누어 마셨다.  


▲함브르크 유로라인버스 터미널


버스는 함부르크를 출발하여 석양 무렵에 덴마크 국경을 통과했다. 드디어 안데르센의 나라에 온 것이다. 문득 안데르센의 동화 ‘못 생긴 새끼오리’가 떠올랐다.  나는 동양에서 온 못 생긴 새끼오리가 아닐까? 

  

▲함브르크 버스터미널
▲함브르크 버스터미널




함부르크를 출발한 버스는 양쪽에 바다를 낀 E47번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갔다. 도로가 2차선으로 좁아졌다. 도로 옆에는 하얀 풍차가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푸트가르덴(Puttgarden) 항구에 도착하자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커다란 카페리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의 푸트가르덴과 덴마크의 뢰드비(Rodby)를 오가는 ‘스칸드라인’이라는 카페리 호였다.


“저런! 배가 기차와 자동차를 집어삼키고 있어요!”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모습이 거대한 하마 같네!”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린 배는 버스와 기차를 척척 집어삼켰다. 우리가 탄 버스도 하마처럼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배 안으로 스르르 들어갔다. 기차와 자동차를 먹어치우는 배. 서유럽과 북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인 코펜하겐으로 가는 길은 매우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거대한 배가 입을 쩍 벌리고 기차와 버스를 먹어치운다. 승객을 실은 채 통째로 집어삼킨다. 


바다를 건너 덴마크 뢰드비에 도착하자 기차와 버스는 승객을 태운 채 앞문으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 페리 호처럼 뒤로 들어갔다가 다시 뒤로 나오는 번잡함이 없다. 뒷문으로 들어와 앞문으로 빠져나가니 시간도 절약되고 매우 편리했다. 배는 움직이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거대한 배가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배를 타면 언제나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커다란 배 안에는 바와 카페, 음식점 등이 호화롭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거나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덴마크 인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칼스버그 맥주잔을 들고 ‘치어스’를 외쳤다.


“자, 우리도 오늘은 선상에서 우아하게 포도주를 곁들인 디너를 한 번 먹어볼까요?”

“와인 값이 꽤 비쌀 텐데요?”

“그래도 결혼 30주년 허니문인데 이런 멋진 배에서 그냥 지낸다면 너무 건조하지 않겠소?”


나는 생선 스테이크와 작은 포도주 한 병을 시켰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12유로를 지불하고 스테이크와 포도주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푸른 바다를 가르는 선상에서 붉은 포도주 잔을 부딪쳤다. 오후의 햇빛이 선실의 창문으로 들어와 포도주 잔을 더욱 고운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덴마크 인들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맥주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치어스!”

“브라보!”


맥주를 마시며 그들은 아까부터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향하여 “건배!”와 “브라보!”를 외쳤다. 멋진 선상 디너였다. 그 사이 독일 쪽 항구 푸트가르덴이 포말 속으로 사라져 가고 곧 덴마크 쪽 뢰드비 항구가 다가왔다.


“드디어 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안데르센의 나라에 왔군.”

"그럼 나는 미운 오리 새끼의 짝인가요?”

“하하, 그런가? 오, 내 사랑! 미운 오리새 끼는 짝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네.”

“호호, 그럼 나는 미운 오리 새끼를 귀찮게 하는 오리 새끼라네.”


포도주를 한 잔 마신 우리는 풍경과 어울려 마음이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덴마크 뢰드비 항구에 도착한 배는 집어삼켰던 기차와 버스를 다시 그대로 토해냈다. 새벽에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여 저녁에 덴마크에 도착한 긴 하루였다.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을 하니 밤 8시 20분이었다.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길을 걸어서 우리는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코펜하겐 변두리에 위치한 아마게르란 유스호스텔로 가기 위해서였다. 코펜하겐의 중앙역은 매우 크다. 북유럽으로 가는 거점인 만큼 언제나 사람들도 붐빈다. 역사 안은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코펜하겐이 싫어요.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술에 취해 건들거리고….”


암스테르담 호스텔에서 만났던 일본인 여행자 미찌꼬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의 말처럼 중앙역 안에는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꼬나물고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생각하고 왔던 중앙역 풍경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호스텔로 가는 기차를 타고 스조엘로역에 내리니 역무원도 없었다. 이른바 무인 역전이다. 거리는 어둡고 조용했다. 사람은커녕 택시와 버스도 없었다. ‘100S’ 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우리는 한 동안 역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두움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두 여인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인들이었다. 나는 그 여인들을 놓칠세라 다가가서 길을 물었다.


“저, 아마게르 호스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데요?” 

“아, 그래요. 저희들도 지금 그리고 가는 길이랍니다.”

“잘 되었군요. 그럼 두 분을 따라가면 되겠군요.”

“노 프로블렘. 우리와 함께 가요. 밤늦은 시간에는 버스도 뜸해서 호스텔을 찾기가 어려워요. 저희들도 처음에는 호스텔을 찾는데 좀 애를 먹었답니다.”

“아, 그럼 그곳에 머물고 계세요?”

“3일째 그 호스텔에 머물고 있지요.”

“그렇군요. 저희들은 한국에서 왔답니다. 정말 반가워요.”

“멀리서 왔군요. 반가워요. 우리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왔어요.”


갑자기 만난 두 여인이 마치 우리들의 길을 안내하는 천사처럼 반가웠다. 그들은 우리들의 짐이 무거워 보였든지 작은 배낭을 달라고 하며 대신 들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기차역에서 호스텔까지는 꽤 멀었다. 길이 너무 컴컴하여 두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호스텔에 도착하여 훤한 곳에서 보니 할머니들이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우린 둘리 자매라고 해요.”

“우린 초이 부부랍니다.”

“오, 미스터 초이. 굿 나잇”

“감사합니다. 굿 나이트.”


갈색 머리에 70살이 가까워 보이는 언니, 50대 정도 보이는 하얀 백발의 동생. 그 나이에 우리들 짐까지 들어주다니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왔다는 둘리 자매는 영어가 우리들처럼 서툴러 오히려 정감이 더 갔다. 


♣저먼 셰퍼드처럼 임무에 충실한 독일인들을 본 받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