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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17. 2018

3. 네덜란드 풍차마을
동화 속에 푹 빠지다

▶네덜란드 잔세스칸스 풍차마을과 헤이그  마두로담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작지만 앙증맞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찾아가는 마음은 언제나 즐겁다. 콘크리트 빌딩에 둘러싸인 삭막한 도시를 벗어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 행복은 이런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오롯한 행복을 찾아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과 풍경을 찾아 나선다. 


이곳 네덜란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인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채 반 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잔세스칸스라는 예쁜 마을이 있다. 여행 중에 이런 마을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침 호스텔에 데스크에 문의하니 반나절 잔세스칸스 로칼 투어가 있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하여 나는 주저하지 않고 투어에 조인을 했다.  

▲버스 운전석에 놓인 나막신

아침 9시 30분, 우리는 잔세스칸스 풍차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문에는 나막신이 걸려 있고, 운전석 앞에도 노란 나막신이 네덜란드의 상징처럼 걸려 있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1/4이 바다보다 더 낮은 땅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인들은 제방을 막아 수문을 만들고 풍차를 돌려 물을 품어내 해안 간척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땅은 늘 질퍽하여 굽이 높은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 다녀야 했다.  


잔세스칸스에 도착하니 푸른 초원 위에 드문드문 세워진 풍차들이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마을처럼 보였다. 하얀 테두리를 한 네덜란드 전통 목조 가옥도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다. 목조 가옥 사이로 작은 운하가 뚫려있고, 운하 위에는 무지개 모형의 도개교(跳開橋:배가 지나갈 때 다리를 들어 올려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다리)가 띄엄띄엄 놓여 있다. 작은 운하 사이로는 귀엽게 생긴 쪽배들이 유유히 흐르며 도개교를 숨바꼭질을 하듯 끼어 다녔다. 초록의 벌판에는 돌지 않는 풍차가 그림처럼 서 있고 초원에서는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평화스러운 정경이다. 전성기에는 700여 개의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아가지 않고 있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동화 속 같은 풍경


"여보, 저 건물 벽에 걸려 있는 나막신 좀 봐요! 너무 앙증맞게 생겼어요!"

"하하, 그렇군. 내 발에 꼭 맞을 것 같기도 하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나막신

풍차마을 에는 나막신을 만드는 공장인 크롬펜(나막신이라는 뜻)이 있었다. 공장 입구에는 붙어있는 노란색의 나막신이 앙증맞게 눈길을 끌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한 장인이 나무로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나막신을 신고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나막신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코미디 쇼를 보는 것 같아 관람객들은 가끔 폭소를 금치 못했다. 쇼룸에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예쁘고 깜찍한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보, 저 예쁜 신발 좀 봐요. 한 켤레 사서 신어 볼까?”

“정말 깜찍하게 생겼네! 당신 발에 맞는 것이 있을까?”

"저 빨간 꽃신은 어때요? 꼭 우리나라 버선을 닮은 꽃신 같은데요."

"노란색과 파란색도 좋아 보여요."


쇼룸에는 백설공주나 신었음직한 형형색색의 예쁜 신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아내는 예쁜 신발들에 정신이 팔려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 이 신발 좀 봐요. 정말 앙증맞군요!"

"우와, 그건 정말 신데렐라나 싣는 신발처럼 보이네!"


▲나무로 만든 예쁜 나막신


아내는 그 많은 화려한 신발 중에서도 가장 작은 나막신을 하나 골랐다. 한 뼘도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나막신을 골라 들고 마치 신데렐라라도 된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내는 잔세스칸스 풍차마을에 온 기념으로 나막신을 한 켤레를 샀다.   


그 장인의 말로는 네덜란드에서는 옛날 총각이 처녀에게 구애를 할 때 자신이 만든 나막신을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오랜 기간 정성 들여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을 총각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구애하는 사랑이 나막신에 구구절절하게 묻어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나막신을 신는 사람은 없다. 다만 추억의 장식용으로 전시를 할 뿐이다. 


나막신을 사들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곤돌라 보트처럼 엄청나게 큰 대형 나막신이 있었다. 신발이 어찌나 큰지 두세 명의 사람이 나막신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이 마치 보트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내와 함께 나막신 안으로 들어가니 온 몸이 푹 빠졌다.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쇼룸


“저 나막신은 거인 걸리버나 신었음직한 신발이네!”

“신발이 아니라 보트 같아요.”

“우리도 걸리버가 한 번 되어 볼까?”

"호호, 나막신에 온 몸이 푹 빠지는데요!"


거대한 나막신 옆에는 우리 발 크기의 몇 배나 큰 노란 나막신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걸음마를 옮겨보았다. 그러나 무거워 신발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막신을 신은 우리는 동화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갔다.


▲평생 풍차를 그려왔다는 노인

나막신 공장 옆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기념품 가게 입구에는 하얀 턱수염을 기른 한 노인이 풍차를 정성스럽게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정성스럽던지 구경을 하는 사람도 저절로 삼매경에 빠질 지경이었다. 노인은 평생을 이곳에 살며 풍차만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 진지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더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사고는 싶었으나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사진만 찍고 그림을 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더니 전혀 괜찮다고 하며 씩 웃었다.


우리는 나막신 공장에서 나와 알크마르 치즈 공장으로 갔다. 치즈가게에서는 다양한 치즈를 샘플로 맛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치즈라도 내 입맛에는 그저 느끼하게만 느껴졌다. 네덜란드는 180만 마리의 젖소가 연간 11억 리터의 우유를 생산하고 60만 톤의 치즈를 가공한다고 한다. 


▲다양한 치즈를 맛볼 수 있는 알마르크 치즈공장


재미있는 사실은 치즈 문화에 익숙한 네덜란드인들도 데이트 전에는 치즈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치즈 냄새가 결코 유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키스를 하기 전에 치즈를 먹는 것은 고약한 냄새를 풍겨 키스를 망치고 만다는 것. 우리나라 김치와 유럽의 치즈 중 어느 것이 더 먹기에 좋을까? 한국인은 당연히 김치일 것이고 유럽인은 치즈일 것이다. 그 담백한 김치 맛을 어찌 느끼한 치즈 맛에 비기겠는가? 문화의 차이는 맛도 이처럼 달라진다. 




풍차마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헤이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전원풍의 들판을 한 시간 정도 달려가니 헤이그 중앙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 정부와 왕실의 거주지가 있는 헤이그는 녹색 대로에 거대한 저택들이 마치 궁전처럼 늘어서 있었다. 


마두로담은 네덜란드의 명소를 25분의 1로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이 새어 나오는 댐 구멍을 손으로 막고 있는 소년의 조각상이었다. 한스 브링카 소년이다.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다. 그래서 일찍이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물과의 피나는 전쟁을 벌이며 방파제를 막아야 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는 그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국토다.


▲물새는 땜 구멍을 온 몸으로 막았다는 한스 브링카 소년

한스 소년은 물이 새는 방파제 구멍을 밤새 몸으로 막아 바닷물의 홍수를 막아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시골 벽촌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나는 이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너무나 진한 감동을 받아 그 나라에 꼭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허지만 농촌 벽지에 살고 있었던 내가 그 꿈을 이룬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허지만 나는 그 꿈을 고이 간직하며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꿈은 50년이 지난 지금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기를 하지 않고 노력을 하는 자에겐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마두로담은 자치 조직으로 운영되는데 현 여왕이 명예시장으로 되어있고, 매년 헤이그 시내 30명의 어린이들이 소인국의 시장과 의원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이곳은 어린이들의 꿈동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요, 꿈이다. 아이들을 위한 투자는 정말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보, 내가 거인 걸리버처럼 보이지 않소?”
“걸리버보다 더 큰 거인으로 보이는군요. 호호호.”
"그래, 난 걸리버보다 더 큰 거인이야. 어린 시절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걸리버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거든." 
"그럼, 이제 그 소원을 풀었네요."

▲헤이그에 있는 소인국 마두로담

풍차를 잡아 삼킬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나를 아내는 마치 어린아이 구경하듯 재미있어라 하며 깔깔거렸다. 나는 소년 시절에 조나단 스위프트가 지은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마치 내가 걸리버가 된 것 같은 환상에 사로 잡혔던 꿈 많은 소년이었다. 소인국을 돌아보는 아내와 내 마음만은 소년과 소녀와 같았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미니어처 타운을 쏘아 다녔다. 이럴 때 아내의 몸에 엔도르핀이 팍팍 솟아 나오겠지. 아내의 몸에 엔도르핀이나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그럼 그 고약한 병들이 좀 겁을 먹겠지. 아니 아주 얼씬도 못하게 했으면 좋겠어. 세상도 바꾸고, 몸도 바꾸고, 모든 게 새로운 세계로 바꿔졌으면 좋겠어...... 바꾸자! 바꿔! 지금 걸리버처럼 거인이 된 내가 아내를 건강한 사람으로 바꿔보자! 


♣동화는 근심을 덜어준다. 동화처럼 천진스럽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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